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한마디만 해주고 가. 얘기 좀 해줘.” 김아무개씨(60)가 지나는 학생을 붙들었다. 혹한의 날씨만큼 학생들의 반응도 찼다. 1월11일 점심시간, 서울 홍대 앞엔 100여 명의 청소, 경비, 설비 노동자들이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말하며 복직을 요구했다. ‘학생들도 함께해요’라며 수십번 구호를 외치던 김씨는 급기야 분노를 터뜨렸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찾아와서 응원도 하고 발언도 해주는데 너희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홍대 청소, 경비, 설비 노동자 140여 명이 1월3일, 전원 해고통지를 받은 후 본관 사무처를 점거한 지 10일 째다. 이들은 사무처 직원과 기묘한 동거 생활에 돌입했다. 매일 보며 인사를 나누던 사이가 서먹해졌다. 본관 한 가운데 계단, 졸업생이 만들어 내건 큼직한 플래카드에는 ‘니들이 홍익을 알아? 외부세력? 트윗이 뿔났다’라고 써 있었다. 김홍모 화백을 비롯한 홍대 졸업생들은 현장을 찾아 노동자들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벽면에는 응원 온 학생과 지지자들의 구호가 빈 데 없이 나붙었다. 후원으로 들어온 핫 팩이며 라면, 쌀, 귤 등은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엄동설한의 날씨에 가장 유용한 건 일제 손난로였다. 

ⓒ시사IN 안희태홍익대 미화원ㆍ경비원 노조원들이 11일 오후 홍익대 정문에서에서 고용승계와 임금인상을 촉구하며 집회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점거한 본관 농성장엔 ‘난생 처음’ 이란 말이 가장 많이 들렸다. 하루 세 번 정문에 나가 구호를 외치는 것도, 피켓을 만드는 것도, 토막잠 자며 공동생활 하는 것도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농성장 가운데서 흐트러진 동료의 빨간 조끼를 조여 주던 미화원 김순옥씨(59)도 그들 중 한명이다. 일을 한 지는 일년 정도밖에 안됐지만 홍대는 그에게 특별했다. 청소 일을 하다 남편의 임종을 놓친 기억은 아직도 끔찍하지만, 매일 보는 직원과 학생들에 정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청소도구를 챙기던 지난 3일, 소장에게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같은 상황이 배애미(60)씨에게도 벌어졌다. 그는 올해 환갑이다. “환갑 맞은 토끼띠가 토끼해 벽두부터 날벼락을 맞았다.” 그도 자기가 속한 용역업체가 계약만료 시점인 건 알았지만 여느 때처럼 고용승계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홍익대에서 미화원은 세금을 제하고 한 달에 75만 원, 경비원은 91만원을 받았다. 용역업체 향우와 인광에 소속되어 있다. 지난해 12월 2일 이곳 청소·경비·설비 노동자 170명 중 140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주변 다른 학교도 노조를 만든 뒤 임금이 올랐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말로 계약이 만료되는 용역업체는 노조가 제시한 시급 5180원, 한달 식대 8만원 등 처우 개선책을 내놓고 학교와 협상했지만 12월 31일 돌연 재입찰을 포기했다. 새해 부로 170명 노동자 전원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시사IN 안희태
본관 입구에는 조그만 동상이 있다. 누워있는 소에 아이들이 올라타 있는 석상이다. 구한모씨(60)는 이번 일을 겪으며 시를 한편 지었다. ‘와우산이라/ 누운 소 형상이로구나/ 홍익이념 대학이 배를 깔고 앉았구나/ 어이하여 노팔자가 이리도 모진고/ 눈물도 흘릴 수가 없구나/ 원통한 이 신세가/ 미화, 경비, 설비원의 신세와 같구나.’ 24시간 근무인 경비원은 경비업무 외에도 운동장 정리나 눈 쓰는 일 등 궂은일에 동원됐다. 1월11일 저녁, 때마침 함박눈이 쏟아졌다. 해고되지 않았다면 본관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도 그의 몫이었을 것이다. 


“학교와 싸우는 건지, 학생회와 싸우는건지”

이숙희 공공노조 홍익대분회장은 잦은 인터뷰와 선전전에 목이 쉬었다. 후원과 기부를 통해 잊지 않고 도와주는 학생들이 고맙지만 얼마 전 마찰을 빚은 총학생회에 대한 섭섭함이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1월10일 학생회와 간담회를 마치고 온 뒤 “학교와 싸우는 건지, 학생회와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학생회가 교정에 붙여놓은 ‘총학생회는 어머님 아버님을 지지합니다’라는 플래카드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의심했다. 총학생회는 점거 당시, 학내 면학분위기에 방해가 된다며 농성장을 찾아와 외부세력은 나가달라고 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김용하 총학생회장은 “언론이 발언을 왜곡했다. 계절학기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에 학생들 배려차원에서 농성을 자제해달란 얘기였다. 총학이 학교와 같은 입장이라는 건 오해다. 강경한 학교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부단체가 빠지면 우리가 교섭 테이블을 마련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외부세력으로 지목받은 민주노총 공공노조는 “여기서 노동자들만 남겨놓으면 강경한 본부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빠지라는 게 바로 학교측 논리다”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법률에 따라 최저가 입찰을 했으므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용역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설명회도 예정되어 있다. 이미 해고된 이들을 대체할 일용직 노동자를, 1일 미화 7만원 경비 10만원씩에 고용한 상태다. 대학 내 비정규직을 둘러싼 간접고용 문제의 시험대에 오른 홍대. 홍대를 넘어 모든 대학이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기자명 방준호 인턴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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