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 배치된 미국 2사단  스트라이커 중대는 지난 8월25일 중대장과 중대 간부 4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프간에 도착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중대장 존 홀랜트 대위(30)와 중대원들이 순찰을 마치고 주둔지로 복귀하던 중 도로 매설 폭탄인 EFP가 폭발해 스트라이커 차량이 전복되며 벌어진 일이다. 이 중대는 중대장을 포함해 전력을 계속 잃고 있다. 더군다나 이 부대는 EFP에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군이 전략적으로 믿었던 스트라이커 부대(신속 기동 여단)라 충격은 더욱 컸다. 같은 중대원인 한 병사는 “스트라이커까지 그렇게 쉽게 당할 줄은 몰랐다”라며 망연자실했다.

미군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이 도로 매설 폭탄 때문에 지금도 병사들은 주둔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미군의 희생도 갈수록 늘어 올해까지 아프간에서 희생된 미군은 873명인데 올해만 238명이 사망했다. 최근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 매크리스털 장군이 다급하게 요청한 4만명 추가 파병은 오바마 대통령을 더욱 힘든 결정의 순간으로 몰고 있다.

ⓒ비겐블러그도로 매설 폭탄인 IED와 EFP는 이라크 저항세력이 본격 사용했다. 위는 2008년 10월 IED 공격으로 불타는 이라크 주둔 미군 장갑차.
미군은 8월25일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인 해병대 4000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탈레반 소탕작전에 나섰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지상군 650명도 투입됐으며 전투기 및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지원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도로 등에 매설된 폭탄이 수시로 터지고 탈레반이 게릴라전을 펴는 바람에 전투를 개시한 지 겨우 열흘 만에 미군·영국군 20여 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래리 니컬슨 아프간 주둔 해병 여단장은 “우리는 끔찍한 전투를 경험하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래리 니컬슨 여단장이 말하는 전투는 탈레반이 벌이는 기습과 매복을 말한다. 아프간에서 미군과 탈레반의 전투는 고전적인 ‘부대 대 부대’의 싸움이 아니다. 미군 희생자 대부분이 순찰 가는 길에 도로 매설 폭탄에 당하는 것이다.

도로 매설 폭탄(IED:Improvised Explo sive Device)은 예전부터 아일랜드 해방운동이나 체첸·보스니아 내전 당시 종종 이용되었다. 하지만 IED를 전투용으로 본격 발전시킨 것은 이라크 저항세력이다. 2003년 미군이 이라크로 진격해 들어간 후 이라크 저항세력은 155㎜ 곡사포탄이나 120㎜ 박격포탄, 또는 TNT 등을 개조해 도로나 배수로 주변에 쓰레기처럼 위장해 놓거나 동물이나 시체 속에 은닉하기도 하고 때로는 땅속에 매설한 뒤 휴대전화나 도화선, 발판 등을 이용해 폭발시켜왔다. 그래서 IED는 이라크 점령 기간 중 미군을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한 저항세력의 살상무기였다.

이라크 전쟁 초기 미군은 험비라고 불리는 군용 트럭을 이용해 작전을 수행했는데, IED는 험비를 하늘로 솟구치게 할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 이라크 전쟁의 미군 사망자 63%, 연합군 사망자 40% 정도가 IED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IED 제조 방법이 인터넷에 공개돼 있어 쉽게 만들 수 있는 데다, 제조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 누구든지 원하면 도로에 설치할 수 있다. 땅에 IED를 묻고 휴대전화를 들고 미군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시간을 맞춰 버튼만 누르면 된다. 제10 산악부대 허그 상사는 “순찰 중 길가에서 삽을 든 노인만 봐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이미 두 차례 IED를 경험한 나는 길가를 차로 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다”라고 했다.   

IED에 의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미군은 110억 달러를 들여 특수 장갑차 MRAP 7700여 대를 도입했다.
EFP는 길이 25.4㎝, 지름 15.24㎝의 파이프

