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마무리됐다. 이 세상에는 뭔가 뻔하고, 관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으면 상쾌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 연말 결산이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다. 2023년을 수놓은 음악 중 몇 개를 골라봤다. 내 취향과 음악적인 평가를 모두 고려한 리스트임을 밝힌다. 국내로 한정했고, 이 지면을 통해 이미 소개한 뮤지션·밴드는 제외했다.

Tik Tak Tok / 실리카겔(Feat. So!YoON!)

제15회 멜론 뮤직 어워즈에 참석한 록 밴드 실리카겔. ⓒ연합뉴스
제15회 멜론 뮤직 어워즈에 참석한 록 밴드 실리카겔. ⓒ연합뉴스

‘틱 택 톡(Tik Tak Tok)’은 의심할 여지 없는 2023년 최고의 록 싱글이다. 인디에서 출발했지만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까지 석권하면서 어느덧 더 많은 대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만약 응축된 에너지를 능란하게 다스리고, 언제 터트려야 하는지를 잘 아는 밴드가 훌륭한 록 밴드라면, 실리카겔은 대한민국 대표 록 밴드로서 손색이 없다. 한층 견고해진 신시사이저 기반의 사운드, 폭발적인 기타 솔로 등 록을 듣는 쾌감이 듣는 이를 타격한다.

 

One, World, Wound / 다브다

매스 록이라는 장르가 있다. 이름 그대로 ‘수학 록’이다. 자세히 말하면 ‘정확하게 (감정선을 포착해) 연주하는 걸 목표로 하는 록’이다. 뭐, 굳이 장르의 의미까지 알 필요는 없다. 다브다의 ‘원, 월드, 운드(One, World, Wound)’는 흔히 얘기하는 입체적인 구성의 정수를 일궈낸다. 몇 번의 변주를 거쳐 3분10초 즈음 터져 나오는 절정을 꼭 경험해보길 권한다. 산책하면서 듣다가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호수 / 전유동

2023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다. 통계를 봤더니 압도적으로 이 곡을 자주 찾았다. 마치 스매싱 펌킨스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곡을 플레이할 때마다 초집중 상태가 된다. 단어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 하나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곡이 한 바퀴 돌고 난 뒤 3분 즈음부터 펼쳐지는 호수의 진경이 처연하고, 아름답다.

 

아인슈페너 / 황푸하

대학 시절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프랜차이즈 따위 거의 없었다. 가끔 돈이 생기면 대학가 부근 커피숍에 가서 ‘비엔나 커피’를 마셨다. 알다시피 비엔나(빈)에 정작 비엔나 커피는 없다. 물론 커피 위에 크림이 올라가는, 같은 형태의 음료는 있다. 이걸 아인슈페너라고 부른다. 잡설이 길었다. ‘아인슈페너’는 2023년 내 마음속 참신한 가사 1위다. 탁월한 싱어송라이터 황푸하가 아인슈페너를 주제 삼아 우리 인생을 노래한다. 어쿠스틱한 질감을 절묘하게 활용한 곡 전개 역시 탁월하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 여유와 설빈

이 곡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통곡하는 슬픔이 아니다. 뭐랄까. 고저의 기복이 없는, 참으로 안정적인 슬픔이다. 슬픔의 최종 형태라고나 할까. 〈슬픔의 위안〉이라는 책에서 본 문장을 적는다. “진짜 슬픔이란 모든 드라마가 끝난 뒤에야 찾아온다. 비극이 제공하는 아드레날린이 소진된 후에야 진짜 슬픔은 찾아온다.” 이 곡에서의 슬픔이 바로 그렇다. 어느덧 삶을 사는 조건이 되어버린, 그런 슬픔.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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