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 교육 기사를 준비하는 동안 영국 사회를 다룬 현지 저자들의 번역서를 찾아 헤맸다. 데이비드 굿하트의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이나 대런 맥가비의 〈가난 사파리〉 등도 흥미로웠지만, 재미 측면에서 이 책을 따라갈 순 없었다. 주말 카페 한편에서 큭큭대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이토록 귀여운 ‘아재’들의 이야기라니. 〈빌리 엘리어트〉에 등장하는 파업 노동자 세대가 나이 먹고 〈빅뱅이론〉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딱이다.

저자는 영국으로 이주한 일본인이다. 영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책에는 노동계급인 남편 친구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소싯적 저항깨나 해본, 이웃 이주민의 어려움에는 팔 걷어붙이고 돕지만, 막상 브렉시트에는 찬성표를 던진 베이비부머 세대 백인 노동계급 아저씨들의 이야기다. 그토록 저항적인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자연스럽게 자동차 수리공, 도장공, 택시 기사의 길을 택했고, 동네 펍(Pub)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늙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책이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브렉시트와 NHS(국영 의료서비스), 노동운동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외부인 시선’ 덕분에 이들의 위선과 위악이 더욱 흥미롭게 전달된다. 이 아재들, 로맨스 앞에서 한없이 진중해지고 인생의 굴곡 앞에서 움츠러든다. 포퓰리즘에 찬동하는 ‘백인 아재’들을 미디어는 만악의 근원처럼, 납작하게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과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그런 표심 하나하나의 배경에는 각자의 삶과 사연이 있다. 덧붙이자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영화 〈브렉시트:치열한 전쟁〉도 함께 보길 권한다. 책과 영화 모두 대륙 반대편에서 벌어진 국지적 이야기 같지만, 보고 나면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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