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0일(한국 시각) 스코틀랜드 셀틱 FC 데뷔전을 치른 오현규 선수. ⓒREUTERS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만들어낸 ‘최대 아웃풋’은 무엇일까? 카타르에서 스타덤에 오른 조규성? 빅클럽 이적설이 있던 이강인? 답부터 말하자면 셀틱에 이적한 오현규다. 수원삼성 소속으로 벤투호에 합류했던 오현규가 월드컵이 끝나고 열린 겨울 이적시장에서 셀틱 FC(스코틀랜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예비 멤버로 월드컵을 경험했던 그의 경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도약이다. 이적료는 250만 유로(약 38억원). 스물두 번째 생일을 맞기도 전에(2001년 4월생) 친정 팀에 거액을 안겨주고 꿈을 좇아 유럽으로 떠나는 선수가 됐다.

지난 1월30일(한국 시각), 오현규는 입단 닷새 만에 던디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후반 37분 교체 출전했다. 짧은 시간에도 위협적인 크로스로 셀틱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른 데뷔전에 스스로도 만족한 것 같다. 경기 후에는 앞장서서 팬들의 환호에 춤사위로 호응했다. 이후 일주일 사이 세 경기에 계속 후반 교체 출전하며 적응력을 올린 그에게 현재까지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조 하트, 애런 무이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좋은 능력을 보여준다”라고 칭찬했다.

셀틱은 지난 여름 말미부터 오현규를 주목했다. 당시 오현규는 강등 위기에 내몰린 소속 팀 수원을 최전방에서 이끌며 ‘소년가장’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었다. 186㎝, 83㎏의 탄탄한 체구, 낮은 무게중심으로 상대 수비를 밀고 들어가며 날카로운 슈팅을 날리는 저돌성이 무기였다. 오현규도 지난해 8월경 처음으로 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며 본격 유럽행 준비에 나섰다. 하반기 내내 인상적인 활약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수원에는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K리그1(1부 리그) 생존이었다. 급기야 승강 플레이오프(K리그1 11위 팀과 K리그2 승강 플레이오프 승자와의 대결로 강등과 승격이 걸린 승부)까지 치러야 했다. 수원은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오현규의 결승골에 힘입어 극적으로 잔류했다. 승강 플레이오프 포함 리그에서만 14골 3도움을 기록한 오현규의 가치를 높이 산 것은 셀틱만이 아니었다. 카타르월드컵을 준비하던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특급 유망주에게 꽂혔다. 월드컵 개막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손흥민의 부상(안와골절)이라는 최대 변수가 발생하자 오현규는 그 대체 카드가 됐다. 11월 소집 명단에 깜짝 발탁된 오현규는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 교체 출전했다.

결과적으로 오현규는 소위 ‘그림자’ 포지션인 27번째 멤버로 월드컵을 마쳤다. 그의 역할은 주로 동료들의 훈련 파트너였다. 하지만 손흥민을 비롯한 대표팀 주축 선수들은 오현규의 능력과 대표팀을 위한 희생정신을 늘 칭찬했다. 오현규 스스로도 예비 멤버로 다녀온 월드컵을 통해 축구를 보는 눈이 한층 트였다고 인정했다. A 대표팀 발탁과 직간접적인 월드컵 경험은 셀틱으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다.

이적료 38억원과 연봉 8억원

당초 수원은 셀틱의 1차 제안에 반응하지 않았다. 2023시즌 이병근 수원 감독의 구상 안에도 오현규의 위치는 확고했다. 셀틱은 이후 두 차례 더 제안을 보내다. 계약조건도 점점 상향했다. 최종적으로 1차 제안의 2.5배에 달하는 이적료 38억원과 연봉 8억원을 제시했다. 최종 제안을 통해 셀틱은 오현규의 가치를 확실히 인정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수원도 선수의 의사를 확인하고는 이적을 허락했다.

