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택시 기사 김덕윤씨는 전액관리제 시행 후 실수령액이 줄었다고 호소한다.ⓒ시사IN 조남진

사납금은 택시 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다. 법인택시 기사가 매일 내는 정해진 금액을 사납금이라 부른다. 사납금 이상 벌면 기사가 갖고 사납금을 못 채우면 기사 월급에서 공제한다. 기사들의 오랜 요구 끝에 2019년 사납금은 폐지됐다. 대신 ‘전액관리제’가 강화됐다. 기사는 사납금이 아니라 번 돈 전부를 회사에 입금하고, 회사는 그에 따라 임금을 준다. 그런데 정작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자 사납금이 나았다고 말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이는 지금의 전액관리제는 “노예 계약”이라고 주장한다.

오랜 기간 사납금은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됐다. 매일 정해진 액수를 입금해야 한다는 압박이 기사들을 눌렀다. 손님이 적은 날에는 사비를 들여 사납금을 채워 넣어야 했다. 일부 기사들은 사납금 이상을 벌기 위해 긴 시간 노동하고 난폭운전을 일삼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전액관리제다. 매일 ‘수입 전체’를 입금하되, 벌이가 적더라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회사와 기사 간 매출 분배는 월급을 지급하면서 이뤄진다. 기사와 회사가 영업 부담을 분담하기에 이론적으로는 더 안정적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제주에서 법인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덕윤씨는 전액관리제가 “강탈”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하는 A사는 지난 5월부터 사납금을 폐지하고 전액관리제를 시행했다. 전액관리제 시행 이전 A사 사납금은 15만8000원. 기사들은 25일 근무 기준 매월 395만원을 사납금으로 냈다. 제주도는 택시 수요가 높은 곳이다. 김씨는 사내에서도 특히 매출이 괜찮은 축이었다. 올해 들어 꾸준히 700만원에서 950만원 사이의 매출액을 올렸다. 10시간 이상, 길게는 15시간까지 일한 결과였다.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과, 고정급여 약 120만원(25일 근무 기준)을 받았다.

전액관리제 시행 뒤 김덕윤씨의 소득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시행 이전인 4월과, 시행 이후인 7월 소득을 비교해보자. 매출액 785만9220원을 올린 4월에는 512만8142원을 김씨가 가져갔다. 그런데 그보다 많은 941만5180원을 번 7월에는 420만1780원을 가져가, 수입은 오히려 100만원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25일) 일하고, 실적은 더 올렸는데, 가져가는 액수가 줄어든 것이다. 벌이가 7월만 못했던 6월과 8월 김덕윤씨의 수입은 300만원대로 떨어진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매출 분배 방식 탓이다. 엄밀히 말해 전액관리제는 ‘월급제’와는 다르다. 기사가 손님 몇을 태우든 노동시간에 따라 정액을 주는 방식이 아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전액관리제에 대해, ‘미터기에 기록된 운송수입금 전액을 근무 종료 당일 회사에 수납할 것’ ‘일정 금액을 정하여 납부하지 않을 것’만 규정한다. 수입금 전액 납부와 사납금 폐지까지만 전액관리제의 영역이다. 매출을 어떤 식으로 분배할지, 즉 임금을 어떻게 줄지는 따로 정하지 않는다. ‘매출액–사납금=기사 소득’이란 오래된 공식이 사라지자 현장에서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회사가 성과수당 40% 가져가”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 김덕윤씨가 일하는 A사의 월급 지급 방식은 이렇다. 우선 매출액 전부를 회사가 가져간다. 이후 기사에게 고정급여와 성과수당을 준다. 여기서 각종 세금·보험료를 공제한다. 고정급여 액수는 전액관리제 시행 이전과 같다. 성과수당은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토대로 계산한다. 이 기준액은 일 15만8000원으로, 전액관리제 시행 전 사납금 액수와 같다. 이전에는 매출에서 사납금을 뺀 금액을 기사가 모두 가져갔는데,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에는 60%만 기사 몫이다. 40%는 회사가 가져간다. A사 기사들에게 ‘사납금 폐지’란, 납부 부담이 사라졌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사납금 외의 나머지’를 전부 가져갈 수 없다는 게 더 뼈아프다. A사의 한 기사는 전액관리제가 “죽어라 일해서 번 내 돈 40%를 빼앗아가는 이상한 제도”라고 말했다.

A사 관계자를 만났다. 이 관계자는 회사 임금체계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성과수당을 6대 4로 배분하는 방식은 회사와 기사가 미리 합의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어용 노조’가 회사 이득에 따라 체결한 합의도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지난해 전액관리제를 시행했다가 기사들의 반발로 폐지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성과수당 배분 비율을 놓고 기사 전원이 투표를 한 적도 있다. 이후 제주도청 강행 규정으로 인해 전액관리제를 다시 시행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비노조원을 포함해 기사들에게 미리 알리고 동의를 받았다.”

애초 왜 기사의 성과수당 일부를 회사가 가져가야 할까? 김덕윤씨와 동료 기사들은 “배분 비율을 제시할 게 아니라 초과수당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걸 미리 고지했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에도 사납금과 같은 액수의 수익을 보장받는다. 그렇다면 이전처럼 기사에게 성과수당 전부를 임금으로 줄 수는 없을까? A사 관계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신고해야 할 세금과 지급해야 할 퇴직금이 늘었다. 이전에는 사납금과 120만원가량의 고정급여만 계산했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전액’을 회사에서 신경 써야 한다. 반대로 말해 기사는 당장 소득은 줄어도 퇴직금이 늘어난다.”