IED에 의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2007년부터 미군은 110억 달러를 들여 MRAP(Mine Resistant Ambush Protected)라 불리는 특수 장갑차량 7700여 대를 도입했다. 이 MRAP는 바닥이 V자 형태로 방탄이 되도록 두껍게 설계된 장갑 트럭으로, 차체가 높아서 도로에서 폭탄이 터져도 탑승한 병사들이 험비를 탔을 때보다 안전하다. 지금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는 미군이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부분 중 하나가 IED 방어를 위한 장갑차 확보이다. 또한 폭발물 제거용 로봇도 처음 등장했다. 여행가방 크기 정도인 작은 로봇 ‘탈론’이 그것이다. 원격조종되는 탈론은 기계 팔을 이용해 폭탄을 해체할 수 있으며 IED가 폭발해도 수리하면 된다. 지금까지 병사를 대신해 IED를 제거하다 파괴된 탈론은 1600대인데, 탈론 한 대당 평균 2명씩 미군 목숨을 구한 셈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탈론과 MRAP의 등장으로 한동안 이라크에서 IED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몇 개월 못 가서 기존 IED보다 더 강한 도로 매설 폭탄이 등장했다. 이 업그레이드된 도로 매설 폭탄이 EFP(Explosively Formed Penetrators:폭발형 관통체)이다. EFP는 길이 25.4㎝, 지름 15.24㎝의 파이프다. EFP 안에는 어른 주먹만 한 구리 구슬이 들어 있는데, 그 위력이 미군 M1-A1 에이브럼스 탱크를 관통할 정도여서 미군을 공포에 떨게 한다. 에이브럼스 탱크는 장갑이 워낙 두꺼워 최신형 대전차 미사일만이 파괴할 수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 EFP가 터지면 종이조각처럼 구겨져버린다.

ⓒ비겐블러그아프간에 주둔한 미국 해병 공병대가 도로 매설 폭탄을 제거하는 모습.
한 미군 장교는 “기존 도로 매설 폭탄이 권총 수준이라면 EFP는 소총 수준이며 터지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장갑의 한쪽 면으로 뚫고 들어가 반대쪽으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MRAP조차 반토막을 내버리는 아주 강력한 폭발물이다. 이 EFP의 등장으로 미군 희생은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미군의 첨단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상대방도 열심히 폭탄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프간에도 이 EFP가 등장했다. 2007년 5월 이라크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EFP가 카불의 한 대학 근처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탈레반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전술을 오랫동안 모방해왔지만 수백명을 살상할 정도로 폭발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이라크판 EFP가 자살폭탄 공격이나 도로 매설 폭탄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나토와 미군은 국제안보지원군과 아프간군에 EFP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지금은 아프간 전역에서 EFP가 터지고 있다. 오바마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을 결정적으로 많이 희생시키는 것이 EFP이다.

지난 8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에 등장한 라이언 혼 병장의 이야기는 EFP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전투가 가장 치열한 아프간 남부 헬만드 지역 최전선에 배치된 라이언 혼 병장(23)은 지난 8월13일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다친 전우를 구하던 중 다시 폭탄이 터지는 경험을 했다. 구조팀이 도착하면 그 팀을 노리고 2차 폭발이 이어진다.  전우들이 사상자를 헬만드 강둑에 착륙한 의료 헬리콥터로 옮기는 동안에 또 폭발음이 들렸다. 혼 병장은 “이번엔 내 차례라고 생각했다. 벌써 네 번이나 운 좋게 위기를 넘겼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라고 불안해했다.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연합군사령관은 최근 EFP가 이란에서 넘어온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66쪽 분량의 ‘사령관의 초기 평가’ 보고서에서 파키스탄 정보국(ISI)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알 쿠즈 부대를 지목하며 이들이 탈레반을 돕는다고 말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파키스탄과 이란의 특정 당국을 지칭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군에 따르면 이란 국경 인근 서부 아프간 지역에서 이란산으로 추정되는 무기와 폭발물이 발견됐다. 이 중에는 IED와 EFP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는 “아프간에서 다량의 은닉 무기가 발견된 것은 2년 만에 처음이며 미국 정보 당국도 알 쿠즈 부대가 이같이 탈레반을 지원하는 것을 매우 염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아프간에 정보요원을 추가로 배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EFP가 이란에서 넘어온 증거는?

그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발견된 EFP를 분석한 결과, 용접 공정 과정과 재료로 보아 틀림없이 이란에서 만들어졌다고 미국은 확신한다. 2006년 2월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이란이 이라크 저항세력을 지원한다는 물증을 확보했다며 이라크 저항세력이 사용한 폭탄의 일련번호 등을 조사한 결과 이란에서 제조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기관이 아직도 극비로 분류하는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알 쿠즈 부대가 2004년부터 이라크 시아파 저항세력에게 자금과 무기, 고성능 폭발장치 기술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아프간의 탈레반을 돕는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시아파인 이란이 수니파인 탈레반을 도울 리 없다는 여론이 높지만 탈레반과 이란에게는 ‘미국’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IED나 EFP도 미군에게 해결하기 버거운 숙제지만 이란이 여기에 결부되었다는 이야기는 더욱 아프간 전쟁을 복잡하게 몰고 간다. 노벨평화상 수상 예정자인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가고 수주 내에 4만명 추가 파병 여부를 결단해야 한다. 아프간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도로 매설 폭탄에 의한 미군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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