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롭 리버풀 FC 감독(가운데)이 2월25일 리그컵 정상에 올라 선수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REUTERS
위르겐 클롭 리버풀 FC 감독(가운데)이 2월25일 리그컵 정상에 올라 선수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REUTERS

유종의 미. 최근 유럽 축구계에서 눈에 띄는 흐름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 리버풀 FC는 1월26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위르겐 클롭 감독이 시즌 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구단에 알렸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클롭 감독은 리버풀의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라고 발표했다. 성적 부진 탓은 아니었다. 당시 리버풀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고 리그컵 결승에도 진출한 상태였다. 계약기간도 아직 2년이 더 남았다. 클롭 감독이 자진해서 물러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번아웃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클롭 감독은 2015년 여름 리버풀 사령탑에 올랐다. 그의 전술적 장기는 빠르고 강한 압박이었다. 모하메드 살라를 앞세운 정교한 역습이 더해져 리버풀은 숙원을 풀었다.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첫 리그 우승까지 달성했다. 리그 우승은 프리미어리그의 전신인 풋볼리그 디비전1 시절 이후 30년 만의 일이었다. 클롭 감독은 1960~197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를 연 빌 섕클리 이후 최고의 감독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이 성취에 든 막대한 에너지가 문제였다. 구단 발표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클롭 감독은 직접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충격받을 거라는 걸 이해한다. 나는 리버풀 FC, 리버풀이라는 도시, 응원단 등 모든 것을 사랑한다. 팀과 스태프를 사랑한다. 그러나 에너지가 고갈됐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다.” 우발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어느 순간에는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난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안다.” 클롭이 마무리로 택한 단어는 ‘존중’과 ‘사랑’이었다. 팀과 자신 사이에 “큰 신뢰가 남았다”라고 말하며 인연의 여지를 남겼다.

클롭 감독의 사임이 예고된 지 이틀 만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가 FC 바르셀로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2021년부터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고 팀을 이끌어온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이 시즌 종료 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야레알과의 2023-2024시즌 리그 22라운드 경기에서 3-5로 패한 직후였다. 그는 “며칠간 고민했는데 지금이 발표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문제점이 아닌 해결책이 되고 싶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비 감독은 FC 바르셀로나에서 유스 선수 경력을 시작한 팀의 레전드다. 감독 부임 후 2022-2023시즌 라리가 우승을 달성하며 경영 위기의 팀을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리그 최대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 돌풍의 지로나에게도 밀리며 우승 경쟁에서 크게 멀어지고 말았다.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슈퍼컵) 우승에 실패했고, 코파 델 레이(국왕컵)에서도 탈락했다. 경기력도 급락했다. 자연스럽게 비판의 총구가 감독에게 향했다.

많은 이들이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리버풀 FC와 FC 바르셀로나는 오히려 두 감독의 사임 예고 후 순항 중이다. 리버풀은 2월25일 열린 리그컵 결승에서 첼시를 꺾고 클롭 감독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리버풀 부임 후 클롭 감독의 여덟 번째 트로피였다. 2월27일 현재 기준 프리미어리그 선두 경쟁에서도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에 승점 1점 차로 앞서 있다. 바르셀로나는 사비 감독의 사임 발표 후 치른 리그 5경기에서 4승 1무로 무패 행진을 달렸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원정경기에서도 나폴리와 비기며 추후 홈에서 치를 경기 결과에 따라 8강 진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팀 성적과 무관하게 두 구단은 다음 감독 선임 절차에 들어섰다. 사비 감독은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승하더라도 사임 결심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밝혔다.

1월31일 사비 에르난데스 FC 바르셀로나 감독이 라리가 축구 경기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P Photo
1월31일 사비 에르난데스 FC 바르셀로나 감독이 라리가 축구 경기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P Photo

유럽 축구 리그에서는 ‘즉시 경질’이라는 처방이 꽤 흔하다. 성적에 매우 민감한 탓이다. 팀이 우승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2부 리그로 강등될 경우 구단 운영에 큰 차질을 빚는다. 중계권·스폰서·티켓 수익 규모가 큰 폭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액의 잔여 임금을 지불하더라도 감독 교체를 단행한다.

그럼에도 리버풀 FC와 FC 바르셀로나는 ‘예고된 작별’을 택했다. 리버풀 FC의 경우, 클롭이 의욕을 잃었다 해도 당장 보내줄 수 없었다. 8년간 팀에서 놀라운 역사를 쓴 절대적 존재를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FC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다. 사비는 감독이기 이전에 유스 시절부터 팀의 기둥으로 자리 잡은, 대체 불가한 레전드였다. 리더십의 약화라는 위험성을 감내하면서도 구단 경영진이 시즌 끝까지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배경이다.

‘즉시 경질’하면 속은 시원하지만···

독일의 FC 바이에른 뮌헨도 최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2월22일 뮌헨은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토마스 투헬 감독과 오는 6월 결별한다고 밝혔다. FC 바이에른은 명실상부 분데스리가 최강팀으로 평가받지만 올 시즌 바이엘 04 레버쿠젠과의 선두 경쟁에서 앞서나가지 못했다. 앞선 결별 발표 역시 레버쿠젠에 0-3으로 완패당한 것을 시작으로 리그, 챔피언스리그까지 3패에 몰리자 내린 결론이었다. 투헬 감독이 이 결정에 동의함으로써 양자는 계약기간을 1년 앞당겨 해지하게 됐다.

‘시즌 후 감독 교체’라는 결론은 같지만, FC 바이에른 뮌헨의 결정은 리버풀 FC, FC 바르셀로나와 배경이 좀 다르다. 바이에른 수뇌부는 올 시즌 부진한 이유에 대해 종합적 분석을 했다. 그 결과 감독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선수단 구성, 구단 관계자들의 판단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리그 우승이 날아가게 생긴 상황에서도 최대한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결론을 도출하려 했다. FC 바이에른은 지난 시즌 투헬 감독의 전임자인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을 시즌 도중 경질해 내홍을 겪은 바 있다.

리버풀 FC와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은 대안을 찾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기까지 2~3개월의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감독들도 자신의 평판을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말 그대로 유종의 미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강등권 추락 같은 즉각적 위기가 아닌 이상, 이런 식의 예고 사임이 감독 교체의 새로운 흐름이 될 수도 있다.

‘즉시 경질’이라는 선택이 긴 부진에 답답한 팬들과 언론의 속을 뚫어줄 수는 있어도, 그 대안을 결정해야 하는 구단 수뇌부는 시간에 쫓겨 불확실한 판단을 하게 만든다. 유럽 리그에서 보이는 일련의 흐름은 최근 국내 축구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국가대표팀 감독 교체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작별에는 반성과 숙고가 생략됐고, 후임 선정을 놓고도 나아갈 방향을 종잡지 못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자명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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