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유료 신문·잡지 공짜로 보기 꿀팁’을 전수하는 글을 봤다. 이런저런 방법을 쓰면 국내는 물론 해외 유료 매체를 따로 돈 내고 구독하지 않아도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로 지면 편집본의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해외 매체 디지털 구독료로 매달 얼마간 지출하고 있는 나부터도 유료 매체 소속인의 본분을 잊고 ‘이 방법 써볼까’ 혹할 뻔한 정보였다. 비법 전수 글 아래에는 “좋은 정보 공유하겠다” “진짜 필요했는데 감사하다” 유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십분 이해한다. 빠듯한 생활비에 콘텐츠 구독
윤석열 탄핵을 기다리던 올해 초, 절반은 취재 목적, 절반은 악취미 활동으로 극우 유튜브를 종종 시청했다. 여러 인상적인 영상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 유튜버가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 항변하다 울먹이던 순간이다. 평소 온갖 혐오 표현을 일삼으며 ‘쎈캐’를 자랑하던 그 유튜버(현재 마약 투약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돼 있다)를 동요시킨 단어는 다름 아닌 ‘화교’였다. 극우 유튜버들 사이 내분이 일어난 가운데 누군가 그를 중국인 출신으로 몰아갔고, 그는 그 루머를 가장 못 견뎌 했다.자신의 출생지를 걸고 ‘1억원 내기를 하자’
‘유괴·납치·장기 적출, 엄마들은 무섭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중단하라!’ 최근 서울 구로구 한 사거리에 내걸린 현수막 문구다. ‘애국시민’ 후원 계좌번호와 유튜브 채널 큐알코드가 함께 찍혔다. 그 앞을 책가방을 멘 어린이·청소년들이 지나갔다. 바로 인근에 초·중·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다. 이 학교 학생 상당수가 ‘다문화’ ‘이주 배경’ 학생이다. 특히 중국 동포들의 자녀가 압도적이다. 그 아이들의 눈에 그 현수막 문구는 어떻게 비쳤을까?“스파이의 어린이들” “김치 냄새 난다” “조선인을 보건소에서 처분해라”···. 2009~2010
44분 중 40분이었다. 서두 4분을 제외하곤 오로지 ‘우리’에 대한 자화자찬이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나라” “우리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강력한 경제, 가장 강력한 국경, 가장 강력한 군대, 가장 강력한 우정, 그리고 가장 강력한 정신···.”균형과 포용, 상호의존성을 통해 지역 경제 통합을 꾀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기조연설에서 트럼프의 ‘우리(we)’는 오로지 미국만을 뜻했다(“우리는 7개 경합 주에서 모두 승리” “우리가 압승”과
언젠가부터 페이스북 ‘친구 요청’에 비슷한 부류의 신청자들이 쌓였다. 멀끔한 외모의 젊은 남성 사진이 프로필로 설정된, ‘강주원’ ‘최승민’ ‘김현수’ 같은 한국인 이름의 소유자들이다. 딱 봐도 ‘스캠’이다 싶어 처음엔 친구 신청을 삭제하다가, 그것마저 귀찮아 그냥 쌓아둔 지 오래다. 텔레그램으로 허구한 날 인연을 찾는다느니 대박 투자 정보를 주겠다느니 말을 거는 의문의 초대자들도 무심하게 ‘신고’하고 ‘차단’하기 바빴다.그러니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주식·코인 사기, 총책, 범죄 단지(웬치)·
〈시사IN〉은 창간 2주년인 2009년 추석 때부터 매년 ‘한국 사회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도해왔다. 올해도 지난 제942·943 한가위 합병호·창간기념호에 2025년 조사 결과를 담았다.‘대법원’은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 항목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2009년 첫 조사에서 대법원은 5.35점을 기록했다.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0점, 매우 신뢰하면 10점이다. 중간을 넘었다. 별 감흥 없는 숫자로 보이지만 이 정도면 매우 고득점이다. 국가기관 신뢰도 점수가 5점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 정부 1년 차인 청와대, 2020년
‘감성팔이 법.’ 그간 노란봉투법을 두고 나온 비판의 말들 중 가장 흔하게 접한 표현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노란봉투법은 실제 인간의 ‘마음’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다. 2014년 2월 노란봉투 캠페인이 막 출발했을 당시, 그때까지의 기부자 1만7500명(최종 4만7547명)이 후원 페이지에 남긴 댓글을 수집해 분석해보았을 때, 단어 의미망 가운데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어휘는 ‘사람’ 그리고 ‘마음’이었다.2013년 12월 〈시사IN〉 편집국에 4만7000원이 담긴 봉투를 보내며 ‘노란봉투 캠페인’을 최초로 이끌어낸 세 아
