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해평취수장. 구미산단보다 상류에 위치해 수질오염 사고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시사IN 이명익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 자명한 이치는 때로는 협력의 단초가 되기도,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낙동강 물을 둘러싼 대구와 구미의 ‘물 전쟁’은 그렇게 이어져왔다. 대구는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비교적 상류에 위치한 구미에서 물을 끌어다 쓰길 바랐고, 구미는 그 대가로 유·무형의 이익을 얻고자 했다. 지난 4월4일 두 지자체가 국무총리실 주관하에 ‘구미 해평취수장의 대구·경북 공동이용’ 협정을 체결하면서 13년간 이어진 ‘밀고 당기기’는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공든 탑이 무너지는 데는 채 반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8월17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구미시와의 협정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1991년 두 차례 1급 발암물질인 페놀 유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 깨끗한 물은 대구의 염원과도 같았다. 2004년 디옥산(1급 발암물질) 발견, 2006년 퍼클로레이트(갑상샘 장애 유발물질) 검출, 2008년 페놀 유출, 2009년 디옥산 발견 등 주기적으로 반복된 수질 사고에 대구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결국 2009년 2월, 대구시는 국무총리에게 “낙동강 수계 취수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달라”고 건의했다. 대구 지역까지 흘러오는 낙동강 물의 수질을 장담할 수 없으니, 좀 더 상류 지역에서 물을 끌어다 사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대구로서는 명분이 있었다. 2009년까지 발생한 굵직한 수질 사고의 원인이 대구보다 상류 지역에 위치한 다른 지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 취수원으로부터 31㎞가량 떨어진 구미 국가산업단지(구미산단)는 1991년 페놀 유출 사고 등 대부분의 수질 사고에 원인을 제공했다. 따라서 대구시는 구미산단보다 상류에 위치한 곳으로 대구의 취수원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구의 계획은 쉬이 실현되지 못했다. 가뭄이 잦은 경북 지역의 특성상 각 지자체는 대구와 물을 나누는 것을 꺼렸다. 상수원 관련 규제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그렇게 여러 지자체와 협의가 이어지는 사이 수질 사고는 다시 세 차례 반복됐다. 마지막 사고가 일어난 2018년에는 과거 최고치의 최대 75배에 달하는 과불화화합물이 정수장에서 검출되기도 했다. 원인으로 지목된 곳은 구미시였다. 결국 국무총리실과 환경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협상을 주도했다. 그 결과 2019년 4월 낙동강 상류 지역 지자체들이 ‘낙동강 물문제 해소를 위한 관계기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올해 4월 대구와 구미가 해평취수장 공동이용 협정을 맺게 되었다.

협정서를 통해 두 지자체는 각자의 염원을 해결하고자 했다. 먼저 대구시는 매일 필요한 물 약 60만t 중 30만t을 구미시가 사용 중인 해평취수장에서 가져오기로 했다. 해평취수장은 구미산단보다 상류에 위치하기에, 구미산단에서 비롯되는 수질오염 사고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나머지 30만t가량은 대구시가 현재 사용 중인 문산·매곡취수장의 정수시설을 고도화해 얻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수자원을 양보한 대가로 구미시는 상생 방안을 보장받았다. 대구시가 일시금 100억원, 환경부와 수자원공사가 매년 지원금 100억원을 구미에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KTX 구미역 신설 등 지역 숙원사업에도 대구·경북의 협력을 약속받았다. 더불어 추가 취수로 인해 구미 지역에 확장되는 규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답받았다. 협정 당사자 중 하나로 체결에 직접 참석한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는 “협정 내용이 기관 간 합의된 이상 기관장이 바뀌더라도 변함이 없을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재협상 하자’ ‘더 이상 협상은 없다’

