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손 가는대로 집었을 뿐인데 우연히 이 책이 걸렸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책의 주인공은 그리스인 알렉시스 조르바다. 평생을 책벌레로 살아온 ‘나’가 역동하는 삶의 화신 조르바를 만나 도전하고 춤추며 감탄하는 이야기다. 조르바는 모든 순간에 현존한다. 밥을 먹고 있다면 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면 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 어떤 해찰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부처에 몰두해 있는데, 그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곤 하는 조르바가 오히려 진정한 구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조르바보다도 크레타가 더 눈에 들어온다. 초행길엔 보이지 않던 풍경이 그다음엔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지어 사실은 크레타가 책의 진짜 주인공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예컨대 이런 문장 때문이다.
“바다가 펼쳐지는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한 파도가 크레타섬의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훌륭한 산문을 닮아 보였다. 세심하게 흐름이 잡히고, 과장이 없고,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힘이 있으면서도 절제된 글. 최소한의 것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표현해낸다.”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세기의 명작을 추천하는 일은 참 겸연쩍은 일이다. 읽을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읽었을 것이란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한번 집어들게 만드는 기분 좋은 우연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건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이 춥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크레타의 햇살이 그리워지기 충분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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