‘새만금’ 하면 아직 긍정적인 어감이 남아 있다. 초등학생 시절 사회나 과학 교과 시험 ‘단골’ 주관식 문제였다. “서해 33.9㎞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축조해, 완공되면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는 이 사업의 이름은?” 정답은 “○○○ 간척사업.” 바다를 가로지르는 새만금 방조제의 조감도 그림이 교과서 안에 멋들어지게 실려 있었다. 1990년대에 새만금은 실로 ‘혁신’의 상징이었다.1991년 새만금 개발사업 첫 삽을 뜬 이후 34년이 지났다. 초등학생이 중년으로 자라는 동안 ‘혁신’은 빛이 바래갔다.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새만금
9월11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한·미 양국의 3500억 달러 금융 패키지 조성과 이번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단속을 감안했을 때, 향후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에 어떤 영향이 있나?” 이 대통령은 한국인 구금자 석방·귀국 상황과 한국 기업들의 대미 직접투자에 대한 고민을 언급하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3500억 불(달러) 이야기는…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물어본 것 같아서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희미하게 웃다가 고개를 숙인 이 대통령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읽힌
지난주 급하게 연락을 받았다. 국경없는 기자회(RSF)에서 ‘가자지구 언론인 살해 중단 촉구 공동 행동’ 참여를 제안해왔다. 2021년 ‘#WatchingMyanmar(미얀마 반군부 언론인 지원 캠페인)’ 등 국제 언론인 연대 활동을 여러 차례 이끌어온 김영화 기자가 이번에도 의욕을 보였다.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엠바고가 풀리기 전이라 지난 호(제938호)에는 관련 내용을 싣지 못하고 9월1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던 0시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RSF가 배포한 공통 이미지와 문구를 내걸었다
지난주, 삼풍백화점 참사 30주기 이야기를 취재한 신선영 기자에게서 두꺼운 기록물 하나를 전달받았다. 1996년 6월 서울시가 발간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였다. 760쪽에 달하는 백서 속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은 놀랍게도 ‘자화자찬’이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한날한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친 참사 현장에서 얼마나 빛나는 ‘시정(市政)’이 발휘되었는지 꼼꼼하고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그 가운데 555쪽 ‘방송보도대응 내용’으로 소개된 서울시 부시장의 TBS 라디오 인터뷰 내용이 압권이다. 당시 서울시는
지난 7월 〈시사IN〉에 소장이 하나 날아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소액2과에서 보낸 위자료 청구소송 서류였다. 원고는 고성국·성창경·이영풍. 모두 유튜버로 유명한 이들이다. 이 세 사람은 〈시사IN〉이 자신들에게 각각 1000만원씩을 지급하게끔 해달라고 재판부에 청구했다. 사유는 자신들을 ‘모욕’한 손해배상 책임이다.이들은 지난 6월 이오성 기자가 쓴 ‘파면에서 대선까지, 극우 유튜브 2차 탐방기(제925호)’ 기사를 문제 삼았다. 〈시사IN〉이 그 기사에서 자신들을 ‘극우 유튜버’라 지칭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통념상 비이성적이고
주요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의 사면 소식 외에,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보도자료에 눈에 띄는 구절이 몇 개 있다. 법무부는 이번 특사에 포함된 ‘특별배려 수형자’의 사례를 몇 가지 들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A씨(여, 34세) 잔행집행면제(약 2월)• 차량에서 지갑을 절취한 범행으로 징역 8월이 확정되어 수형 중• 현재 생후 5개월 된 아들(2025년 3월생)을 교도소에서 양육하고 있음B씨(여, 67세) 특별감형(약 2월)• 마트에서 합계 11만원 상당의 양말, 닭강정, 고기 등의 식료품을 훔친 사실로 징역 1년 확정되어 수형 중•
늘 궁금했다. 왜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가. ‘권선징악’이 의심스러웠다. 김 아무개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의 유서(8월6일 〈한겨레〉 보도)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는 ‘김건희 디올 백 수수’에 대한 권익위 처분 결과 때문에 괴로워했다. 국가청렴위원회 출신으로 공직 생활 대부분을 부패 방지 업무에 매진한, 영국에서 부패 방지 분야 석사학위를 받고 근래 행정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지난 20년간 만든 제도를 제 손으로 망가뜨릴 줄이야, 이젠 뒤늦은 후회지만”이라며 자책했다.2024년 6월10일 권익위는
