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묘총’ ‘전견련’ ‘햄네스티’ ‘장수풍뎅이 연구회’···. 2016년 말, 박근혜 퇴진 집회에 동물 깃발이 등장했다. 동물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던 시기였다. 잘 알려진 사회단체 이름을 살짝 비틀면서도 유쾌한 웃음을 자아냈다. 전에 볼 수 없던 종류의 발랄함과 기발함이 집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기운을 받아 대통령은 무사히 탄핵되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나 다시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하는 시간이 왔다. 윤석열은 박근혜보다 더 지독하게 권력을 휘둘렀고 더 뻔뻔하게 버티는 중이다. 동물 깃발이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8년 전의 깃발들이 거리에 건재해서 무척 반가웠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 ‘푸바오의행복을바라는모임’ ‘전국과체중고양이연합’ ‘전국고양이배긁어주기연합’ ‘얼룩말연구회’···. 시위 군중은 더 기발해졌다. 창의력 경진대회 같은 느낌으로 깃발 구경하는 재미가 늘었다. 자못 힘차게 흔들리는 깃발들은 생활 속에서든, 온라인에서든 혹은 공상 속에서든 동물과 함께하는 세상을 기꺼운 마음으로 참가자들과 나누었다.
현실에서 동물 문제를 다루는 동물운동 단체들도 깃발을 들었다. ‘민주노총 일반노조 동물권행동 카라지회’ ‘윤석열 탄핵촉구 동물운동네트워크’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행진’ 등 동물에게 각박한 사회를 바꾸고자 일상적으로 운동하는 단체들이다. 비록 윤석열과 김건희가 개를 각별히 좋아해서 ‘개 식용 종식’을 밀어붙였다 해도,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개만 예뻐하는 정권은 결국 동물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동물의 복지와 권리는 사람이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깃발이 아니라 실제 동물도 집회에서 자주 마주친다. 이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장면이 하나도 반갑지 않고 동물의 안위를 살피게 된다. 대개 겁에 질려 있고, 지나는 사람들은 한 번씩 눈길을 주거나, 어떤 경우는 만지려고 든다. 동물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러 나온 것과, 탄핵이 뭔지 상상하지 못하는 동물을 동물의 의사와 무관하게 (혹은 반하게) 시끄러운 거리로 데리고 나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동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개와 같은 동물은 집회의 에너지를 사람과 전혀 다르게 느낀다. 우리가 집회에서 다양한 주장을 마주하고, 같은 구호를 함께 외치며 에너지와 자신감을 얻는 반면, 개는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단한 음량에 압도되고 만다.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들어찬 광장은 개들에게 공포의 장소이고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다. 보호자에게 줄로 묶여 있어 도망치지도 못한다. 불꽃놀이가 개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개를 잃어버리는 일이 많은 것처럼, 집회 현장도 개에게 정말 위험하다. 부디 개를 잠깐 맡기고 광장에서 쾌적하게 만나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동물의 안위도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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