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5일, 미국 텍사스 주 포트후드 기지에서 미군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13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 총기를 난사한 니달 말릭 하산 소령(39)은 ‘1493 전투 스트레스 통제팀’ 소속이었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 등의 증언에 따르면, 하산 소령은 조만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될 예정이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포트후드는 미국 국방부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미군이 급증하자 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범 실시해온 주요 기지였다. 놀라운 사실은 하산 소령이 참전 장병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였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이슬람 교도로서 테러를 벌였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파병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으로 추정된다.

미국 외교안보 분야 연구기관 ‘랜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예비역 군인 3만명 중 5분의 1인 6000여 명이 PTSD 증상을 앓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알코올 중독·가정 폭력·파산 등으로 나락에 빠져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전 이후 지난해 말까지 미군 내 알코올 남용 건수는 2배로 늘었으며 미군 1000명 중 11명이 알코올 남용·중독 증상을 보였다. 이라크·아프간 참전미군회(IAVA)는 지난해 “참전 군인 3명 중 1명이 정신적인 장애를 겪는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까지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사는 총 150만명에 이르는데, 그중 50만명 이상이 우울증, 정서불안, 자살 충동 등 정신적 장애를 느끼고 있었다.

11월15일 하산 소령의 총기 난사로 사망한 병사들의 추도식장에서 희생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군화를 잡고 오열하고 있다.
이 같은 ‘전쟁 희생자’ 중 하나인 데릭 하사(28)를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이라크 바그다드의 캠프 스트라이크에서였다. 그는 자기를 ‘억세게 운 좋은 군인’이라고 불렀다. 이라크에 세 차례 파견되는 동안 여섯 번이나 도로 폭탄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도로 폭탄이 터졌을 때, 나는 부상한 동료를 업고 본부에 무전을 쳤다. 그리고 훈련받은 대로 일사불란한 뒷수습을 했다. 우리 소대는 희생자 한 명 없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이 공로로 그는 ‘퍼플하트’라는 명예로운 훈장도 받았다.

“부하들과 전우를 구했다는 자긍심으로 들떴다. 이로 인한 영웅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전쟁터가 익숙해져서 여러 차례 이라크에 갔다. 그 결과 여섯 번이나 폭탄 사고를 당했고, 마지막 사고에서 동료 다섯 명을 잃었다.”

그가 고향 텍사스 오스틴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해 11월. 그의 집에서 필자를 맞이한 데릭 하사로부터는 바그다드에서의 당당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인터뷰하던 내내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귀신을 본다는 이야기도 했다. 마지막 사고 때 사망한 동료인 그렉 하사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데릭 하사는 본인이 PTSD에 시달린다는 것을 부정했다. “겁쟁이 또는 예민한 성격의 병사들”이나 걸리는 병이라는 것이다.

하산 소령.
“전사한 동료가 찾아온다”

데릭 하사처럼 참전 군인들은 자신의 PTSD 증상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에릭 슈메이커 육군 의무감은 5년간 PTSD 진단을 받은 미군 병사의 수가 모두 4만명에 육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군 당국에 공식 보고된 것일 뿐이다. 증상을 숨기거나 신고하지 않는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슈메이커 의무감은 “상당수 병사가 군 경력에 오점이 생길 것을 걱정해 증상을 숨긴다. 겁쟁이로 오해받을까봐 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한다.

이에 미국 국방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대안을 마련했다. 개인별 파병 기간을 12개월로 축소한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12개월 복무한 병사는 반드시 24개월 휴식기를 가지도록 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도 “전체 예비역 군인 가운데 약 30만명이 PTSD 판정을 받았다”라며 이들에 대한 재활 프로그램 도입과 관련 예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쟁이 이라크에서 다시 아프간으로 이어지자 병사 1명당 파병되는 횟수가 계속 느는 실정이다.

ⓒ김영미이라크에 세 차례 파견돼 여섯 번이나 폭탄 사고를 당한 데릭 하사. 그는 전역한 뒤 정신 장애에 시달리다 아내·자식과 헤어졌다.
그렇다면 PTSD는 구체적으로 어떤 질환인가. 필자가 ‘이라크 종군 기자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병사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재회한 참전 병사들은 필자에게 매우 낯선 느낌을 주었다. 한결같이 기억상실증과 청각 이상 증세를 호소했다. 페친 일병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이라크 동료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방금 전 마신 주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그를 괴롭히는 증세는 지속적인 두통과 메스꺼움, 청력 감퇴, 불면증 등이었다. 바비 일병은 “기억상실증은 물론 집중력이 떨어지고 감각도 지나치게 예민해져 짜증이 심해졌다”라고 말했다. 참전 병사들이 공통으로 하소연하는 증세는 청각의 예민함이었다. 세상 모든 소리에 예민해졌다.

“칼로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공사현장 소리 등이 캘리버-50 기관총의 다연발 발사 굉음으로 들린다. 천둥은 폭탄 소리로 들린다. 그 외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 때문에 하루 종일 예민하게 굴며 아내에게 화만 내게 된다.”

이런 증세는 무엇 때문일까. 귀향 미군 중 총상자는 2%에 불과하지만 폭탄 공격을 당한 사람은 무려 62%에 이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폭발이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병사들의 뇌를 손상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미국 의회는 뇌손상과 PTSD 장애 연구에 3억 달러를 책정해서 폭발로 인한 뇌손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참전 미군 중에 뇌손상을 입은 병사가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에 따른 의견 개진은 이미 활발하다.

얼마 전 랜드연구소가 발행한 보고서 〈보이지 않는 부상〉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간에 투입된 미군 병사 중 5분의 1은 뇌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 산하 응용물리학연구소 신경과학자 이볼랴 체르나크는 폭발이 뇌에 충격을 줄 뿐 아니라 몸통을 압박해 혈관 속에 ‘피의 쓰나미’를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피가 급격하게 뇌로 몰려 조직을 손상시킨다고 한다.

“폭발물이 터지면 고압가스로 변하면서 순식간에 허리케인 몇 배에 달하는 파동을 생성한다. 이로 인한 진공상태는 인체의 장기를 확장했다가 다시 축소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폐가 찌그러지기도 하고 고막이 파열되기도 한다. 그래서 폭발 현장에서 살아남아도 치명적인 뇌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필자가 만났던 데릭 하사는 결국 전역했다. 술과 불면증, 환영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얼마 전 전화로 데릭 하사는 “아내와 세 아이도 헤어지게 되었다. 오늘은 쇼핑몰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데릭 하사의 아내는 “그가 이라크에 있을 때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가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사한 미군보다 자살한 미군이 더 많아

군인가족 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가장이 여러 차례 파병되어야 하는 상황이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진단한다. 파병된 남편이 돌아오면 아내의 기쁨도 잠시다. 남편은 전투현장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집안에서도 항상 긴장하고 예민해 있으며 전쟁 스트레스 및 우울증으로 고생한다.

미군의 자살률도 크게 높아졌다. 지난 8월 뉴욕타임스는 2008년 미군 자살자가 모두 192명으로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2003년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군이 자살자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올해도 7월 중순 현재 129명이 자살 혹은 자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이 기간 전사한 미군보다 자살한 미군이 더 많다.

뉴욕타임스는 “자살자 통계는 축소되기 마련이고, 퇴역한 참전 군인 자살의 경우 신뢰할 만한 통계도 없다”라며 자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자살자의 30%는 이라크·아프간 파병을 앞두고, 35%는 두 전쟁터에서 귀환한 뒤에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파병 당사자와 그들의 가족이 괴로워하는 상황에서도 미국 정부는 아프간에 4만명 규모의 추가 파병을 고려한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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