막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이의 새 일자리를 두고 어른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주 고약한 직업인데.” “어린애들이 굴뚝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있었지요.” “그건 애들을 굴뚝에서 다시 내려오게 한답시고 짚을 물에 적셔서 땠기 때문입니다요. ··· 진짜 뜨거운 불길만큼 그놈들을 냉큼 내려오게 하는 건 없지요. 게다가 인도적인 조치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녀석들이 굴뚝에 껴서 꼼짝 못하는 경우라도 발을 불로 지져대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거든요.” 이들은 “비용 절감” “장부상으로는 괜찮은데”와 같은 말들도
얼마 전 생일을 맞아 편집국 후배들이 조그만 케이크를 선물해줬다. 회의 중 ‘서프라이즈’로 문을 열고 들어와 초 꽂은 케이크를 내 앞에 갖다놨다. “소원 빌고 촛불 끄세요, 국장” 하기에 손을 모으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읊조렸다. “기자들 마감 빨리 하게 해주세요, 후!” 눈을 떠 기자들 표정을 살피니 썩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저 인간 또 마감 타령이냐’ 생각했겠지 싶어 짧게 후회가 스쳤다.이번 주 임지영 기자가 쓴 김애란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신작 〈안녕이라 그랬어〉를 펼쳤다. 수록 단편 ‘좋은 이웃’의 한 구절에서 눈이
돈이 참 무섭다. 돈이 인식을 만들어낸다. 행동을 변화시킨다. 쓰레기에 돈이 부과되면서 쓰레기 배출량이 줄었다. 비닐 봉투를 돈 주고 사게 되니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혼잡통행료를 거뒀더니 대중교통 이용률이 올라갔다.내지 않던 곳에 새로이 돈을 내게 되면 당연히 반발이 생긴다. 그 가격이 합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제껏 계속 비용이 발생되던 부문인데 아무도 내지 않고 있었다면?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 이득을 누리면 누군가는 그 대가(손해든 노동력이든 노력이든)를 치러야 하는 법. 다만 그 이익과
7월10일, 두 가지 정의가 실현됐다. 이날 오전 박정훈 대령의 업무 복귀가 확정됐다. 채 상병 특검은 박 대령에 대한 형사재판 항소를 취하했다. 박 대령은 ‘항명죄 피고인’ 혐의를 벗고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돌아왔다. 같은 날 새벽,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12·3 내란 특검이 주장한 ‘증거인멸 우려’ 사유 등이 받아들여졌다. 지난 1월 한 차례 구속됐다 3월 풀려난 뒤 4개월 만이다. 윤석열은 다시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머그샷을 찍고 3평 미만 독방에 수감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두 개의 결론, 혹은 시작이다.정의가 실현된다
4월4일 오전 11시22분, 편집국 텔레비전 화면 속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마지막 주문(主文) 낭독을 들으면서 다짐했다. ‘저분을 꼭 〈시사IN〉 지면에 모셔야지.’ 곧 예정된 퇴임 날이 다가오는 동안 방법을 궁리했다. 분명 여기저기서 인터뷰 제안이 쏟아질 텐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4월18일 문 전 대행의 퇴임사 속에서 묘안을 찾았다. 가족과 동료,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퇴임사 말미에 ‘저에 관해서 가장 많은 글을 쓴, 그리고 저보다 더 제 자신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김훤주 선생(전 〈경남도민일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세간의 관심은 온통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사람들을 쓰고 어떤 정책을 펼칠지에 쏠려 있다. 당면 과제가 많지만 언론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서는 어떤 언론 정책을 추진할지도 관심사다. 0순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다. 여당 몫, 야당 몫 나누어 정치권이 이사진을 추천하는 통에 방송사 인사와 콘텐츠까지 영향을 받게 되니 관련 법(통칭 방송3법)을 개정해 바꿔보자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 때도 필요성을 인정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때를 넘겼으니 이번에는 속도전이 불가피하다.하지만 그와 별개로 고민할 것들, 발상 전환만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