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 이종섭 등 7명 구속영장 실질심사, 10월24일 이상민·윤석열 재판 출석, 10월27일 한덕수 출석, 10월28일 곽종근 증인신문···. 그의 아이템 발제(취재 계획 등 보고)에는 내란·채 상병 특검과 재판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특히 군인들의 ‘선택’에 관한 기사를 많이 썼다. 이은기 사회팀 기자다.

지난주 김현태 대령 기사는 계획에 없었는데 재판 방청 후 쓰겠다고 나섰다. 왜?

윤석열 내란 재판 증인석에 앉은 김현태가 “억울하다”라고 했다. 707특임단의 행적을 기록하려다 케이블타이 포박까지 당할 뻔한 기자를 향해 “한심하다”라고도 했다. 김현태 발언을 기록하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12월9일 김현태 대령은 ‘김용현에게 군이 이용당했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때 그는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김용현에게 군이 이용당했고, 국민께 죄송하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의 군인으로서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눈물도 흘렸다.

곽종근 전 사령관 이야기에 따르면 김현태 대령은 유일하게 계엄 당일 밤 곽 전 사령관에게 ‘무리하면 안 된다’고 건의한 현장 지휘관이었다. 그 스스로도 계엄 해제에 일조한 면이 있다.

그런데 기자회견 뒤 1차 피의자신문 조사 때부터 김현태 대령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현태 대령은, 성일종 의원을 통해 곽종근 전 사령관이 민주당에 회유됐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묻고 싶다. 진술을 뒤집은 쪽은, 회유당한 쪽은 본인 아닌가?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라도 군인이 기본적으로 상명하복하지 않으면 군의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김형기 중령, 조성현 대령 등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군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정훈 대령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김형기 중령은 ‘문짝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1공수여단장의 명령을 거부했다. “할 수 없는 임무”였다고 했다. 그때 김 중령이 떠올린 사람이 박정훈 대령이었다고 했다. 박 대령은 항명으로 3년을 구형받고 재판받던 상황이었다. ‘내가 항명으로 처벌받더라도 3년 버티면 부하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벌써 12·3 쿠데타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내란 특검과 재판, 군인 포상과 직무 배제, 기자들의 취재···. 이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는 12·3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남기기 위해서다. 나도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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