그러나 6월1일 지방선거 이후 협력은 빠르게 무너졌다. 김장호 신임 구미시장은 시장 후보 시절부터 협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전면에 앞세운 이유는 ‘시민 동의 부족’이었다. 김 시장은 해평취수장 공유 협정이 “심리적·정서적 동의를 거치지 않은 졸속 합의”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구미시가 얻을 보상이 명확하지 않고, 정권교체 및 지방선거 이후 기관장들이 바뀌었기 때문에 협정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장호 시장의 주장대로 시의회와 일부 시민들이 물 공유에 반대 의사를 펼쳐온 것은 사실이다. 지난 1월 구미시의회는 ‘대구 취수원 구미 이전 반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취수원 이전이 대구에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주는 반면 구미에는 경제적 손실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시장은 구미 시민 다수가 취수원 공동이용에 반대하고 있다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여론조사 결과는 이들의 주장과 정반대를 가리켰다. 〈매일신문〉이 지난해 12월 소셜데이타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구미 시민의 70.3%는 해평취수장 공동이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경북정치신문〉이 에브리미디어에 의뢰해 해평취수장 인근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절반이 넘는 54.3%의 주민이 찬성을 선택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공동이용 취수장을 해평취수장보다 더 상류로 이전하는 안을 제시했다. 김천 지역에서 해평취수장으로 흘러들어오는 지류(감천) 인근에는 김천 국가산업단지가 위치해 있다. 구미시는 김천 국가산업단지에서도 수질오염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감천 지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미시 옥성·도개 지역으로 취수장을 옮기는 게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언뜻 보기엔 대구시에도 이익이 되는 방안인 듯하다. 하지만 새로운 대안은 취수원 다변화 정책 실행이 지연된다는 단점이 있다. 구미시 옥성면·도개면뿐 아니라 구미보다 상류에 위치한 상주와 의성 지역까지 상수원 보호구역 설정 등 토지개발 제한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또 장기간의 협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재협상을 원하는 구미시와 달리, 홍준표 대구시장은 더 이상 구미시와 협상은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홍 시장이 찾은 대안은 안동이었다. 8월11일 홍 시장은 권기창 안동시장과 만나 안동에 위치한 안동댐·임하댐 물을 영천댐·운문댐을 통해 대구로 끌어오는 것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홍 시장이 지방선거 당시 공약으로 제시했던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현실화한 것이다. 권 시장과의 만남 이후 홍 시장은 8월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더 이상 물 문제로 구미시장과 협의할 것도 논의할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권기창 안동시장이 원칙적 동의를 이루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우선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기 위해 점검해야 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물을 제공하는 대가로 안동에 어떤 혜택을 제공할 것인지, 안동댐·임하댐에서 물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을지 등 세부 사안은 아직 전혀 합의된 바 없다. 더욱이 관로 공사를 위해 약 1조4000억원을 지불할 중앙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의 동의를 받아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8월11일 권기창 안동시장(오른쪽)을 만나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논의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연합뉴스

안동댐 물이 과연 안전한지도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안동댐은 안동시의 비상급수 용도로만 쓸 뿐, 평시에는 취수원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지난 5월 발표된 환경부의 ‘낙동강 상류의 수질과 퇴적물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안동댐 퇴적물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카드뮴의 농도가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 평소에는 퇴적물이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퇴적물 오염이 수질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홍수와 같은 이례적인 상황에서 퇴적물 속 카드뮴이 물속에 섞여 들어갈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안동으로 이전하면 낙동강 전체 계획에 혼선

안동댐·임하댐으로 취수원을 이전하는 안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안동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은 이전에도 취수원 다변화 대안 중 하나로 고려된 바 있다. 임하댐에서 영천댐을 통해 대구로 하루에 물 30만t을 보내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성이 떨어져 대안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환경부 외부 연구용역 결과인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해평취수장 이용과 임하댐 이용을 포함한 총 4개의 대안이 제시되어 있다. 임하댐 물을 사용하는 방안은 그 4가지 방법 중 경제성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비용편익 분석 결과 임하댐 사용안의 순현재가치(특정 사업의 비용과 편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비교한 것)는 4332억원 손실로 나타났다. 대구 시민 등이 얻을 이익에 비해 비용이 4000억원 이상 높다는 것이다. 최종안으로 채택된 해평취수장 이용 방안의 순현재가치(1688억원 손실)보다 대략 2.5배 더 많은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안동으로 취수원을 이전할 경우 낙동강 물 문제에 대한 국가적인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구의 해평취수장 공동이용 방안은 경북 지역 내 다른 지자체의 취수원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예컨대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에 따르면 대구가 새로 확보한 물 중 일부는 경북 지역에서도 함께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한 대구시가 취수원으로 사용 중인 운문댐 물을 울산시가 일부 사용하는 방안도 대구시의 취수원 다변화 정책과 결부되어 있다.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지난해 7월 의결한 이 방안은 현재 수립 중인 ‘낙동강유역 물관리 종합계획’에도 동일하게 반영돼 있다. 이 계획은 국가 물관리 기본계획에 맞춰 10년에 한 번 작성된다. 그런데 만약 대구시가 대체 취수원을 구미에서 안동으로 바꾼다면, 이와 맞물린 낙동강 상류 지역의 전반적인 물관리 계획에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낙동강유역 물관리 종합계획 수립에 참여한 경일대 박기범 교수(건설방재학과)는 “대구시 취수원 다변화는 낙동강 전체 수준의 아주 큰 계획의 일부다. 그런데 그 일부분이 틀어짐으로써 계획 전체가 10년 전으로 돌아가버리진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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