A사 관계자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 임금체계가 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한 것 자체가 ‘변형 사납금’이라는 주장이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제주지회 이승명 지회장은 “기준금을 정해 미달하면 월급에서 공제하고, 성과수당 지급액을 정하는 것은 사납금이나 다름없다. 사납금제와 다른 것은 성과수당을 회사가 가져가게 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해석은 다르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사납금 폐지 이후 전액관리제 법령에 대해 질의를 받았다. 매출액이 기준액보다 떨어질 때 임금을 깎는 것만 사납금이고, 위법이라고 국토부는 답했다. 같은 15만8000원이라도 ‘성과급 발생 기준액’으로만 쓰인다면 사납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행 전액관리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열심히, 오래 일하는 기사다. 사납금 부담에 허덕이던 기사는 전액관리제하에서 법으로 구제받는다. 운이 나빠 벌이가 시원찮은 날이라도 제 돈으로 사납금을 채워 넣어야 하는 일은 이제 (공식적으로는) 없다. 반면 제주도처럼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손님을 많이 태우는 김덕윤씨 같은 이는 불만이 쌓인다. 같은 시간 똑같은 방식으로 일했는데 월급이 20%가량 깎였다. 여느 택시 기사들처럼 고령층이 다수인 A사 기사들 사이에는 “사납금만큼만 채우고 일 안 하는 게 낫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다른 직종으로 떠나는 사람도 많다. 이 회사 택시 48대 가운데 13대는 기사가 없어 서 있다. A사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전액관리제 시행 여파가 겹쳤다. 어느 날 갑자기 차 열쇠 두고 나가는 기사들이 나왔다. 회사로서도 전액관리제 대신 사납금 받는 게 여러모로 낫다”라고 말했다.

전액관리제가 본래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급여가 올라야 한다고 보는 이도 있다. 사납금 부담은 줄었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가기에 부족한 금액만 급여로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월급제에 가깝게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택시 기사는 ‘실제로 일한 만큼’ 노동시간을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58조에 따라 ‘소정근로시간’만큼 일했다고 간주된다. 노사 합의에 따라, 개별 기사들이 몇 시간을 일했든, 일정 시간만 일했다고 정하는 것이다. “사업장 밖에서 일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속해서다. 120만원이라는 기본 급여는 이렇게 나온 계산이다. 이승명 지회장은 “택시 기사는 벌이가 너무 불안정하다. 기사가 업계를 뜨는 이유는 최저 생계가 보장이 안 돼서다. 실제로 일한 만큼 최저임금을 보장해줘 안정된 생계가 되면 모두 돌아온다”라고 말했다.

반면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양덕 전무는 월급제가 “택시의 특성을 무시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차고를 떠난 택시는 회사에서 관리·감독할 수 없다. 월급만 받고 일을 안 해도 강제할 수단이 마땅찮다. 이 전무의 말이다. “장시간 노동해서 (상응하는) 금액을 받기도 싫고, (정해진) 월급을 받고 싶다는 게 월급제인데 택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장에서 안정된 월급을 줄 처지가 안 된다.” 그는 전액관리제 시행 뒤 ‘현장의 혼란’을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으로 노사가 소정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합의한 곳이 있는데, 기사가 딱 4시간만 일하고 차를 (회사로) 입고시켜버린다. 그러고 나서 한 달 치 월급을 달라고 한다. 월급제를 시행할 수 없는 환경이다.”

사납금제로 되돌아가는 게 정답일까

제주 A사 관계자는 택시 기사들의 노동시간을 ‘객관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아침 8시에 차를 몰고 나와서 밤 10시에 들어갔다면 14시간이다. 그렇다고 이 기사가 14시간 일했다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30분 일하고 40분 쉬고, 2시간 일하고 3시간 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회사만 배불리는 악습으로 지목된 사납금제가 실은 열심히 일하는 기사에게 혜택을 주고, ‘관리·감독’ 역할도 겸해왔다고 주장한다.

10월10일 제주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행렬.ⓒ시사IN 조남진

2019년 대법원은 택시 기사의 근로시간은 실제에 가깝게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정근로시간을 지나치게 낮게 잡은 것은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최저임금법 위반이며, 무효라는 것이다. 택시 기사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같은 해 신설됐다.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에 따라 이 조항은 지난해 서울에서 시행됐고, 타 지역은 ‘공포 후 5년을 넘지 않는 때’에 시행할 예정이다. 노조는 조속한 전국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택시회사들은 법을 우회해 제 몫을 챙긴다. 법에 따라 임금을 인상한 곳 중 성과수당 기준액을 함께 올린 곳이 많다. 사납금과 마찬가지로 회사는 이 액수를 매달 가져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월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사 동기부여를 위해 전액관리제를 인센티브 시스템(사납금제)으로 바꾸자고 국토부에 건의했다”라고 말했다. 10월5일 서울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택시 사업자 90.8%, 택시 기사 64.7%가 전액관리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기사들은 성과수당 배분(39.8%), 기준금 높음(21.3%), 성실-불성실 근로 차이 미미(14.5%) 따위를 이유로 꼽았다. 기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보수체계는 사납금제다(43.3%). 김덕윤씨 역시 고정급여 인상보다 성과금을 더 가져가는 체계가 낫다고 본다. 그와 동료 기사들은 성과수당을 후하게 주거나 암암리에 사납금제를 시행하는 제주 지역 다른 회사들 이야기를 종종 한다. 집단행동 여부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A사의 항복이나 기사들의 퇴직이 이 문제의 종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자명 제주·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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