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옥천군, 인구 4만8000명의 작은 지역에서 발간돼온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가 지령 100호를 맞았다. “3년은 가겠냐”라던 의심과 걱정은 매달 마감 앞에서 번번이 빗나가, 잡지는 어느새 9년 차에 접어든다. ‘시시콜콜 시골 잡지’라는 부제, ‘역사에 남은 1%가 아닌 역사를 만든 99%를 기록한다’는 선언으로 출발한 이 잡지는 지역이 스스로를 기록하고 스스로를 바꿔온 9년의 실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옥이네〉는 구태여 거대 담론을 좇지 않는다. 장날 좌판 위 손등의 주름, 놀이터의 웃음, 오래된 간판의 벗겨진 페인트 같은 장면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중앙의 카메라가 재난·범죄·미담 혹은 기묘한 소식으로 지역을 15초 숏폼처럼 소비할 때, 〈옥이네〉는 ‘안의 언어’로 일상을 복원한다.
한 독자는 말한다. “이제 두부 파는 상인은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이웃, 어느 공동체의 중요한 성원으로 먼저 보인다.” 관계의 회복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절실한 일이다. 〈옥이네〉는 ‘무엇을 기록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바라보느냐’라는 태도를 쌓아왔다. 시선이 바뀌면 이렇듯 관계가 바뀐다.
지난 100개월의 기록은 지면에만 머물지 않았다. 질문은 전시·강연·토론으로 이어지고 캠페인·실험·운동으로 확장됐다. 길고양이 보도는 주민 모임 조직과 강연, 캠페인을 거쳐 동물보호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은 ‘처음으로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을 했다’ 같은 문장과 함께 교실과 마을의 시선을 바꿨고, 결국 만 13~18세 청소년 바우처 지급 조례로 제도화됐다. 수몰 마을 구술 연재는 행정의 공식 구술사업으로 확대돼 책자와 아카이브로 남았다. 지면에서 중요하게 다뤄온 생태·여성·공동체를 주제로 한 활동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진다. 기록으로 실천과 참여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기록을 풍성하게 하는 순환 속에서 잡지는 점점 ‘공유지’에 가까워졌다. 지역 안팎을 잇고,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접점이자 매개로서 말이다.
〈옥이네〉 정기구독자의 60%는 옥천 밖에 있다. 비슷한 농촌의 독자도 있지만 농촌과 접점이 없는 도시 독자도 적지 않다. 연령대 역시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하다. “이 작은 동네에서 잡지가 되겠느냐”라던 질문에 “작은 지역을 깊게 파고들수록 바깥의 공감이 커진다”라는 역설로 대답할 수 있게 됐다. ‘깊이’가 곧 ‘확장성’이 된 셈이다.
농촌에서도, 농촌이어서, 저널리즘은 가능하다
물론 제작 현실이 만만할 리 없다. ‘창간호가 폐간호’라는 씁쓸한 농담이 있을 만큼, 지역 언론 그중에서도 잡지는 더 어렵다. 그럼에도 〈옥이네〉 100개월의 결과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농촌에서도 저널리즘이 가능하다’가 아니라, ‘농촌이어서 가능한 저널리즘이 있다’로. 생활의 결을 사랑하는 태도, 지역의 삶을 대상화하지 않는 문장, 지면을 넘어 현장에서 변화를 추동해온 끈기. 이 반복이 지역 잡지로서의 자리매김은 물론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기여해왔다.

지역 매체의 존재 이유는 화려한 헤드라인이 아니라 ‘지역의 언어’를 회복하는 데 있다. 서울을 욕망하게 하는 말이 아닌 지역을 그대로 비추는 단어로, 대상화의 문장을 뛰어넘어 관계의 문장으로 바꿔내는 일. 〈옥이네〉 100호는, 쉽지 않지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증거일 테다.
100호는 비단 〈옥이네〉만의 성취가 아니다. 지역사회와 독자가 함께 만든 시간이다. 전국 어딘가에서 오늘도 지역 매체를 만들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기록이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부탁드린다. 당신이 발 딛고 선 곳의 지역 매체를 살피고, 구독하고,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말아달라. 지역 매체가 있어야 지역이 스스로를 말할 수 있다. 그 말하기가 곧, 일상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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