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8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택시회사 차고지에 기사가 없어서 운행을 못하는 빈 택시가 늘어서 있다. ⓒ시사IN 신선영

‘택시 대란’의 기미가 보인다. 서울 도심에서 택시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자정 이후 심야 시간대에 특히 심하다. 지난 11월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 지침(이른바 ‘위드 코로나 정책’)을 내놓으면서 격화됐다. 식당·카페 등의 운영시간 제한이 사라져 심야 택시를 타려는 사람이 늘어서 생긴 일이다.

11월17일 서울시 도시교통실 자료에 따르면, 11월 들어 심야 시간(오후 11시~오전 4시) 택시 수요는 전월 대비 최대 100% 폭증했다. 반면 공급은 37% 늘었다. 팬데믹 이후 누적되어온 구조적 문제라는 평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엄격히 시행하던 지난해 연말에도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택시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존재했다. 단계적 일상회복 지침을 내놓으면서 여기에 불이 붙었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택시 수가 원인이다.

정확히 말해 줄어든 것은 택시 수가 아니라 ‘택시 기사 수’다. 택시업계 종사자들은 “차는 많다. 사람이 없어서 운행을 못할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법인택시다. 택시는 택시회사에 소속된 법인택시와 개인이 관리하는 개인택시로 나뉘는데, 4대 6, 3대 7 정도 비율로 개인택시가 더 많다. 문제는 개인택시가 밤 시간대에 운행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주로 고령층이기에 주간 근무를 선호하며, 무리하게 연장 근무를 하지 않는다. 밤이 되면 택시는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대중교통이 끊겨 수요는 늘어난 상황에서, 이를 감당해야 할 소수의 법인택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서울의 법인택시 기사는 2만여 명으로, 2년 전보다 1만명이 줄었다.

법인택시 기사들이 떠나는 것은 팬데믹 여파 때문이다. 2년간 영업시간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하면서 택시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데 개인택시 기사와 달리, 법인택시 기사는 업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있다. 택시회사에 내는 사납금이다. 택시회사가 기사에게 차량을 빌려주는 명목으로 물리는 돈이다. 법인택시 기사는 정해진 사납금을 회사에 내고 나머지 소득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영업해왔다. 공식적으로 사납금은 폐지됐다. 대신 ‘전액관리제’라는 월급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변형된 형태의 사납금이 존속하고 있다. 손님을 태우지 못해 소득은 줄어드는데 회사에 내야 할 사납금은 고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수 기사들은 택시업계를 떠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물류나 배달업계에 주로 흡수됐다는 이야기가 많다. 택시와 정반대로 팬데믹 기간에 수요가 급증한 업종이었다. 택시 기사들은 “택시보다 2배 이상 번다고 들었다” “나이가 많아 배달업계로 옮기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택시업계에 남아 있는 이들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상황을 타개한다. 승차 거부다. 심야에 택시를 잡기 어려운 건 그 절대적 수가 적어서만은 아니다. 기사들은 ‘플랫폼’을 악용한다. 심야의 택시는 좀처럼 길에서 불러 세우기 어렵다. ‘카카오T’ 등 택시 호출 앱을 통해 장거리나 번화가로 가는 손님만 골라 태우는 이들이 있다. 전면에 ‘예약’ 전등을 켜놓고 달리거나, ‘빈차’ 전등을 켜둔 상태에서 길의 손님을 지나쳐간다. 장거리 호출을 기다리며 골목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강남·홍대 등 번화가에서 플랫폼 택시 불법운행 집중단속을 시작했다.

위법행위 단속은 단기적 해법이다.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심야 택시의 수요와 공급 중 어느 한쪽을 해결해야 한다. 서울시는 우선 택시 수요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았다. 심야버스 노선을 늘린 것이다. 12월1일부터 한 달간 강남역, 홍대입구, 이태원 등 혼잡 지역을 경유하는 ‘올빼미 버스’를 도입했다. 기존 노선 8개는 노선별로 버스 대수를 늘렸다.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나온다. 11월16일부터 내년 1월1일까지 심야 시간대 개인택시 3부제를 해제했다. 현재 서울 개인택시는 ‘운전자 과로 방지, 차량 정비, 수요·공급 조절’을 위해 가·나·다 3부제로 운영하고 있다. 연말까지 이 조치를 해제해 심야 시간대에는 매일 영업할 수 있게 되었다. 12월8일부터는 취업박람회를 열었다.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과 각 택시회사는 박람회를 통해 취업한 기사에게 3개월간 매월 20만원 지급, 택시운전 자격증 취득 비용 부담 등 혜택을 준다고 밝혔다.

손님과 기사가 합의하는 택시비

택시업계는 수요·공급을 일시적으로 조정하는 서울시 조치들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가격’, 즉 택시비를 자율화하는 것이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택시사업연합) 이양덕 전무는 이렇게 말했다. “택시 요금은 지방자치단체가 정한다. 시의원과 대학교수, 시민단체 대표를 위촉해 위원회를 구성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나? 택시는 대중교통이 아니다.” 2013년 1월 국회가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해 재정 혜택을 주는 택시법을 통과시켰으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된 바 있다. 이 전무는 택시의 수급 불균형은 그 애매한 지위 때문이라고 본다. “대중교통에 포함해 정부가 택시업의 채산성을 보장하거나, 일반 서비스처럼 시장에 가격을 맡겨야 한다. 지금의 택시는, 가격은 낮은 수준으로 묶인 채 재정지원은 부족한 업종이다. 일하려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소득 대비 한국 택시비는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에 속한다. 요금을 묶어둔 채 택시회사 팔을 비틀어 공급을 뽑아낸 정책이 코로나19라는 충격을 맞고 파산했다고 업계는 본다. 차라리 가격을 자율에 맡겨서, 손님과 기사가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게 만들자는 게 택시사업연합의 제안이다. 이 경우 플랫폼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길에서 무작위로 택시를 잡아타야 하던 때와 달리, 소비자가 미리 자신에게 맞는 요금제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심야’ ‘단거리’에 가는 손님은 기본료가 높은 회사를 선택할 것이다. 주간 요금은 회사 간 경쟁이 붙어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요금 조정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일부 기사들은 ‘출혈경쟁’을 우려한다. 심야 시간대 외에는 사실상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택시요금제가 바뀐다고 법인택시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회의론도 있다. 민주노총 택시지부 이삼형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배달 라이더들의 임금은 택시 기사보다 확연히 높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법인택시의) 전체 매출은 줄었다. 그런데 운행 택시 한 대당 매출은 오히려 전보다 늘었다. 그렇다고 기사 임금이 오른 것은 아니다. 택시비 체계가 바뀌어도 사업주 배만 불릴 가능성이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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