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를 채운 자동차들 소음을 깨고 우렁찬 음성이 귀에 꽂혔다. “괜찮습니다!” 밤새 내려 쌓인 눈이 녹고 있던 3월18일 오후, 한 시민이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지부장에게 안부를 묻자 그가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지난 2월13일 고진수 지부장은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지하차도 위 높이 10m 철제 구조물에 올랐다. 길이 9m, 폭 80㎝의 도로 시설 구조물에는 ‘복직 없이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그는 2001년 일식조리사로 세종호텔에 입사해 2021년 12월 해고됐다. 사용자 측이 코로나19에 따른 경영 악화를 이유로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 12명을 정리해고하면서다. 2024년 12월, 대법원은 사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사이 호텔 경영은 흑자로 돌아섰지만, 해고자들은 3년 넘게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1년 사측의 노조 탄압에 맞서며 일터에서 싸우던 시간을 합하면 햇수로 14년째다. 고 지부장은 “저는 이 고공 농성이 14년이라는 긴 싸움의 종지부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를 포함해 6명의 해고자가 싸우고 있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때, 하루 세 번 고 지부장은 철제 구조물 끝에 서서 북을 두드린다.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3년 동안 거리에서 매일 같은 시간 마주치던 사람들은 이제 북소리가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노동조합 활동은 정당하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고진수 지부장이 싸우는 공간이 땅에서 하늘로 옮겨졌을 뿐이다.


-
호텔 앞 펼쳐진 무지개색 농성장 [잊지 말아야 할 투쟁 현장 ③]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과 의지는 서울 여의도를 넘어, 남태령을 거쳐, 전국 곳곳에 소외되어왔던 투쟁 현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어떤 이...
-
땅으로부터 30m, 스스로를 가두다 [시선]
3월14일 새벽 4시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앞 30m CCTV 철탑에 올랐다. 지난해 11월부터 100일...
-
구멍 난 달은 맛있고, 은하는 빙글빙글 [시선]
‘큰 인간’은 따분하고 진지하다. 오직 ‘작은 인간’만이 달을 보고 “맛있어 보인다”라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지난해 전남 화순군에 있는 동복초등학교 천체사진반 학생 15명은 서충...
-
부모는 11년째 바다로 간다 [시선]
그날이 오면 부모는 11년째 바다로 간다. 매년 4월16일이면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을 찾는 유가족들이 참사 11주기를 맞아 ‘선상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유가족을 태운 버스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