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AFP PHOTO

칸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라고 알려져 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묶는다. 일부 영화평론가들은 이 분류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칸 영화제의 위상이 나머지 둘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월등하다는 것이다. 세계 수위로 인정받는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다시 상을 받았다. 5월17일 개막한 제75회 칸 영화제는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에 감독상,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남우주연상(송강호)을 수여했다. 2019년 〈기생충〉(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3년 만이다. 한국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의 모든 상을 받은 국가가 되었다. 3년 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 영화가 세계 수준을 따라잡았다’는 평가가 아니라, ‘할리우드와 다른 새로운 조류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1993년 영화비평을 시작해 칸 영화제 참석만 21번째인 베테랑이다. 그의 반응은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수상이 ‘겹경사’라며 자축하는 국내 언론들과 사뭇 달랐다. 전 평론가는 이번 결정이 ‘칸의 실수’라고 했다. 〈헤어질 결심〉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금종려상을 탄)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루벤 외스틀룬드 감독)가 나쁜 영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화두를 던진 영화다. 영화 만듦새를 다듬을 수는 있지만 화두를 던지는 건 아무 감독이나 할 수 없다.” 칸 영화제 현장에 모여든 세계 평론가들과 교류한 끝에 나온 결론이라고 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나온 상찬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근거 삼을 만한 지표가 있다. 1889년 창간한 명성 높은 영화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매해 칸 영화제 기간 경쟁부문 작품의 평점을 게재한다. 〈타임〉 〈르몽드〉 〈가디언〉 등 여러 매체 출신 평론가들이 여기 참여해 평균 점수를 내, 현지 취재진과 평론가들이 특히 눈여겨본다. 5월28일 이 매체에 따르면, 평론가들은 〈헤어질 결심〉에 평균 3.2점(4점 만점)을 줬다. 21개 경쟁부문 작품 중 최고점이다. 〈브로커〉는 1.9점을 받았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2.5점이었다.

평점과 수상의 상관관계 자체보다 더 주목할 것은 호평이 나온 까닭이다. 유수의 평론가들은 한국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영국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도 이번 칸 영화제의 결정에 불만을 제기했다. “내가 꼽은 개인적 황금종려상은 〈헤어질 결심〉”이라고 썼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에 부족한 새로움이 〈헤어질 결심〉에는 충만하다는 이유다. 5월23일 ‘박찬욱의 블랙 위도 누아르에서 탕웨이가 준 감동’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긴장감과 음모, 거대한 감정의 대립, (…) 플롯 비틀기는 매우 히치콕적이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대다수 경우와 달리 (〈헤어질 결심〉은) 모작(pastiche)이 아니다. 마치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든 히치콕 스타일 영화 같다.” ‘멜로·로맨스’를 표방한 영화를 어째서 이렇게 평했을까. 기사 후반부에서 브래드쇼는 이 영화의 ‘익숙한 새로움’을 좀 더 풀어 설명한다. “새로운 캐릭터와 신선한 전개가 주기적으로 관객을 때리고 균형을 잃게 한다. 극중 인물의 관계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관객은 기다려야 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평론가들로부터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작품 중 최고점인 평점 3.2점을 받았다. ⓒCJ ENM 제공

할리우드 영화에 결여된 미덕 갖췄다

박찬욱 감독은 5월24일 상영 현장에서 “길고 지루하고 구식인 영화를 환영해줘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겸양처럼 보이는 이 수식은 사실 브래드쇼가 느낀 새로움의 원천이라고, 전찬일 평론가는 말한다. 앞서 그가 언급한 ‘화두’의 의미다. “‘구식’이란 표현은 고전적이고 전통적이란 의미다. 〈헤어질 결심〉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가벼워지는 시대에, 질(quality)을 추구하기 위해 한번 멈춰 서서 돌아보자는 화두를 던진다. ‘영화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영화다.”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탔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히 ‘가장 잘 만든 영화이기에 1등상이 어울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박 감독의 메시지야말로 칸 영화제의 정신과 가장 어울린다고 했다. 여타 영화제와 달리 칸은, 넷플릭스 같은 OTT에는 경쟁부문 출품을 허용하지 않는 등 영화의 전통을 고집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콘텐츠 홍수 시대에 ‘영화를 잘 만들기 때문에 인기를 끈다’는 설명은 불충분하다. 박찬욱·봉준호 등 걸출한 감독이 서구권에서 주목받게 된 데에는 배경도 있다. 주로 나오는 분석은 외부 환경의 변화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새 매체가 접근성을 높였고, BTS를 비롯한 케이팝의 인기도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해외에는 영화계 안의 이슈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영화들이, 그간 영화산업을 지배해온 할리우드 영화에 결여된 미덕을 갖췄다고 말한다. 〈헤어질 결심〉의 탁월성과 별개로,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이야기다.

