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라는 장르가 있다. 흑인들이 만든 장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강력한 반대의 벽에 부딪힌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기어코 그 벽을 허물고 세계를 제패한 장르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팝 음악사를 통틀어 디스코만큼 드라마틱한 운명을 겪어야 했던 장르는 없다.
태초에 블루스가 있었다.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 선조들의 음악을, 목화 따면서 불렀던 게 블루스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병충해로 목화 산업이 타격을 입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 북부에서 군수산업의 노동 수요가 높아진 것이다. 그 결과, 1910년부터 1930년 사이 흑인 약 200만명이 북부를 향해 떠났다. 역사는 이를 ‘흑인 대이동’이라고 기록한다.
자연스레 남부 한정이었던 블루스가 북부, 그중 시카고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단, 시카고의 블루스는 기왕의 블루스와는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카고는 당시 남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도시였다. 음악은 당대를 닮아가기 마련이다. 대도시의 빠른 생활 방식에 맞춰 블루스도 자연스럽게 변화를 거듭했다.
미국 남부 흑인이 애용한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였다. 그러나 대도시의 소음 속에서 어쿠스틱 기타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기 기타를 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들은 전기 기타를 통해 도시의 더 빠르고 강력한 ‘리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블루스에서 ‘일렉트릭 블루스’ 혹은 ‘리듬 앤 블루스’로의 진화다. 이 리듬 앤 블루스가 1960년대 들어 흑인 민권운동의 ‘메시지’와 만나 ‘솔’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바로 이 솔 다음에 위치하는 흑인음악 장르가 두 개 있다. ‘펑크’와 오늘 다루는 ‘디스코’다.
무엇보다 디스코는 1960년대부터 대중음악에서 패권을 장악한 록과 대척점에 있었다. 일단 소비층부터가 달랐다. 록이 백인 남성 중산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디스코는 인종으로는 흑인과 히스패닉, 젠더로는 성소수자들,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 사랑한 음악이었다. 더불어 디스코는 록이 중시한 리얼 연주에 별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렇다. 디스코는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굳이 연주하지 않아도 음악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최초로 증명한 장르였다.
다 됐다. 1970년대 들어 디스코의 인기가 높아지자 록 팬들의 반감 역시 들끓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디스코는 ‘진짜’ 음악이 아니었다. 신시사이저를 통해 뽑아낸 소리로 가공된 가짜 음악이었다. 하나 더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록은 정신을 고양하는 음악이었다. 반면, 디스코는 육체의 쾌락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음악이었다. 중산층 백인 남성들은 디스코를 경멸했다. 좀 더 과감하게 분석한다면 백인 남성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긴 까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나. 인간은 도덕적 굴레로 인해 자신이 은밀히 욕망하는 대상을 거리낌 없이 욕망하는 타자와 마주하면 결코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질투하고, 멸시하는 쪽을 택한다.
거칠게 분류하면 그것은 사회 여러 지점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음악적 갈등이었다. 오죽하면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음반을 수만 장 쌓아놓고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장에서 폭약으로 터트려버린, ‘디스코 파괴의 밤’ 행사를 했겠나. 물론 이 행사의 주최자는 유명 ‘록’ 전문 디제이였고,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성애자 백인 남성 중산층’이었다. 현재의 음악 풍경을 본다. 디스코를 하지 않는 가수는 거의 없다. 위켄드도 디스코를 하고, 두아 리파도 디스코를 한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장르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강한 장르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장르가 강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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