아프가니스탄 정책을 둘러싸고 미국과 동맹국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최고 사령관 매크리스털 장군이 다급히 추가 파병을 요청했지만, 유럽 정상들은 아프간에서 서둘러 발을 빼고 싶어한다. 사상자가 늘어 각국의 국내 여론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유럽과 캐나다·일본·한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가 미국의 동맹국으로 힘을 모았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과 동맹국은 미국의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라는 깃발 아래 지금까지 22개국 4만여 명에 이르는 군대가 아프간에 주둔 중이다. 이들은 8년간 아프간에서 미군과 함께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며 동맹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독일군 사령부의 공습 명령에 따른 미군 전투기의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130여 명 발생한 쿤두즈 강 인근 폭격 사건 현장 모습.
첫 번째 이유는 주둔 비용이다. 2001년 9·11 테러 당시만 해도 세계 경제 상황이 좋았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아프간 재건기금과 전비를 기꺼이 부담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난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마치 밑빠진 독처럼 새나가는 아프간 전비가 부담스러워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프간 정부는 500억 달러 원조를 요청했고 미국은 이 중 약 100억 달러를 약속했다. 나머지 400억 달러는 동맹국 몫이다. 두 번째는 아프간 전쟁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군이 2만1000명을 증파해도 탈레반을 섬멸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동맹국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지난 아프간 대선은 전쟁 명분이었던 ‘민주주의 국가 건설’과는 사뭇 다른 부정선거 추태만 보여 실망감을 더했다.

여전히 미국은 아프간 상황을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병력 증강이라고 생각한다. 동맹국이 더 많은 군대를 증파해주기를 기대한다. 아프간 주둔 동맹국들은 미국의 이런 요구를 애써 외면하며 아프간에서 발을 뺄 구실을 찾지 못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최근 발생한 한 사건은 미국과 동맹국 간 이런 갈등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했다.

독일군은 아프간에서 터진 오폭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다. 위는 아프간 주둔 독일군.
매크리스털 최고 사령관, 독일군 맹비난

지난 9월3일 아프간 북부 쿤두즈 주에서 나토군 석유 트럭 두 대가 탈레반에게 탈취되었다. 탈레반은 운전기사를 참수하고 트럭을 끌고 가다가 운전 미숙으로 쿤두즈 강에 한 대를 빠뜨렸다. 탈레반은 어떻게든 끌고 가려다 도저히 안 되자 인근 마을 주민에게 석유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자 주민이 물통을 들고 트럭 근처로 모여들었다. 독일 전술작전본부는 9월4일 자정쯤 탈레반이 탈취한 석유 탱크 두 대와 함께 쿤두즈 강 인근에 머무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미국 전투기가 독일군 사령부로 전송한 실시간 현장 동영상을 판독한 결과 독일군은 현장에 석유 트럭이 세워져 있고 그 주위에 사람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독일군 아프간 정보원이 현장에 있는 사람이 전부 탈레반이라고 주장했고, 독일군 사령부는 이 말만 믿고 공습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민간인 사상자가 130여 명 발생했다.

