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요르단전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 손흥민(왼쪽)과 이강인.ⓒ연합뉴스
2월7일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요르단전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 손흥민(왼쪽)과 이강인.ⓒ연합뉴스

아시안컵 후폭풍은 겉보기에 봉합 국면이다. 다툰 선수들이 화해 소식을 알리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경질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전력강화위원장을 교체하고 신임 감독 물색에 나섰다. 그러나 축구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근원적 갈등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성적은 4강 진출이었다. 월드컵 4강을 경험한 한국팀에게 아시아 4강은 눈에 차지 않는 성적이다. 더구나 이번 대회 대표팀에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FC),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FC), 김민재(FC 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명문 팀 주축 선수들이 속해 있었다. 여론의 비판이 유독 거센 까닭은 우승컵을 가져오지 못해서가 아니다. 경기력이 너무 좋지 않았다. 대회 기간 내내 한국은 몇몇 스타플레이어들의 개인 기량에 의존했다. 조직력과 유기적 움직임에 바탕을 둔 ‘약속된 공격 루트’를 찾기 어려웠다. 2월7일 0-2로 패해 탈락한 준결승 요르단전에서는 이 약점이 극대화됐다.

경기 내용보다 훨씬 큰 파장을 부른 사고는 탈락 후 터졌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이 2월14일, ‘요르단전 전날 손흥민과 어린 선수들이 다퉜다’고 보도했다. “몇몇 어린 선수가 탁구를 치려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찍 일어났다. 주장 손흥민이 돌아와서 앉으라고 하자 그들은 무례하게 대꾸했다. 다툼이 시작됐고 손흥민은 모두를 진정시키다 손가락을 다쳤다. 손흥민이 문제 삼은 후배 중에 이강인도 있다.” 〈더 선〉 보도 뒤 한국 언론의 후속 기사가 쏟아졌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서로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의 주먹에 손흥민이 맞았다’ 등 내용은 제각각이었다. 2월21일 이강인은 손흥민을 찾아갔다며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손흥민도 “이강인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게시했다.

해외에서 유년을 보낸 이강인이 한국의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강인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기에는 대표팀 내 ‘하극상’이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을 오래 취재해온 한 스포츠 매체 기자는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은 사건·사고가 많다”라고 말했다. 후배 선수가 선배 선수에게 반기를 들고, 그 후배 선수가 베테랑이 되면 신예들에게 치이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파벌’ 문제도 새롭지 않다. 대표팀 안 아슬아슬한 ‘위화감’은 수년 전부터 공공연하게 흘렀다. 유럽파와 국내파, 세대 간 충돌만도 아니다. ‘재력’ 차이도 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중동·중국 등지에서 뛴 선수의 사례를 귀띔했다. “유럽에서 뛰는 웬만한 선수들보다 (중국·중동에서) 돈을 많이 버는 선수가 대표팀에 있었다. 고액의 명품을 다른 선수에게 자랑해 위화감을 빚었다. 10년쯤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한국 국가대표팀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 프로 구단과 대표팀에서 비슷한 갈등이 불거졌다. 유명 감독들은 통제와 조율을 통해 분란을 잠재우고 성적을 낸다. ‘팀 장악력’이라는 축구 감독의 덕목에는 갈등 해소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여기에 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대체로 클린스만을 호평했지만, 마찬가지로 평가가 좋았던 전임 감독 파울루 벤투와는 그 결이 달랐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 전) 벤투 감독이 국내 언론에서 질타받을 때도 선수들은 ‘훈련이 재미있다’ ‘프로그램이 신뢰할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 물으면 주로 ‘좋은 분이다’라는 답을 들었다. 선수들에게 엄하지 않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한다는 뜻이다.” ‘방치형 감독’은 전술뿐만 아니라 극단적 충돌 상황에서도 제 성향을 드러냈다. 요르단전 전날 다툼 현장에는 클린스만 감독도 있었다. 경기 전 그는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저 대회에서 탈락한 뒤인 2월15일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 이후 선수단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으나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월8일 아시안컵 탈락 후 귀국 인터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월8일 아시안컵 탈락 후 귀국 인터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축구협회는 어떤 과정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을까? 축구협회와 클린스만의 설명은 미묘하게 갈린다. 2월1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벤투 선임 때와 같은 과정으로 진행했다. (후보) 61명을 23명으로 좁히고 최종 5명에서 우선순위를 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1월21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클린스만은 “카타르 월드컵 때 VIP석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만났다. 내가 ‘감독을 찾고 있나?’라고 물었다. (중략) 몇 주 후 정 회장이 실제로 전화해 ‘매우 관심 있다’고 했다. 이게 선임 계기다”라고 말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정 회장 개인이 평가도 거치지 않은 클린스만을 모종의 이유로 감독 후보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너진 체계, 불투명한 선임 과정

지난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벤투 감독 선임 때는 어땠을까. 서호정 〈풋볼리스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2017년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이 만든 체계가 있다. 명확한 근거에 따라 선임하겠다는 게 골자다. 홍명보 당시 전무이사가 김 위원장을 뒷받침했다. 이렇게 선임된 사람이 벤투 감독이다.” 2018년 7월5일 기자회견에서 김판곤 당시 위원장은 한국 축구가 나아갈 방향을 세우고, 여기 맞는 지도자를 물색하겠다고 말했다. 능동적 경기 스타일, 매우 강한 역습, 더 많이 뛰는 축구 등을 축구 철학으로 내세우고 후보들의 포트폴리오가 그와 일치하는지 살폈다. 2021년과 2022년 홍명보·김판곤 두 사람이 차례로 축구협회에서 나간 뒤부터 ‘선 기준 후 물색’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축구계에서 나온다. 그 결과가 클린스만이라는 악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월21일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은 새 감독에 대해 전력강화위에서 “외국인 감독(선임)도 열어놨지만 국내 감독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3월에 치를 2026 북중미 월드컵 예선에 대비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였다. 축구계에서는 ‘기강 확립 차원’에서 국내파로 기울었다는 관측도 있다. 클린스만이 한국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 대표팀 내 갈등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클린스만과 정반대인 ‘카리스마형’ 국내파 감독을 앉힌다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수들이 상명하복을 거부하는 젊은 세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전과 달리 현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위상이 너무도 올라갔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보다 화려한 선수 경력을 갖춘 지도자는 한국에 없다. 그보다 더 어린 선수들도 다수가 유럽 명문 팀에서 유망한 길을 걷고 있다. 웬만큼 명성이 높은 감독이 아닌 이상 선수들에게 도전받을 소지가 많다는 이야기다. 축구계에서는 ‘지난 카타르 월드컵 이후 선수들이 외국인 감독 선임을 요구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설령 축구협회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절차를 거쳐 감독을 선임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불화 요소는 언제든 고개를 내밀 수 있다는 의미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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