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 모두 찬성하고 김건희 여사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그전에 오랫동안 벌어졌던 개 식용 종식 논쟁이 마무리되는 모습이었다. 이럴 거면 뭣 하러 그토록 싸웠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2023년만 해도 유예기간을 7년을 둘 것인가 10년을 둘 것인가 각을 세웠지만, 갑자기 3년으로 결정되었다. 개 식용을 금지하기 위해 밤잠 줄여가며 활동했던 활동가들의 공을 누군가 가로챈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부디 그 공이 쌓인 것이길 바랐다. 동물 정치도 정치라 살아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법 통과에 이어 지난해 9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개 식용 종식 로드맵’을 발표했다. 법의 사각지대로 미루어놓기만 하던 개 식용 산업을 불법화하면서 전업·폐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개를 기르거나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좋든 싫든 일상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국가가 정책적으로 그들에게 다른 업을 강제했다면 보상하는 것이 온당하다. 보상 체계를 만드는 데에 갈등이 있었지만, 폐업을 빨리할수록 보상을 더 받는 방식은 업계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보인다. 시대가 변할수록 더 심한 사회적 비난을 받던 집단은 결국 타의로라도 다른 일을 찾게 되었다.
문제는 이제 먹히지 않게 될 ‘개’다.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농장에서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개는 46만 마리가 넘는다. 농식품부의 로드맵이 발표된 다음 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는 ‘개를 어떻게 할 거냐’는 국회의원의 질타성 질의가 이어졌다. 농식품부 차관은 ‘최대한 입양 보내고 안락사는 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공영 동물보호센터에만 매년 10만 마리가 입소하고 그들 중 다수는 안락사는커녕 방치되어 병으로 죽고 부상으로 죽는 ‘자연사’라는 끔찍한 기록으로 남고 있는데 무슨 수로 46만 마리를 3년 안에 입양시킨다는 말인가.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지, 현실을 모르고 한 말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왜 할 말이 없는가 하면, 개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라는 말에 붙은 금기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가장 넓은 의미로 보자면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죽이는 기술이다. 동물의 고통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동물을 잘 죽여주는 것이 안락사다.
마리당 주어지는 폐업 보상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농가에서 개를 ‘뺄 때’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빠지는’ 개는 공중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도살되는 경험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도살은 대개 극심한 통증과 고통을 유발하는 비공식적 과정이다. 누군가의 도살에 대해 보상하면서도 스스로는 잘 죽여주는 일을 직접 하기 싫다는 정부의 선언이었다.
물론 안락사 비용은 만만치 않다.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정치적 비용도 두려우리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개 식용 종식을 왜 하는지도 생각하면 좋겠다. 개가 불쌍해서 하는 것이고 개에게 고통을 덜 주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쉬쉬하면 개의 고통만 가중된다. 개의 반발은 잘 들리지 않아 그러기 쉽다. 개 식용 종식을 위해 우리 사회가 개를 잘 죽이는 일은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 개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이는 자의 고통은 이미 개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감수해야 한다. 개 식용 종식이 누군가를 구원자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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