영국 주간지 〈옵서버〉는 지난해 6월19일 ‘새로운 할리우드:대한민국 영화는 신선하게 독창적이고 장르를 뒤흔든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 매체는 한국이 영화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낸다고 평했다. 미적 즐거움, 감정적 매혹, 잘 쓰인 각본 등을 한국 영화의 강점으로 꼽은 〈옵서버〉는, 이와 상반되는 할리우드의 행태를 비판한다. “미국 영화산업은 수년간 독창성 부족과 뻔한 줄거리, CG 주력으로 눈에 띄는 질적 저하를 겪었다.” 프랜차이즈의 후속작이나 이전에 다뤘던 소재만 박스오피스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를 뒤쫓는 걸 넘어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평가는 서구권 밖에서도 나온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발리우드’라는 별칭을 얻은 인도가 한국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동명의 평론가가 운영하는 영화평론 사이트 〈바라드와즈 랑간〉에는, 2020년 4월5일 ‘한국 영화가 오늘날의 할리우드보다 20세기 할리우드에 더 가까운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국 영화들이 “20세기 미국 영화가 과거 나를 비롯한 평범한 젊은이에게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상기시킨다”라고 적었다. 기사는, 지금의 한국 영화와 1980~90년대 할리우드 영화 간 공통점으로 ‘인간의 쓰임새’를 꼽는다. “한국 영화는 (선택이든 아니든)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가 문제 삼는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인간은 “액션 장면 사이에 들어가는 충전재다”.

〈브로커〉에 출연해 제75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씨. ⓒ연합뉴스

미묘한 관계 묘사에 능한 한국 영화

분명 한국 영화는 매우 빠르게 할리우드의 노하우를 습득해왔다. 기술이나 작법뿐만 아니라 주제의식, 서사 전개 면에서도 미국 영화의 것을 흡수했다. 액션과 CG에만 치중하게 된 지금의 미국 영화보다는, 미국의 길을 모델로 삼은 성실한 수제자 한국이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가깝게 되었다는 평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길이 갈린 게 할리우드의 일방적 ‘탈선’ 때문만은 아니라는 설명도 있다. 사회·문화에서 형성된 별개의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한국 대중문화 작품은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 변화를 묘사하는 데 능하다. 주먹을 내질러도 주먹질하는 사람의 심경에 집중한다. 심지어 좀비나 자연재해를 다루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끈질기게 파고든다”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그 원천을 할리우드나 글로벌 영화 산업의 옛 모습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아시아 특유의 가족 문화’를 들었다. “서구권에 비해 여러 가족 구성원과 부대끼며 살아온 전통이 오래 유지됐다. 쉽사리 풀리지 않는 관계라는 주제를 오래 생각하게 된 계기일 수 있다.”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가 지금껏 해온 연기 또한 ‘관계’를 포착하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그는 본다.

박찬욱 감독은 시상식 후 “한국 관객들이 웬만한 영화에는 만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영화는 장르를 비틀고 주제를 뒤흔들었다. 상업영화와 오락영화의 벽을 허물고 각각의 강점만 담으려 했다. 그럼에도 질이 낮거나 정서를 거스르는 작품은 여지없이 퇴출됐다. ‘인간’ ‘관계’ ‘공동체’ 등 국내 관객이 선호하는 고유의 가치를 담았다. 처절한 경쟁 과정에서 이 표현은 극단까지 벼려졌다. 정서가 과하면 신파라고 비판받았고, 모자라면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렇게 담금질하던 어느 날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보다 더 할리우드 같은 새로운 보편이라고 평가받게 되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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