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 연휴의 마지막 날인 8월17일, 폐장을 한 시간 앞둔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뮷즈(뮤지엄+굿즈)’를 취급하는 상점에는 발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혼잡하니 어린이 고객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자의 주의를 당부하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캐릭터 ‘더피’를 닮은 ‘까치호랑이 배지’는 소문대로 품절이었다. 용산으로 이전 개관한 지 20년 만에 최다 관람객을 달성한 박물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다.
2025년 상반기 국중박 관람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64% 증가한 270만여 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뮷즈’ 매출액도 약 34% 증가해 역대 최대치인 115억원에 달했다. 박물관 측은 “글로벌 한류 콘텐츠의 인기가 전통문화로 확장된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방탄소년단 RM이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을 관람한 뒤 이암의 ‘화하구자도’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면서 해외 팬들의 방문도 증가”했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Mnet 〈월드 오브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한국팀 ‘범접’의 공연에 등장한 작호도(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그려진 전통 민화), 갓 등 한국 전통문화 요소가 주목받으며 박물관 문화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라고 설명했다. 무료 관람료와 여름방학 성수기 등이 그 밖의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입구부터 장사진을 친 관람객의 풍경은 생소하지만, 사실 국중박의 흥행은 하루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23년 영국 〈아트 뉴스페이퍼(The Art Newspaper)〉의 세계 박물관 관람객 통계조사에서 국중박은 아시아 1위, 세계 6위였다. 2023년 처음으로 한 해 관람객이 400만명을 넘어섰고(이전 최고 기록은 2014년의 353만명), 지난해 상반기에도 외국인 관람객 수가 9만495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소장 역사학자이자이자 박물관 마니아인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의 저자 황윤 작가는 국중박의 인기에 대해 “재개관한 지 20년 된 박물관이 쌓아온 신뢰와 굿즈의 힘이 결합된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계속해서 최다 관람객을 돌파하고 있었는데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의 인기까지 더해 평소 관심이 없던 사람까지 방문하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지난 20년, 국중박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2005년 10월28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시대가 열렸다. 1945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해 문을 연 이래 60여 년 동안 10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해야 했던 박물관이 착공 8년 만에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연면적 약 13만㎡에 지하 1층~지상 6층으로 된 세계 여섯 번째 규모의 박물관이었다. 국보·보물 396점을 포함해 10만여 점에 달하는 문화유산이 ‘이사’하는 데에만 8개월이 걸렸다.
한국에 있는 ‘보물’을 다 모아 놓았다는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다. 개관을 기념해 국보급 유물이 대거 공개되면서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다녀갔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 세계적 박물관의 하루 평균 관람객을 웃도는 수치다. 한 달 만에 64만명이 박물관을 찾았고 개관 44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다. 짧은 기간, ‘광화문 시절’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용산이라는 장소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응은 뜨거웠지만 외국인 관람객의 방문은 저조했다. 재개관 직후부터 외국인 유치가 박물관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국내용’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다. ‘스타 마케팅’은 그때도 주효했다.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 전문경력관은 2009년 배우 배용준이 펴낸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기획 단계부터 목차에 국중박을 넣기 위해 설득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박물관신문〉 제646호). 해외 팬들 사이에 국중박을 들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박물관 굿즈와 특별전 방문 사진을 SNS에 올리자 팬들 사이에서 박물관이 ‘BTS 성지순례 코스’에 포함된 것과 비슷한 효과다. 그런 한편으로 해외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2013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황금의 나라, 신라(Silla: Korea’s Golden Kingdom)〉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국중박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취지였다.
‘굿즈 맛집’의 힘
국중박은 대형 글로벌 전시를 유치해 흥행에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집트 문명전-파라오와 미라(2009)〉,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전(2014)〉,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2022)〉 등의 유료 기획전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규모나 경험, 비용 등의 이유 때문에 세계를 순회하는 대형 전시를 한국에서 유치하기가 어려웠지만 용산 이전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상설전에서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나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같은 해외 기관과 손잡고 평소 보기 힘든 유물을 선보였다. 황윤 작가는 “박물관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 해외의 유산을 수집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발상을 전환해 해외 메이저 박물관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특별 상설전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전시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재개관 초반에는 유물을 한 공간에 집약적으로 몰아넣는 평면적 전시 위주였다면 점차 ‘관객의 체험’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2021년부터 상설전시관 2층에 439㎡ 규모로 자리하고 있는 ‘사유의 방’이 대표적이다. 캄캄한 진입로를 따라가면 넓은 전시실이 나오는데 오직 반가사유상 두 점만 나란히 놓여 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유물을 전 각도에서 볼 수 있다.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관람 문화에 맞추어 기획한 전시로 건축가와 협업한 첫 사례다.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등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굿즈의 역할도 컸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김미경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은 2016년 첫 출근 당시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문구류 위주였다고 회상했다. 해외 유수의 박물관과 달리 대표 상품이 없다는 지적에 국보인 반가사유상을 미니어처로 제작하기로 했다. 유물의 느낌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4년간 테스트를 했다. 마침 2020년 전후 굿즈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국중박이 ‘굿즈 맛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반가사유상 외에도 석굴암 조명,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청자 잔 세트,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등의 인기가 높다.

국중박이 용산에 자리 잡은 지 20년, 국내외 전시를 두루 경험한 관람객들의 감상 수준이 높아졌고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이전과는 다르다. 20년 후의 박물관은 또 어떤 모습일까. 황윤 작가는 말한다. “대형 박물관이 있는 선진국을 보면 영화 관람 인구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는 인구가 더 많다. 우리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는 것 같다. 특히 젊은 층이 많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20년 정도 지나면 박물관 수준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아질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국의 미술 시장이 커지면서 소장가들도 늘었고 그만큼 관심도 높아졌다.”
-
케데헌, 한국인이 만들면 달랐을까
‘케이팝 걸 그룹 멤버들이 비밀리에 악마를 사냥하는 이야기.’ 7년 전 애니메이션 연출 데뷔를 앞두고 있던 매기 강 감독이 떠올린 아이디어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소니픽처스 애니메...
-
검정색 한복과 인형 뽑기 가게, 〈케데헌〉은 끝나지 않는다 [프리스타일]
추석 연휴에 경복궁을 지나다 한복 차림의 외국인들을 봤다. 빛깔 고운 한복들 중 낯선 모습이 섞여 있었다. 위아래 온통 검정색인 한복이었다. 갓까지 쓰고 있어 이색적이라 자꾸만 돌...
-
국립중앙박물관에 왜 CT 장비가 설치됐을까
지난 10월28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가 개관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도 센터 1층에서 시작됐다. 천주현 보존과학부장과 박미선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일반인에게는 아직 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