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하이테크(Hi-technology, 고도의 과학기술)’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안도감을 경계하며 ‘기후테크(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술)’ 스타트업 세 곳을 찾았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벼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이 가진 진짜 무기는 기술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것이었다. 에너지·순환경제·모빌리티, 세 분야에서 치열하게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는 혁신가들의 현재를 만났다.

■ 자전거 중고 거래 플랫폼 | 라이트브라더스

자전거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다. 아니다. 자전거는 ㎞당 7.6g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 중 5.9g은 자전거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한다(나머지는 유지보수 과정에서 나온다). 이 탄소마저 배출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 중고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이다.

2017년 믿을 수 있는 중고 자전거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발한 ‘라이트브라더스’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자전거 문화를 고민한다.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는 원래 시골의 작은 자전거 가게 수리공이었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자전거에서 영감을 받아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전거 덕후’들의 도전정신을 사명에 담았다.

지금까지 투자금 98억원을 유치하며 자전거 애프터마켓(제품을 판매한 이후 부품 교체나 유지보수 등을 해주는 서비스 시장)을 성장시킨 라이트브라더스는 ‘기후위기시대’라는 도전 앞에서 기업과 기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내에 ‘지속가능팀’을 신설했고, 연말에는 ‘지속가능성 결산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라이트브라더스를 통한 자전거 중고 거래와 재생자전거 구입, 앱에 가입된 유저들의 주행 등으로 탄소배출량 237만8835㎏을 저감했다. 비행기로 서울과 카타르 도하를 2070회 오갈 때 발생되는 탄소배출량과 맞먹는다.

자전거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이 1.6%(한국교통연구원, 2016)에 불과한 한국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질문에 라이트브라더스의 김희수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전 세계 사람 모두가 날마다 1.6㎞를 자전거로 이동하면 영국의 연간 탄소배출량만큼 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1.6㎞는 서울시청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왕복하는 정도의 거리다. 해볼 만하지 않나?” 그는 이제 라이트브라더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탄소 저감 도시를 디자인하는 꿈을 꾼다. 지난해 문을 연 한강 세빛섬의 라이트브라더스 쇼룸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라이트브라더스의 김희수 대표는 자전거가 도시를 바꾼다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
라이트브라더스의 김희수 대표는 자전거가 도시를 바꾼다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

전시된 자전거들에 주황색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 있던데.

자전거 외관을 검사해 스크래치가 난 곳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한 거다. 외관 검사는 전문가들의 61가지 평가진단과 함께 진행된다. 내부 검사는 ‘비파괴검사’로 이루어진다.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한 기술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크랙(갈라짐)과 수리 이력 등을 엑스레이로 촬영하는 거다. 자전거 커뮤니티에서는 ‘의사인 친구한테 자전거 엑스레이를 몰래 부탁한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인증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비싼 소재인 카본은 쉽게 충격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안전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왜 자전거에 주목했나?

먼저 내가 ‘자전거 덕후’라서 취미를 창업으로 발전시킨 거라는 오해를 풀어야겠다(웃음). 어릴 때 배웠던 자전거를 창업 1년 전에 친구의 권유로 다시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20년 넘게 브랜드마케터로 일을 했기 때문인지 사용자들의 수요는 있는데 시장에서 공급되지 않는 서비스들이 눈에 보였다. ‘자동차는 시승·렌털이 되는데 자전거는 왜 안 될까?’ ‘핸드폰처럼 약정이나 재매입해주는 제도는 없을까?’ ‘안심보상제도는?’ 등등. 중고 전문 마켓이 없고 개인 거래만 있어서였다. 7000억원 수준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자전거 시장 규모 때문에 마켓이 형성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문화 인프라를 함께 성장시키며 사용자의 저변을 넓혀나갈 수 있다고 봤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자전거를 ‘많이 파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게 하는’ 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자전거 문화 확산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면서 서울시와 재생자전거 프로젝트도 협업하게 됐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서울시는 방치된 폐자전거를 지역자활센터에 연계해 재생자전거로 판매한다. 그런데 판로가 없어서 한 달에 10대쯤 팔릴 정도였다. 라이트브라더스 사이트가 판매 플랫폼이 되었다. 수익이 안 되는 프로젝트라 내부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재생자전거를 판매하고 구입하는 일은 도시 공동체에 사회적 의미를 남기는 일이다. 재생자전거는 자활센터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자부심의 문제이기도 하고, 폐기 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배출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고-리사이클링-업사이클링-순환경제’로 이어지는 시스템의 가치와 경험도 나눌 수 있다고 봤다. 서울시에 우리가 개발한 ‘탄소 계산기’로 구매자가 자신이 저감한 탄소량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재생자전거가 2021년에는 1140여 대, 2022년에는 2408대 판매됐다.

'새 자전거 대신 새로운 자전거'를 내세운 서울시 재생자전거 프로젝트. 라이트브라더스 사이트 갈무리
'새 자전거 대신 새로운 자전거'를 내세운 서울시 재생자전거 프로젝트. 라이트브라더스 사이트 갈무리

탄소 저감량을 소비자가 아는 게 왜 중요한가?

‘탠저블(tangible, 눈에 보이는)’을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중고로 구입하면 탄소를 저감할 수 있다고 우리가 늘 말하는데 그게 대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줘야 한다. 정량적으로 기여도를 알려주고 체감하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조언을 구해 미국 시프트어드밴티지와 함께 ‘탄소 계량화 기술’을 개발하고 ‘탄소 계산기’를 만들었다. 주행 내용을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하면 저감한 탄소량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스윗스웻포인트’ 제도도 도입했다. 다양한 리워드들을 통해 즐겁게 더 나은 가치를 위해 행동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지속 가능한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슬라처럼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방법론도 개발해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자발적 탄소 거래 시장에서 포인트를 판매하거나 이 포인트를 다른 카드사 포인트와 연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토대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자전거 거래 플랫폼이자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라이트브라더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2015년, 유엔이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제시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가 달성해야 하는 우선 목표들이다. 그중 라이트브라더스가 주목하는 것은 건강한 삶과 웰빙, 지속 가능한 도시와 주거지 조성,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보장, 기후위기와 대응이다. 전 세계 탄소량의 70%가 도시에서 발생하고, 도시 탄소배출량의 30%가 자동차에서 발생한다. 탄소중립을 위해 이미 많은 도시에서 자전거 친화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시민들은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행동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어렵고 복잡한 문제는 기업이 기술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고 거래 사이트나 공유 자전거가 라이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함께 성장해야 할 중요한 파트너들이다. 우리의 라이벌은 넷플릭스다. 야외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계속 채널만 돌리고 움직이지 않게 하는. 고객들에게 환경을 위한 의무를 강요하지 않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편안함 대신 불편함을 선택해줬으면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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