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6일(현지 시각) 윤석열 대통령은 UAE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스비와 전기료를 더 올려야 하느냐 마느냐, 정부가 난방비를 얼마나 지원해야 하느냐, 나아가 공기업인 가스공사와 한국전력의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결국 언젠가 어떻게든 매듭을 지을 수 있는 문제다.

‘난방비 폭탄’ 국면이 지나가도 남을 거대한 이슈는 이것이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타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에너지 절대 빈국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높아진 보호주의 무역장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뚜렷하다. 남의 나라 에너지를 값싸게 수입해 쓰는 시대는 끝났다. 에너지가 곧 무기인 시대가 왔다.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 원전(핵발전소)과 재생에너지다. 가장 손쉬운 길은 원전을 가동하는 것이다. 안전과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여기서 논외로 하자. 한번 지어놓으면 별다른 연료비 없이도 계속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은 에너지 빈국에게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에 가까웠다. 게다가 탄소배출도 거의 없다. 1986년 체르노빌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도하고도 국내에서 원전에 찬성하는 여론이 꾸준히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원전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현실적인 불안감 때문이다.

■ 바뀌는 질서, 역주행하는 정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런 불안감에 극단적으로 편승하는 전략을 취했다. 최근의 난방비 상승이 지난 정부의 ‘탈원전’ 탓이라며 연일 맹공을 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발표한 ‘난방비 급증 원인 바로알기’ 카드뉴스를 보자. 내용은 이렇다. 1. 탈원전으로 비싼 재생에너지 사용 2. 지난 정부의 무리한 요금 억제로 에너지 기업 적자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에너지 수급 불안.

1, 2, 3은 개별적으로 보면 그럭저럭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탈원전은 전력 이슈이고, 난방비는 가스 이슈다. 국민 대다수가 전기가 아닌 가스로 난방을 하는 마당에 탈원전 탓을 들고 나온 건 뜬금없다. 여름철 에어컨 냉방비였다면 탈원전 탓 주장이 먹혔을 것이다. 오히려 국가가 가스요금을 관리하는 한국이기에 덜 올랐다고 보는 게 옳다. 가스요금이 시장에서 출렁이는 유럽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난방비가 몇 배씩 올라 여론이 들끓었다.

원전의 반대편에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가 있다. 전 세계적인 탄소 감축 목표 아래 재생에너지는 확대일로에 있다. 잠깐. 탄소 감축을 위해서라도 원전을 계속 확대하면 되지 않느냐고? 맞다. 원전은 확실히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세계의 질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RE100’이 대표적이다. 기업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이 캠페인은 2022년 대선 TV토론에서 윤석열-이재명 후보 간 설전으로 화제가 됐다. 영국의 비영리 기구 ‘클라이밋그룹’이 주관하는 RE100 캠페인은 사실 각 기업의 ‘자발적 캠페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진작부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RE100을 ‘글로벌 표준’으로 삼고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RE100이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클라이밋그룹 측은 건설 기간이 평균 10년 이상 걸리는 원전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 너무 느리다고 설명한다.

국내 기업에 대한 압박도 이미 현실화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14.7%가 글로벌 협력 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 지난해 9월엔 국내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인 삼성전자가 마침내 RE100에 참여했다. 재생에너지 역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주행’하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다보스포럼 등 참석하는 자리마다 원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원전의 부활’이 현 정부 최대의 국정과제가 된 듯하다. 그러면서도 재생에너지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탄소중립을 반드시 달성하기 위해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술력을 강화하고 원자력발전을 좀 더 확대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제로섬’ 관계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키우겠다는 이 말은, 언뜻 듣기에 그럴싸해 보인다. 1월12일 정부가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을 보자. 전력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7년 뒤인 2030년 한국의 전원별 발전량 비중은 원전 32.4%, 신재생에너지 21.6%가 된다(그림 참조). 그러다 2036년에는 원전 34.6%, 신재생에너지 30.6%로 둘 다 증가한다. 정부는 2036년에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모두 30%를 넘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30%를 넘긴 원전 비중을 34.6%까지 끌어올리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2018년 기준 6.2%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를 어떻게 30% 넘게 끌어올리겠다는 것인지, 전력계획은 수치만 나열할 뿐 구체성은 결여되어 있다.

이 글의 본론은 지금부터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그럴싸한 계획은 실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서로 보완이 되지 않고, 충돌하기 일쑤인 관계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이른바 ‘경직성 발전원’이다. 둘 다 사람의 뜻으로 실시간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렵다. 원전은 한번 가동하면 멈추는 것은 물론 발전량을 낮추기 어렵고,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 달라진다.

