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대법원 판결이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를 받아들이는 건데… 별짓을 다 할 겁니다. 전쟁터로 들어가는 거죠.” 지난해 11월7일,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확인 승소를 확정받고 해성운수로 복직한 ‘이기고 돌아온 택시 노동자’ 방영환씨(55)는 이렇게 복직 소감을 말했다(〈한겨레 21〉, 2022년 11월27일).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9월26일, 방영환씨는 회사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복직 축하 꽃다발을 받던 바로 그 자리였다. 방씨는 227일째 회사 사업장 앞에서 홀로 1인 시위를 하던 중이었다. 분신하는 모습을 목격한 회사 임원이 소화기를 가져와 급하게 불을 껐지만 그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10월6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10월2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방영환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기관들을 규탄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10월2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방영환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기관들을 규탄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발단은 복직 후 회사가 방영환씨에게 내민 계약서였다. 회사는 방씨와 새로이 근로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계약을 거절했다. 계약 조건이 ‘완전월급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방영환씨가 요구한 ‘완전월급제’는 법적으로 2020년 1월1일부터 시행된 제도다. 법인택시 기사의 임금체계는 과거 주로 ‘사납금제’가 활용됐다. 사납금제하에서 택시 기사는 매일 일정한 금액을 회사에 납부해야 한다. 기준 금액을 초과한 수입을 올린다면 차액을 오롯이 가져갈 수 있지만, 반대로 기준 금액을 채우지 못하면 부족분을 자신의 사비로라도 메워야 한다.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또 초과 수입을 올리기 위해 난폭운전과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그 폐단이 너무 크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사납금제는 법적으로 금지됐다.

1997년 여객자동차법 개정으로 공식적으로 사납금제가 폐지되고, 대안으로 ‘전액관리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법안이 불완전해 여러 차례 논란이 되다가 보완 입법을 거쳐 2020년 전국에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사납금제와 달리 전액관리제는 운송 수입금이 많든 적든 모든 금액을 회사에 납입하게 한다. 구체적인 분배 방식을 법률상 명시하진 않았지만, 일정 운송 수입을 올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금지됐다. 전액관리제 도입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노동계에서는 이를 ‘완전월급제’라고 명명했다. 일정 시간 이상을 일하면 그에 해당하는 임금을 조건 없이 월급으로 지급하라는 의미다.

법적 금지 이후에도 지속된 ‘변형 사납금제’

하지만 전액관리제가 법적으로 시행된 이후에도, 법인택시 회사들은 사실상의 사납금제를 운영했다. 매일 일정한 액수 이상의 수익이 보장됐던 사납금제와 달리, 전액관리제하에서는 회사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다수의 택시 기사 또한 사납금제를 선호했다. 비록 위험하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지만, 사납금제하에선 당장 높은 수입을 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사라진 듯한 사납금제는 양측의 결탁 아래 물밑으로 꾸준히 유지돼왔다.

2020년 2월 방영환씨가 부당해고를 당하게 된 발단 역시 사납금제였다. 당시 회사가 방씨에게 제시한 근로계약서는 겉보기에는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듯했다. 그러나 계약 세부를 들여다보면 사실상의 사납금제가 유지됐다. 계약서에 따르면 해성운수의 기사는 매일 실 영업시간(손님이 탑승하여 미터기가 작동한 시간)을 매일 5시간30분 이상 채워야 했다. 만약 그만큼 실 영업시간을 채우지 못했다면, 실제로 기사가 몇 시간을 근무했든지 간에 하루 노동시간 6시간40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소금액’을 기준으로 하진 않았지만, 유사하게 ‘최소 손님 탑승 시간’을 기준으로 내세워 전액관리제를 위반한 것이다. 방영환씨는 이 계약서가 최저임금법 등을 위반한다며 서명을 거부했고, 해성운수는 서명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고서를 네 차례 발송하고 방씨를 해고했다.

해성운수 앞에 차려진 고 방영환씨의 제단 ⓒ시사IN 조남진
해성운수 앞에 차려진 고 방영환씨의 제단 ⓒ시사IN 조남진

방영환씨가 소속돼 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에 따르면, 해성운수는 복직 이후에도 이와 동일한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방씨에게 요구했다. 그는 다시 한번 서명을 거부하고 회사를 상대로 투쟁에 돌입했다. 회사는 이번엔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씨를 해고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니 가장 최근에 서명한 2019년 1월1일자 근로계약서를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6시간40분씩 주 6일 근무를 했지만, 과거 계약서에 따라 하루 노동시간을 3시간30분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올해 7월 그가 받은 급여는 기본급과 근속수당 등을 전부 합쳐도 세전 103만2129원에 불과했다. 노조는 해성운수 측이 집회 중인 방영환씨에게 폭언·폭행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성운수 관계자는 자신들이 현재 완전월급제 취지를 위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임원은 “실적과 관계 없이 매월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실 영업시간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루 근무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행위도 없다. 폭행 주장은 양자 간 갈등 상황을 노조가 부풀려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월급제를 100%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을 덧붙였다. 〈시사IN〉은 회사가 방영환씨에게 제시한 계약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에서 월급제를 100% 시행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지 물었지만 해성운수는 답하지 않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의 결정서를 보면, 해성운수는 적어도 지난해 상반기까진 전액관리제를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해성운수 등 법인조합 254개사가 소속돼 있던 서울특별시택시운송사업조합은 지난해 1월 한국노총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단체협약 내용에 따르면 택시 기사는 실 영업시간 5시간15분 이상을 달성해야 하루 노동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월 435만원의 기준 운송수입금을 납입해야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수당(상여금 등)을 받을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월 435만원을 벌지 못하고 하루에 손님을 5시간15분 이상 태우지 못한다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결국 서울지노위는 지난해 6월 단체협약이 ‘변형된 형태의 사납금 방식’이라며 최저임금법 등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와 유가족이 함께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해성운수 등 택시법인 20여 개를 운영하는 동훈그룹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지노위의 결정 이후에도 서울지역 법인택시 회사들은 사실상의 사납금제를 유지 중이다. 고인의 딸 방희원씨(30)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최소한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장례를 미룰 것이다. 적어도 해성운수의 사과를 받아내고, 최저임금 이하로 급여를 지급해 발생한 임금 체불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없는 법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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