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국의 권위 있는 두 상을 휩쓴 레이.ⓒEPA
올해 영국의 권위 있는 두 상을 휩쓴 레이.ⓒEPA

‘로열 앨버트 홀(The Royal Albert Hall)’이라는 공연장이 있다. 런던에 지어졌고, 원래 이름은 많이 달랐다. ‘더 센트럴 홀 오브 아츠 앤드 사이언시스(The Central Hall of Arts and Sciences)’였다. 1871년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인 프린스 앨버트를 기리기 위해 재공사를 하면서 이름을 로열 앨버트 홀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공연장이지만 가수만 무대에 오른 건 아니다. 사회 각 분야 인사들, 예를 들면 윈스턴 처칠이나 앨버트 아인슈타인 등이 이곳에서 연설했다.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복서였던 레녹스 루이스의 경기가 열렸고 무하마드 알리 관련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 팬에게 로열 앨버트 홀은 무수한 전설이 콘서트를 연 최고의 라이브 공연장으로 기억된다.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할 수 없다. 그냥 클래식, 재즈, 팝, 록을 막론하고 널리 이름을 알린 뮤지션·밴드·오케스트라가 다 이곳에서 라이브를 했다고 생각하면 거의 정확하다. 세계 최대의 클래식 축제인 프롬(Proms)이 매년 열리는 곳도 로열 앨버트 홀이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대중음악으로 한정한다면 로열 앨버트 홀에서 라이브 공연을 한 뮤지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가수는 이 이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아델이다.

아델의 경우, 이미 차고 넘치는 기사가 있으므로 생략한다. 핵심은 이제부터다. 얼마 전 어떤 가수의 로열 앨버트 홀 라이브가 발표되었는데 아델의 그것을 뛰어넘는 찬사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걸 인지한 팬이 아직 많지 않다. 영국에서는 톱스타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까닭이다.

가수 이름은 레이(Raye),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어린 시절부터 가스펠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그녀가 솔로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건 (이전까지 히트곡이 없지 않지만) ‘이스케이피즘(Escapism, 2022)이라는 곡을 통해서였다. 이 곡은 특히 틱톡에서 바이럴되면서 영국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라갔다.

어쨌든 이런 히트곡을 기반으로 2023년 발표한 첫 정규작 〈My 21st Century Blues(나의 21세기 블루스)〉는 상업적 성공만이 아닌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록이 증명한다. 여러분은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대부분 브릿 어워드를 선택할 테지만 아니다. 이보르 노벨로상 또는 머큐리상이 꼽힌다. 〈My 21st Century Blues〉는 이 두 상을 모두 휩쓸면서 차세대 거물이 등장했음을 널리 인증해줬다.

지난 10월 중순 발매된 〈My 21st Century Symphony(나의 21세기 심포니,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는 위에 설명한 데뷔작을 로열 앨버트 홀에서 라이브로 연출한 결과물을 담은 음반이다. 이 음반, 진심으로 환상적이다. 앨범을 단지 복사하는 게 아닌, 풀 오케스트라와 빅 밴드를 동원해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했는데 스튜디오 버전보다 훨씬 압도적인 소리의 체험을 선사해준다. 레이의 보컬은 랩과 가창을 오가면서 관객들의 환호성을 끊임없이 길어낸다. 말 그대로, 노래 진짜 잘한다.

딱 다섯 곡이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서 순서대로 1번부터 5번 트랙까지만 감상해주길 부탁한다. 확신할 수 있다. “아, 저 공연장에 나도 있었더라면” 하고 속마음이 절로 튀어나올 것이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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