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는 늘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주로 아파트 단지를 오가는 정도로 짧은 산책을 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적 있는 주민은 그와 함께 다니던 중년의 여성이 활동지원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중에 뉴스 나온 걸 보고서야 ‘그 사람이 엄마였구나’ 하고 알았지.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두 사람 다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못 알아봤나 봐.”
2년 전,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로 이사 온 모녀에겐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이웃도, 친구도 없었다. 모녀가 살던 곳은 전용면적 59.76㎡(약 18평)의 1층 집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모녀의 인상착의나 행동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모녀는 발코니 난간에 작은 선반을 걸어두고 화분들을 키웠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 몇몇 사람이 이삿짐센터도 부르지 않고 짐을 조금씩 빼내 옮기고 있었다. 빨갛고 노란 꽃들이 주인 없는 집을 지켰다.
지난 5월23일 밤 10시30분쯤, 모녀가 살던 집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60대 어머니 ㄴ씨가 실려 나왔다. 숨이 붙어 있는 건 ㄴ씨뿐이었다. 종종 어린 자녀를 어머니에게 맡기곤 했던 그의 아들이 이날 늦게 이곳을 방문했다가 모녀를 발견했다. 딸 ㄱ씨가 다량의 수면제 복용으로 목숨을 잃은 지 6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머니 ㄴ씨는 다음 날 경찰 조사에서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함께 죽으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딸 ㄱ씨가 뇌병변(뇌 손상으로 인한 신체장애로 뇌성마비, 뇌졸중 등이 있다) 장애 1급이었으며 얼마 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시사IN〉이 연수구청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일부는 사실과 달랐다. ㄱ씨의 주(主)장애는 ‘장애 정도가 심한 지적장애’, 부장애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뇌전증(간질)’이었다. 뇌병변은 신체장애이고 지적장애는 발달장애 하위의 정신장애로 둘은 완전히 다르다. 등급이 표기되지 않는 이유는 2019년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장애 등급 대신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혹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두 단계로만 나누어 표기한다.
ㄱ씨를 돌볼 사람은 어머니 ㄴ씨뿐이었다. ㄴ씨의 남편은 오래전부터 타지에서 생활했기에 간병의 부담을 나눠 질 수 없었다. 함께 살던 아들 역시 결혼 후 독립해 ㄴ씨는 홀로 암 투병 중인 장애인 딸을 하루 종일 돌봐야 했다. 장애인 복지시설을 알아보려 했지만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수구청에 따르면, ㄱ씨는 2011년 1월부터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 제도는 2005년 지체장애(신체장애) 5급이던 한 장애인이 수도관 파열로 방에 흘러들어온 물에 동사한 사고를 계기로 마련됐다.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인활동법)’에 따라 2011년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ㄱ씨는 해당 제도가 도입된 해에 바로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했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집을 방문해 목욕 등을 보조하거나 활동을 돕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때 장애 정도에 따른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활동지원 등급’을 정한다. 중증 지적장애인이던 ㄱ씨는 활동지원 등급이 ‘13등급’이었다. 한 달에 120시간, 하루에 약 4시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다. 예를 들어 1등급은 한 달에 480시간가량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는다. 이에 비하면 한 달에 120시간은 매우 적은 시간이다. 2021년 장혜영 의원(정의당)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2019년 7월~2021년 6월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구간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규 신청해 선정된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아우르는 범주)의 약 96.8%(전체 1만4817명 중 1만4338명)가 전체 15등급 중 최하위 등급인 12~15등급을 받았다. 제도가 생긴 이후에도 ㄱ씨와 같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돌봄과 간병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온 셈이다.
발달장애인에 불리한 조사 항목
활동지원 등급 조사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전담하는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종합조사)’를 통해 정해진다. 전문 조사원이 현장조사(가정방문)를 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시·군·구에 설치된 수급자격심의위원회에서 활동지원 등급을 최종 결정한다. 종전에는 1~3급에 속하는 장애인들만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모든’ 장애인이 활동지원 서비스(최소 월 60시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개선된 점이다.
하지만 사각지대도 발생했다. 장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등급 판정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조사 결과가 가장 절대적이다. 장애인 당사자나 조력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종합조사가 도입된 이후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줄어들거나 등급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 수천 명씩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다. 예산은 늘리지 않고 수급자만 늘렸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2021년 장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장애인 활동지원 기존 수급자 월 한도액 산정특례 현황 세부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 장애인은 7185명이었고 서비스에서 탈락한 장애인은 477명이었다. 특히 이 중 눈여겨볼 부분은 발달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은 50.4%(3865명), 서비스에서 탈락한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은 61.2%(292명)에 달했다.
종합조사가 발달장애인에게 불리한 이유는 조사 항목 때문이다.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종합조사표)’의 조사 항목은 크게 기능 제한, 사회 활동, 가구 환경 등 세 가지로 나뉜다. ‘기능 제한’ 항목을 조사할 때는 목욕하기, 옷 갈아입기, 대중교통 이용하기와 같은 신체적 어려움을 파악하거나 주의력, 집단생활 부적응 같은 정신적 장애를 파악한다. 그런데 신체적 어려움을 파악하는 문항 수는 총 21개에 총점이 438점인 반면, (발달장애인에게 해당하는) 정신적 어려움을 파악하는 문항 수는 8개에 총점이 94점에 불과하다.
장종인 사무국장은 “종합조사표는 신체 기능에 초점을 맞춰 높은 점수를 배정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하위 등급을 받게 된다. 발달장애처럼 신체능력에 제한이 없는데 인지능력에 제한이 있을 경우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하고, 120시간보다 더 많은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 지금은 제도가 발달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에서 ㄱ씨가 사망한 바로 그날,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어머니가 여섯 살 발달장애 아들을 안고 투신해 목숨을 잃었다. 남편이 딸을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집을 비운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같은 날 두 사건이 벌어지고 사흘 뒤인 5월26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앞에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가 차린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얼굴이 없는 세 고인의 영정 사진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 누군가 여섯 살 아이의 영정 사진 앞에 뽀로로 비눗방울 장난감과 초콜릿을 올려두었다. “자식이 하루라도 먼저 가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아십니까. 제발 사회를 바꿉시다.” 시민과 장애인 가족들이 남긴 애도의 글이 빈 벽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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