아프간 정부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공격 명령을 내린 독일은 당황했다. 프란츠 요제프 융 독일 국방장관은 9월5일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독일군으로부터 고작 6km 떨어진 곳에서 유조차를 탈취했다. 공격은 정당했다”라고 항변했지만, 독일은 민간인 사상이라는 이 뜨거운 감자로 각 나라의 비난 대상이 되었다. 미국조차 독일 편을 들지 않았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언제든 민간인 다수가 목숨을 잃었을 때 우리는 중대한 우려를 표명해왔다”라며 독일과 선을 그었다. 데이비드 밀리반드 영국 외무장관은 “아프간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토와 아프간인의 단결이 필수이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터지면 양측의 화합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라며 나토 측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스웨덴의 칼 빌트 외무장관 역시 나토군의 공습으로 아프간인 사망자가 여럿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9월27일 총선을 앞두고 9월13일 열린 텔레비전 토론에서 야당인 사민당의 슈타인마이어 당수(오른쪽)는 ‘아프간 주둔 독일군’ 문제를 가지고 기민당 메르켈 총리(왼쪽)를 맹공했다.
문제는 이 공격의 주체가 미국이 아니고 독일이라는 점이다. 탈취된 석유탱크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을 폭격하라고 명령한 독일군 사령관과 실제 폭격을 실행한 미군 F-15E 전투기 조종사 중 누가 민간인 사상에 책임이 있느냐를 놓고 나토 내부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하지만 책임이 독일군 사령부로 기울자 미국은 재빠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 5월에도 아프간 주둔 연합군은 아프간 서부 파라 주 민간인 밀집 지역을 공습해 민간인 140여 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이 전임 매키어넌 장군을 해임으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잘 아는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독일 편이 될 수 없었다. 즉각 민간인 사상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며 독일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공격 명령을 내린 독일군 사령관을 강하게 질타하며 “아프간인 안전과 보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무고한 아프간인이 희생될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독일을 압박했다. 심지어 독일군 사령관보다 먼저 폭격 현장을 둘러본 뒤 “독일군이 폭격 현장에 너무 늦게 방문했다”라며 독일군을 비난했다. 독일군은 얼마 전에도 미군으로부터 ‘전투작전을 피하려 한다’고 비난받았다. 애초부터 미군에게 미운 털이었던 독일군은 사면초가가 되었다.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 규모인 약 4200명을 아프간에 파병해 병사 35명을 잃은 독일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공격 명령을 내린 사람이 독일군 사령관이다보니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 민간인 공습 후폭풍은 독일 내에서 강한 철군 여론을 불러왔다. 하필이면 이 사건이 9월27일 독일 총선을 앞두고 터져 아프간 철군 문제가 대형 선거 이슈가 되었다. 사민당은 아프간 공습사건을 철군 여론과 연결해 메르켈 총리를 곤란하게 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9월8일 의회 연설에서 “독일군 공격으로 무고한 사람이 숨지거나 다친 것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슈타인마이어 당수는 회심의 카드로 아프간 주둔 독일군 조기 철군 문제를 빼들었다. 그는 “이르면 2011년 독일군을 아프간에서 철수시킨다는 것이 사민당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사민당은 아프간 파병을 주도한 기민당이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한다. 메르켈 총리 처지에서도 하루빨리 아프간에서 독일 부대를 빼고 싶지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굴복한다는 국제적인 시선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 독일 언론인은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진다면 그것은 아프간 때문일 것이다. 8년 전과 지금 독일 여론은 많이 다르다. 탈레반은 하필 이럴 때 석유트럭을 탈취해서 독일 정가를 흔들고 있다. 탈레반의 영향이 아프간을 넘어 독일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다른 동맹국에도 이 사건은 여러 교훈을 준다. 아무리 동맹국으로서 아프간에 파병하더라도 미국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그들을 돕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국의 아프간 철군 여론과 막대한 아프간 전비를 감수하면서 이 전쟁을 끌고 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더군다나 ‘오바마의 전쟁’으로 불리는 이 아프간 전쟁은 날이 갈수록 전황이 불리해져만 간다.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최고 사령관은 4만여 명 증원을 또 요구했다.

동맹국들, ‘굴복’ 모양새 피할 길 없어 ‘한숨’

매크리스털은 66쪽 분량인 ‘사령관의 초기 평가’ 보고서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추가 병력이다”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올해 초 늘린 미군 2만1000명을 포함해 연내 병력 10만6000명(미군 6만8000명·나토군 3만8000명)이 배치되는 것으로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제 10만도 모자라 4만명을 더 추가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아프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만한 병력 증파는 미국 혼자 감당하기도 힘들다. 그러면 다시 동맹국을 향해 ‘더 많은 군대와 돈을 보탭시다’라고 요청할 공산이 높다. 이런 요구는 여론으로 보나 경제적 상황으로 보나 동맹국들이 감당할 수가 없다.

매크리스털 장군은 보고서에서 아프간 주민과의 관계 및 나토 동맹국과의 협조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획기적인 전략 방향 전환을 촉구했다. 아프간에 주둔하는 연합군 나라가 많다보니 어느 나라는 위험한 곳에 배치되고 어느 나라는 덜 위험한 곳에 배치되는지에 대해 그동안 연합군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다. 가능하면 위험한 지역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칸다하르에 주둔한 한 미군 장교는 “미군이 같이 연합 작전을 나가려고 하면 다른 나라 연합군은 잘 협조하지 않는다. 미군은 병사를 매일 잃어가는데 그들(연합군)은 주둔지 밖으로 아예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군과 같이 작전을 나가면 자국 병사를 잃기 십상인데 그 위험을 감당하려는 지휘관이 없는 것이다.

아프간 주둔 동맹국이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면 적당한 정치적 이유가 필요하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굴복했다는 모양새는 피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러는 새 연합군의 사망자는 늘어만 간다. 지금까지 연합군은 영국군 217명, 캐나다군 131명 등 1409명을 잃었다. 아프간에 주둔 중인 한 나토군 고위 장교는 “2007년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철군했던 한국 정부는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동맹국이라는 이름 아래 8년간 아프간 정부의 주머니만 채워준 아프간 재건기금과 희생된 생명은 철군 여론만 들끓게 했다. 이제 동맹국들은 기회만 되면 아프간을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미국에게 겁쟁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공습으로 시작된 동맹국 간의 불협화음이 이제 본격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 호에 미국의 친구들(하) 편이 연재됩니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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