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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하이테크(Hi-technology, 고도의 과학기술)’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안도감을 경계하며 ‘기후테크(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술)’ 스타트업 세 곳을 찾았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벼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이 가진 진짜 무기는 기술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것이었다. 에너지·순환경제·모빌리티, 세 분야에서 치열하게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는 혁신가들의 현재를 만났다.

■ IT 에너지 스타트업 | 식스티헤르츠

3월3일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소셜 벤처 ‘식스티헤르츠(60Hz)’ 김종규 대표와 인터뷰를 나눈 두 시간 동안 경남 거제시 아주운동장 주차장에 세워진 태양광발전소에서는 전력 36.02㎾h가 만들어졌다. 햇빛이 더 많은 남쪽 지역은 어떨까? 같은 시간 제주시 봉개동의 한 사무실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에서는 전력 672.86㎾h가 생산됐다. 4인 가족이 한 달 동안 사용하는 평균 전력량(300㎾h)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이런 데이터들은 식스티헤르츠에서 제공하는 ‘햇빛바람지도’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확인할 수 있다.

햇빛바람지도는 전국의 모든 재생에너지 정보를 모은 국내 최초의 플랫폼이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전국 각지에 있는 태양광·풍력발전소 8만여 곳의 발전량을 예측해 알려준다. 한반도 지도 위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보여주는 작은 기호들이 물고기 떼처럼 흐른다. 어느 지역에 구름이 많고 햇빛이 강한지도 색의 차이로 표현한다.

파편화된 공공데이터를 모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에너지업계에서는 만들 수도, 만들 이유도 없는 지도였다. 수익모델도 없었다. 하지만 신생 기업의 ‘튀는’ 행보에 관심이 모였다. 마케팅 인력이 없어 홍보를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학교, 관공서, RE100 기업(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 기업), 한전 같은 에너지 업계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햇빛바람지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1800명 넘게 가입했다. 기업에서 ‘만나서 얘기 좀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2021년 공공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법인 등록을 한 지 1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무엇보다 이 지도는 풍력 발전량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을 분석해야 하는 풍력 예측은 기술적으로 태양광 예측보다 어렵다. 김종규 대표는 풍력발전이 확대되어야 국내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풍력발전소를 더 많이 설치하려면 더 정확한 예측 정보가 필요했다. “에너지 분야는 IT 기술 도입이 굉장히 뒤처져 있다. 제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분야가 미디어인데, 넷플릭스만 봐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콘텐츠를 생산·유통·소비하는 모든 것이 IT 기반으로 바뀐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는 어떤가. 할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를 비교해도 거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김종규 대표가 에너지 분야에 뛰어든 이유다.

발전량 예측이 왜 중요한가

에너지 분야는 왜 변해야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한참 전부터 이미 수요가 공급을 앞질렀다. RE100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우리에게 미팅 요청을 많이 하는데,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 수출에 문제가 생기니까 비용이 올라가더라도 전력원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데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가 태양광발전소 등이 사고팔리는 가격을 추적하고 있는데 몇 년째 우상향 중이다. 마치 ‘강남 부동산’처럼 재생에너지 발전소 가격이 치솟고 있는 거다.” 김종규 대표의 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계속 늘고 있다. 탄소 저감을 목표로 한 세계의 흐름이 그렇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올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18년 6.2%에서 2030년 21.6%로 늘어날 예정이다.

관건은 에너지 관리다. 전력은 저장이 어려워서 생산 즉시 실시간으로 소비되어야 한다. 남아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다.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폭염과 가뭄으로 전력량 수요가 폭증하자 전력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다. 전기차 충전도 금지했다. 당시 전력 대란을 두고 한편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친환경 국가를 원하는 이들의 녹색 유토피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누적 태양광발전 설치량이 가장 많은 주다. 재생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전력난에 시달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19.1%로 가장 높은 제주도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시설 가동 중단(출력 제어)이 132회나 있었다. 2021년(65회)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수요에 비해 전력이 너무 많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김종규 대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전력망에 연결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전력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한국의 표준 주파수 60Hz를 회사 이름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발전량 예측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자력이나 석탄화력발전은 몇 개의 대규모 발전소를 중앙집중식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발코니·주차장·유휴지 등에 소규모로 수십만 개씩 분산 운영될 뿐 아니라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 자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월 발표한 ‘제3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 수급 과정에서 문제가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소비자의 시장 참여를 확산하고 분산 에너지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김종규 대표는 에너지 생태계의 전환이 에너지 산업 내부의 동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본다. “‘변해야 한다, 하자’ 이 말이 마치 순환논리처럼 몇 년째 반복된 상태로 지금까지 왔다. 만약 내부에서 혁신이 가능했다면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지 않았을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적 변화도 더디지 않았을 거다.”

