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잠이 깨어 휴대전화 화면을 열었을 때 편집국 기자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으면 가슴이 철렁한다. 한번은 한 기자가 거리에 구급차와 소방대원들이 모여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밤중에 그 메시지를 보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 또···.’ 떨리는 손으로 화면 스크롤을 내려보니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화재 현장이었다.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기자도 “처음에는 큰 참사가 발생했나 싶어 일단 사진을 찍어 보내뒀다”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29일 밤에 겪은 악몽 같은 기억이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 있다. 비몽사몽간에 눈으로 목격해버리고 만, 필터링되지 않은 동영상 속 참사의 장면들이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누구든 언제든 일상의 순간에서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한동안 공포와 무기력에 시달렸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 인파 속을 걸을 때나 아이 손 잡고 간 축제장에서 앞뒤 사람과의 거리가 좁혀지던 순간마다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이것이 정상인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돼 있는 건 아닐까.
‘교통사고 같은 일’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러한 관점 아래에선 사회적으로 곱씹어야 할 비극마저 깡그리 우연, 팔자, 운수 나쁜 날 같은 개념 속에 희석돼버린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안전 문제 활동가인 제시 싱어가 쓴 책 제목처럼, ‘사고는 없다’.
9월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용산경찰서 관계자 3명에게 이태원 참사 책임에 대한 유죄 선고를 내리면서 말했다. “피고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거나 그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 국가 사회 직역 각각의 미미한 듯 보였던 안전의식의 결여가 켜켜이 중첩되면서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 막대한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은기 기자가 쓴 커버스토리 기사에 따르면, 법정에서 판사는 한 증인에게 물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와 달리 더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앞으로 우리 사회가 붙들고 끙끙대야 할, 아니 지난 2년 사이 이미 결론이 나 있어야 할 지극히 중요하고도 당연한 이 질문이 아직도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무죄판결을 받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까지, 수많은 행정 책임자들에게서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 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없었더라면, 그날 ‘대통령실 민원 해결’ 지시가 없었다면, 그 시각 재난안전상황실이 작동했다면···. 하룻밤 만에 자식과 연인과 친구를 잃은, 159명 희생자의 유가족과 지인들만이 가슴을 치고 눈물 흘리며 그날을 복기하는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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