전력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블랙아웃(정전) 같은 문제가 생긴다. 공급이 부족해도 문제, 넘쳐나도 문제다. 전력 수요가 크게 떨어졌는데 원전 같은 대용량 발전기가 계속 가동되면 사고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양수·가스 발전 등 실시간 발전량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 발전원’을 함께 사용한다. 전력 공급이 넘칠 때 양수 발전소는 수문을 닫고, 가스 발전소는 불을 끄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서로 ‘제로섬’ 관계다. 한쪽 생태계가 흥하면 다른 쪽은 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원전은 1기당 발전량이 1GWh 이상인 대용량이다. 1GWh는 4인 가구 기준 약 10만 가구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날 원전이 함께 가동되면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린다. 재생에너지의 출력을 사람의 뜻대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서 오래전부터 문제가 생기고 있다. 전력 과부하를 막기 위해 기존 원전의 출력을 줄여서 운전하는 ‘출력 감발’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도 2020년 5월 연휴 때 사상 처음으로 신고리 3·4호기의 출력 감발을 실시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이후 국내 원전의 출력 감발 횟수는 2020년 4회, 2021년 6회로 총 10회나 됐다.

‘난방비 폭탄’ 원인에 대해 여야가 서로의 책임을 묻는 현수막을 붙였다. ⓒ시사IN 신선영

■ 원전은 ‘좌초 자산’ 될 수 있어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과학기술정책학 박사)은 앞으로 대형 원전이 ‘좌초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대로면 연휴는 물론 주말에도 출력 감발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전력계획대로 2030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20%대가 되면 주중에도 해야 할 것이다. 원전 1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루 10억원 이상 손실이 난다. 영국에서는 원전 1기가 5개월 동안 출력 감발하면서 1000억원 이상 손실을 본 적도 있다.”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소형 원전(SMR)이 거론되지만 갈 길이 멀다. 기술개발이 진행형인 데다 안전관리 비용도 문제다. 소형인 만큼 발전량은 적은데, 안전비용 탓에 경제성이 떨어진다.

재생에너지 역시 문제는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들쭉날쭉한 발전량이 문제다. 재생에너지가 ‘주류’가 된다 해도 원전처럼 유연성 발전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태양광·풍력 같은 소규모 발전시설을 곳곳에 분산 배치하는 것으로 재생에너지는 그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다.

결국 에너지 산업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은 원전 아니면 재생에너지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에너지 믹스’에서 이런 문제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란 원전과 다른 유연성 에너지, 또는 재생에너지와 다른 유연성 에너지가 섞이는 것을 뜻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믹스’될 수 없는 관계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난방비 폭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특별한 대책은 없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세계의 질서가 바뀌거나 말거나, 현 정부는 원전의 시간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민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시사IN〉이 지난해 여론조사를 통해 내보낸 ‘2022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원전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라는 항목에 64.8%가 동의했는데, ‘원전보다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라는 항목에도 68.5%가 동의했다. 앞의 ‘원전 계속 가동’에 동의한 응답자 중 상당수가 ‘원전보다 재생에너지’라는 데에도 동의한 것이다. 의미심장한 결과다. 지금 당장은 원전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앞으로 재생에너지 도입이 본격화되면 ‘탈원전’ 여론이 반등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난방비 폭탄이 쏘아올린 아주 거대한 질문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우리와 닮은 타이완의 선택

타이완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는 높다. 전체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할 만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닮았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만큼 한국처럼 값싸게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을 가동해 전력 수요를 충당해왔다. 특히 타이완에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놓고 다투는 TSMC가 있다. 반도체는 ‘전기 먹는 공룡’이다. 2020년 TSMC 한 기업이 사용한 전력량이 타이완 전체의 6%였다. 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라 2025년에는 TSMC의 소비전력량이 12.5%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가운데)은 재생에너지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EPA

그런 타이완은 놀랍게도 아시아 최초로 ‘탈원전’을 실행하고 있다. 2021년 12월 국민투표를 통해 타이베이 인근 제4원전의 공사를 중단했다. 전국에서 원전 6기를 가동했던 타이완은 가동 연한이 다한 원전을 2018년부터 차례대로 폐쇄하고 있다. 탈원전 시점은 2025년이다. 지진이 잦고, 수도 타이베이 인근에 원전이 있다는 점이 탈원전 여론에 영향을 끼쳤다.

탈원전 선언 이후 타이완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2년 신년 담화에서 차이잉원 총통은 재생에너지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핵심은 섬이라는 지형조건을 이용한 해상풍력이다. 2025년까지 풍력·태양광 등의 발전 비중을 전체의 20%까지 확대하려 한다. ‘2025 에너지전환’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아래 해상풍력발전단지 개발계획을 당초 10GW 규모에서 15GW 규모로 크게 늘렸다(‘2022 타이완 풍력발전 산업 정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타이완은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의 길을 택했다. 난방비 걱정 없는 따뜻한 남쪽 나라 일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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