그는 에너지 업계 외부의 힘을 기대했다. 예를 들면 시민들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같은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입하는 경험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상상하기가 어렵다. 왜곡된 유통구조 때문이다. 우리 전력 시장은, 정부가 유기농 농산품이나 화학비료로 키운 농산품이나 다 한 바구니에 넣고 섞은 다음에 하나씩 배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비용을 더 내더라도 석탄화력 에너지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은 분들이 있지만 민간에게 전력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 구조적 변화가 없으면 시민들의 수요는 공급과 연결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선택권’이라는 당연한 권리

기술적으로 대중이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독일에서의 유학 경험을 설명했다. “집 계약을 할 때 전기 계약도 하는데 그때부터 다르더라. 온라인으로 클릭을 세 번 하니까 내가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독일의 인프라가 결코 한국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살던 집의 계량기도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썼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낡았다. 돈 때문에, 인프라 때문에, 기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말이 진짜인가? 왜 못한다고 믿고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엄청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 세계적 흐름과 정말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느꼈다.”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는 시민들이 재생에너지를 쉽게 구입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김흥구

‘더 쉽게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하자’는 지향은 재생에너지 구독 서비스 ‘월간 햇빛바람’으로 이어졌다. ‘월간 햇빛 바람’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은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게 매월 일정한 요금을 받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REC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한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지 않는 기업들은 REC를 구매해서 RE100 기업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각자 알아서 REC를 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도 RE100을 하려고 REC를 샀는데, 그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 먼저 REC 적정가격에 대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정부 한마디에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니 가격 격차가 크다. 두 번째는 REC를 사려고 해도 판매하는 발전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는 거래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 전력을 100만원어치 사려고 하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10여 개가 넘는다. 전력을 많이 쓰는 회사라면 여러 발전소와 각각 계약을 해야 하는데, 각 발전소별로 10여 개씩 서류를 제출해야 하니 작은 회사에선 엄두가 안 난다.”

‘월간 햇빛바람’ 구독 서비스는 올 상반기에 시작할 예정이다. 친환경 제품을 판매·생산하는 업체와 공장 등에서는 이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수요를 확실하게 파악한 것이냐고 묻자 ‘돈을 별로 안 벌겠다고 생각하면 시작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내에서도 ‘돈도 못 버는 것 같은데 이거 왜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캠페인이라고 생각하고 해보자고 설득하고 있다(웃음).”

식스티헤르츠의 주요 수입원은 ‘에너지스크럼’이라는 소프트웨어다. 태양광, 전기차 충전기,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소규모 분산 전원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기업 등의 전력 관리를 돕는다. 하지만 김종규 대표는 소프트웨어 판매를 넘어 구조적 변화를 꿈꾼다. “소비자들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재생에너지를 사도록 만든 지금 시장은 의미가 없다.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는 경험을 돕는 좋은 서비스가 등장하고 ‘에너지 선택권’을 경험한 시민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이 시장의 가치를 키울 거라고 생각한다.”

햇빛바람지도는 재생에너지 발전소 8만여 곳의 발전량을 예측해 알려준다. 식스티헤르츠 제공

지난 2월, 식스티헤르츠는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시민 9000명이 생산한 재생에너지 REC를 카카오에 중개·판매했다. 해당 REC는 카카오 제주 사옥 RE100을 달성하는 데 쓰였다. 김종규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이후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당시를 꼽았다. “2년 반도 채 안 된 신생 기업에게 시민들이 REC를 팔아보라고 주실 줄은 몰랐다. ‘정부는 무조건 사주는데 쟤네는 뭘 믿고?’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드셨을 거다. 우리가 수익 창출이나 판매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아주셨다고 생각한다.”

식스티헤르츠는 에너지 시장의 문제를 기술과 상상력으로, 산업 바깥의 시선으로 해결하려는 회사다. 그래서인지 회사의 정관에 적힌 사업 목적에는 ‘에너지’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IT 기술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및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고 적혀 있다. 매년 사회적 성과를 측정해 보고하는 ‘소셜임팩트위원회(사회적성과측정위원회)’ 운영도 정관에 넣었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 시즌에 맞춰 발표된 ‘임팩트 리포트’에는 식스티헤르츠의 ‘발전량 예측 서비스에 따른 화석연료 발전의 탄소배출 저감분에 대한 환경비용’을 3억5300여만 원으로 계산해 보고했다.

에너지 분야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김종규 대표는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에너지’에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이 레고를 아주 좋아한다고 운을 뗐다. 풍력발전소 레고 블록을 보고 놀랐던 이야기였다. “원자력이나 석탄화력발전소 레고 블록은 만들어지지 못하겠지만 풍력발전소 레고 블록은 이미 나와 있다. 어린이들이 살아갈 미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의 거대한 흐름은 10년, 20년 뒤의 세상을 사는 우리 삶을 바꿀 거다.”

김종규 대표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전체 전력의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인 독일의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는 대개 10년이면 투자비 회수가 끝난다. 그때 독일 같은 나라의 다음 세대들은 햇빛과 바람만 있으면 전력을 얻는 인프라를 유산으로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다음 세대는 어떨까? 원자력발전에만 의존한 에너지원을 쓰면 우리 다음 세대는 폐기물 처리비용과 탄소중립을 위한 힘겨운 부담만 물려받게 된다. 지금의 선택이 중요하다. 당장 내일 전기요금이 얼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겪을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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