오현규보다 14년 앞서 셀틱에 입단한 기성용의 나이는 당시 만 20세 11개월이었다. 오현규는 그보다 한 살 더 많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이미 군 문제를 해결한 예비역이라는 사실이다. 손흥민조차 와일드카드(연령 초과 선수)로 2016년 리우 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잇달아 노크한 끝에 병역 혜택을 봤다. 권창훈은 독일 무대에서 활약하다 국내로 돌아와 현재 국군체육부대와 연계한 김천상무에서 뛰고 있다. 이들과 달리 오현규는 경기력만 유지된다면 유럽 생활을 이어가는 데 걸림돌이 없다. 2020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해 일찌감치 병역을 마쳤다.

프로 선수로 자리매김한 과정 역시 현재 K리그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오현규는 수원이 2008년부터 공을 들인 유스 시스템 안에서 6년간 성장했다. 고3이 되던 겨울방학에는 K리그 준프로 계약 제도의 수혜자가 됐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프로 경기에 출전했다. 2019년 4월26일 포항 원정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9일 뒤에는 K리그 최대 라이벌전인 FC서울과의 슈퍼매치에 선발 출전해 큰 주목을 끌었다. 자신감을 얻은 오현규는 2022시즌 수원에서 폭발했다. 유스 시스템부터 이어진 9년의 시간이 오현규의 경쟁력을 만든 배경이다.

오현규는 셀틱 입단 후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였다. 수원 팬들에게 남긴 작별인사 때문이다. SNS에서 축구 선수들은 흔히 각 팀의 주요 컬러를 이모지로 표현하는데, 수원의 팀 컬러인 ‘청백적’이 공교롭게도 셀틱의 최대 라이벌인 레인저스의 팀 컬러와 동일했다. 셀틱 팬들은 “이제 너는 셀틱 선수다. 네가 뛸 곳은 녹색의 경기장이다. 그 컬러는 그만 써라”며 성화였다.

셀틱은 레인저스에 비해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다. 10여 년 전에 이미 나카무라 슌스케(일본), 기성용과 차두리(한국), 정쯔(중국) 같은 아시아 선수를 영입해서 활용했다. 셀틱에서 크게 성공한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이웃한 세계 최고의 무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용(셀틱→스완지시티), 버질 판다이크(셀틱→리버풀)가 대표적인 사례다. 라이벌 레인저스가 과도한 빚과 세금 체납 때문에 하부 리그로 강제 강등되는 아픔을 겪는 동안 셀틱은 더 공고한 입지를 쌓았다. 최근 11시즌 중 10시즌을 정상에 올랐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오현규 외에도 조규성(사진), 그리고 부산의 젊은 미드필더 권혁규에게 제안을 보냈다.ⓒ연합뉴스

셀틱의 성공을 이끌고 있는 감독은 그리스계 오스트레일리아인 엔제 포스테코글루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표팀에서 성공적인 이력을 쌓은 뒤 일본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감독을 지냈다. 요코하마에 15년 만의 우승을 선사한 그는 2021년 여름 셀틱 감독으로 깜짝 선임됐다. 이후 자신이 잘 파악하고 있는 일본 선수들을 잇달아 영입했다.

일본 선수에 이어 한국 선수들에게 눈독을 들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아시안컵이나 AFC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한국 선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겨울 오현규 외에도 조규성(전북), 그리고 부산의 젊은 미드필더 권혁규에게 제안을 보냈다.

유럽 언론은 포스테코글루 감독 부임 후 셀틱의 이런 선수 영입 전략을 ‘아시아 제국’으로 표현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나란히 16강에 오른 한국과 일본의 뛰어난 재능을 유럽으로 끌어오는 관문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아시아 선수들의 기량에 편견 없이 접근해 그들을 통해 경기력 상승, 향후 이적료 수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중계권까지 아시아권에 판매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처럼 스코틀랜드도 아시아 선수들의 유럽 진출 교두보가 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오현규는 셀틱에서 유럽 적응을 마치고 1차 검증을 통과해 더 큰 무대로 향하는 꿈을 꾼다. 셀틱 이적은 그의 밝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자 윈윈 효과를 위한 선택이다.

기자명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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