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8일 열린 한국-우루과이 평가전에서 작전을 지시하는 클린스만 감독.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을 새로운 수장으로 영입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카타르월드컵 16강의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뛴다. 현역 시절 클린스만은 ‘전차군단’ 독일의 스트라이커 계보에서도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잡이를 논할 때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은퇴 후 지도자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대표팀(독일, 미국)과 클럽(바이에른 뮌헨, 헤르타 베를린) 감독직을 두루 거쳤는데, 명과 암이 공존한다. 대표팀 감독으로는 월드컵에서 확실한 족적(2006년 독일 4강행, 2014년 미국 16강행)을 남겼지만 클럽에서는 고전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 그의 마지막 팀이었던 헤르타 베를린에서는 구단과 불화 끝에 SNS로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나는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 부임 소식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했던 이유다.

클린스만 체제로 첫 소집한 대표팀의 면면은 지난 카타르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상 중인 황희찬, 홍철, 윤종규가 빠진 대신 월드컵 예비 멤버였던 오현규와 부족한 왼쪽 측면 수비를 맡을 이기제가 선발된 정도였다.

실제로 3월 친선전에서도 급진적인 변화보다 점진적으로 팀에 스며드는 쪽을 택했다. 첫 경기였던 콜롬비아전(3월24일) 선발 명단은 지난 월드컵 베스트 멤버와 흡사했다. 최전방에 조규성을 세우고 그 아래에 손흥민·이재성·정우영(프라이부르크)을 배치했다. 중원과 센터백도 벤투 전 감독이 가장 신뢰했던 황인범·정우영(알사드) 조합과 김민재·김영권 조합을 택했다.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경기를 지배하고 목적성 높은 빌드업을 지향하던 전임 감독의 색채가 초반부에 나왔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템포를 높이고,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공격으로 나가는 속도를 끌어올렸다. 클린스만 감독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핵심은 손흥민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손흥민은 벤투 감독 시절 측면을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콜롬비아전에서는 최전방의 조규성과 동일 선상 혹은 앞뒤로 움직이며 상대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가 손흥민의 멀티골이다. 콜롬비아전 전반 10분 이재성을 중심으로 팀 단위 압박을 가해 골키퍼 실수를 유도한 다음 손흥민의 감아차기 슛으로 첫 골을 넣었고, 전반 추가시간에는 상대 수비벽 사이를 가르는 프리킥으로 추가 골을 만들었다. 과거 조제 모리뉴 감독이 토트넘을 이끌던 시절 보여준 손흥민 활용법을 대표팀에서도 재현한 인상이었다.

이번 시즌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 체제에서 손흥민은 지난 시즌 득점왕의 페이스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시즌 초반 안와골절로 마스크를 쓰고 뛰는 등 컨디션이 온전치 않았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해리 케인, 데얀 쿨루세브스키, 히샤를리송 등과 공존하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콘테 감독은 손흥민의 위치를 측면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으로 잡았다. 손흥민이 득점에 근접할 수 있는 상황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콘테 감독은 토트넘 구단과 불화 끝에 3월26일 사임했다).

반면 클린스만 체제에서 손흥민은 공격의 중심이었다. 이전 대표팀 시절보다 더 전진한 상태로,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손흥민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공격의 속도와 효율을 모두 올렸다. 손흥민도 최근 토트넘에서 보기 힘들었던 미소를 연신 지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콜롬비아전에서 손흥민 역량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루과이전 집중 관찰 대상은 이강인이었다. 이강인은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A 매치 첫 풀타임을 소화했다. 남미에서도 터프하기로 유명한 우루과이 수비수들을 상대하며 특유의 볼 터치와 개인기로 측면을 허물었다. 왼발잡이 이강인은 전반전 정확한 오른발 크로스로 우루과이 수비진의 허를 찔렀다. 소속 팀 마요르카에서도 오른발 사용 빈도를 점차 높여가는 중인데,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플레이로 무기를 하나씩 추가하는 모습이다. 최근 1년 동안 ‘피지컬적으로’ 자신감이 붙었고, 왼발 일변도의 약점까지 상쇄했다. 이강인의 노력과 진화는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신뢰로 응답받는 분위기다. 벤투 시절과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한데, 전술적 시스템에 선수를 가두기보다 선수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팀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클린스만 감독의 성향이 드러난 90분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더 적극적인 변화가 느껴진다. 대표팀 운영 원칙에 자유롭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 국적이지만 미국인 아내와 결혼한 뒤 20년 넘게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래서인지 유럽식 축구에 미국식 사고를 가미한 팀 운영법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대표팀 소집 후 훈련을 오전으로 앞당긴 것이 대표적이다. 오후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팀과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공언했다. 유럽 대부분의 축구팀 사이클처럼 오전에는 팀 단위의 피지컬 훈련이나 전술 훈련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선수별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자율 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적응이 안 돼 눈치를 보던 선수들이 콜롬비아전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슈팅 연습이나 포지션별로 모여 패스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커피 한잔” 적극적 소통 나선 클린스만

“특별한 일과가 없다면 선수들과 커피 한잔 즐기고 싶다”라던 클린스만 감독의 말대로 티타임도 성사됐다. 그룹별로 혹은 개별로 클린스만 감독과 커피를 두고 다양한 대화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 개인의 고민이나 요청 사항도 이 과정에서 공유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루과이와의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는 선수들 이름과 얼굴을 외웠다며 이전 훈련에서 쓰던 유니폼의 배번을 없앴다. 식사 시간 분위기도 달라졌다. 다소 정적인 분위기였던 식사 시간을 떠들썩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선수들에게 ‘큰 소리로 대화하자’고 제의했다.

국내 축구계와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도 과거 외국인 지도자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콜롬비아전에서 요추 부상으로 대표팀을 떠난 김진수의 대체자를 찾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설영우(울산)를 대체 발탁했는데, 소속 팀의 홍명보 감독과 빠르게 소통해 추천받았다. 두 감독은 현역 시절 미국에서 활동한 인연으로 교류를 이어왔다. 홍 감독은 “설영우에게 관심을 보여서 선수가 가진 장단점을 설명하며 추천했다”라고 말했다. 클린스만 이전 외국인 지도자들은 선수 선발이나 대표팀 운영에서 한국 지도자와 접점을 두지 않았다. 종종 선수 차출을 두고 ‘불통’ 논쟁이 일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홍명보 감독의 정보를 활용하고, 차두리 FC서울 유스 디렉터를 대표팀 어드바이저로 영입해 한국 축구 연착륙을 시도 중이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답게 화법도 흥미롭다. 대중의 이목을 모으는 법을 안다. 이강인의 활약을 칭찬하면서 “우루과이가 이강인을 막을 방법은 파울밖에 없었다”라고 추켜세웠다. 셀틱에서 빠르게 적응하며 성장한 오현규에게는 “골을 넣겠다는 배고픔을 지닌 선수”라고 표현했다. 감독 공백기 동안 유럽 유명 매체에서 축구 패널로 출연하고 경기 해설을 했던 만큼 메시지가 직관적이다. 선수에게는 화려한 표현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미디어와 팬들에게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첫인상은 늘 배신한다’라고들 하지만, 새 감독의 첫인상은 부임 당시 우려를 적지 않게 지워낸 모습이다. 클린스만 체제 9일 대표팀의 변화상이다.

기자명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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