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6일 윤석열 대통령(사진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정부의 경찰 통제 방안 마련 작업이 본격화됐다. 수사권 확대로 권한이 늘어난 만큼 확실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최측근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방향으로 논의되면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 산하 정책자문위원회 분과인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는 최근 두 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행안부도 관련 내용을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사IN〉 취재 결과 ‘법무부-검찰 모델’을 활용해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문위는 구체적으로 행안부 내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국이 설치되면 법무부의 검찰국처럼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게 되리라 보인다. 자문위는 이를 위해 법 개정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을 고쳐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 업무’를 추가하는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정부조직법에는 행안부에 대해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는 내용만 들어 있다. 경찰청법에도 행안부 장관이 직접 경찰을 통제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자문위의 한 관계자는 “검찰청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검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것처럼, 행안부 장관에게도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주자는 아이디어다”라고 설명했다.

행안부의 경찰 통제 방안 마련 목적은 ‘공룡 경찰 견제’로 풀이된다. 지난해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올해 국회를 통과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등으로 검찰 권한은 대폭 축소되고 경찰 권한이 커졌다. 비대해진 경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행안부 장관 직접 통제의 법적 근거가 될 정부조직법상 ‘치안 사무’는 32년 전 사라졌다. 행안부 전신인 내무부 시절에 정부·여당의 부당한 요구에 경찰이 동원되어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고, 1990년 12월 장관을 통한 권력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내무부 장관 사무에서 치안 업무 권한이 삭제된 것이다. 1991년엔 경찰법이 제정되면서 경찰청은 외청으로 독립했다. 대신 경찰위원회를 설치해 경찰 행정을 심의·의결하도록 하는 등 통제 방안을 마련했다.

외청은 소속을 정부 부처에 두지만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자문위 회의 내용에 따라 장관이 직접 경찰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의 통제 방안인 경찰위원회 제도 위에 ‘옥상옥’ 구조로, 사실상 대통령이 행안부 장관에 측근을 임명해 사정기관을 장악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서울대 법대 후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경찰 안팎에선 자문위 구성 과정과 논의 내용을 두고 “대통령과 최측근 장관의 의중이 반영됐다”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경찰 통제 방안 마련을 주도하고 있는 앞서의 자문위 구성은 이상민 장관의 1호 지시사항이었다. 이 장관은 5월12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재가를 받고 취임식을 열기도 전에 ‘검수완박 대응과 경찰 통제 방안 마련’을 위한 자문위 구성을 행안부에 지시했다. 행안부는 당일 위원들을 위촉했고 이튿날 신설 자문위가 첫 회의를 열었다.

자문위에 참여한 일부 위원도 주목받는다. 검사 출신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대 대선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사법 분야를 담당했다. 사법개혁 공약 보도 참고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오또케’ 하면서 사건 현장에서 범죄를 외면했다는 비난도 있다”라고 쓴 것이 논란이 돼 해촉됐다(〈시사IN〉 제753호 “‘오또케’는 국민의힘 공약 자료에 어떻게 들어갔나” 기사 참조).

행안부 주도의 경찰 통제 방안 마련 작업과 함께 최근 단행된 경찰 고위직 인사에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경찰청은 5월24일 치안정감 승진 내정 인사를 단행했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장 바로 아래 서열 2위 계급으로,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이다. 치안정감은 총 일곱 자리다. 임기가 보장된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하면 이번 인사로 기존 치안정감 6명 가운데 5명이 한꺼번에 교체됐다. 통상 경찰 고위직 인사는 신임 경찰청장 인사 이후에 단행된다. 이번에 전례가 깨졌다. 관행과는 반대로 승진 내정자 가운데 한 명이 차기 경찰청장에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5월6일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는 김창룡 경찰청장. ⓒ연합뉴스

경찰대 출신과 수사 라인은…

복수의 경찰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직 치안정감과 승진 내정자 모두 인사 발표 전날까지도 소식을 알지 못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5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치안정감 인사에 청장 의견이 반영됐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다만 김 청장은 이날 행안부 주도의 경찰 통제 방안 마련에 대해선 “경찰권 통제뿐 아니라 경찰의 중립성·독립성 보장을 담으려 했던 1991년 경찰청법 개정 정신도 존중돼야 한다”라며 공개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소신 발언을 했던 김 청장이 즉답을 피한 건 인사 관련 질문뿐이었다. 여러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치안정감 인사는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와도 비교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취임 하루 만에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검찰에 이어 경찰도 빠르게 ‘새 정부 체제’를 구축했다. 치안정감 승진 내정자 가운데 두 명은 경찰대 7기다. 경찰에서 선배 기수(4~6기)를 건너뛴 승진 내정자가 나온 건 이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기수 파괴’ 당사자였다.

이번 치안정감 인사에서 경찰대 출신과 ‘수사통’ 인사들의 힘이 빠졌다. 승진 인사 이전, 기존 치안정감 7명 가운데 5명이 경찰대 출신이었고 이 중 2명이 수사통이었다. 이번 인사에서 경찰대 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 승진 내정자들은 그동안 기획·정보·경무 업무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들이다. 모두 수사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단행된 앞서의 검찰 인사에서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검사들이 승진했다. 경찰 내부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 ‘검수완박’ 법안 후속 대응을 위해 경찰 수사권 확대에 목소리를 내왔던 경찰대 출신과 수사 라인의 힘을 의도적으로 뺐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 검찰 출신 인사가 낙점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경찰 수사를 총괄한다. 확대된 경찰 수사권의 지휘·감독권은 국수본부장 몫이다. 국수본부장 자리는 개방직으로, 외부 인사를 임명할 수 있다. 현 국수본부장 임기는 2023년 2월까지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