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황동현씨(가운데) 가족이 창원중앙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4월19일 새벽 4시, 아들 황동현씨(20)가 먼저 잠에서 깼다. 경남 진해의 텃새들은 이미 여름 깃으로 옷을 바꿔 입고 있었다. 동현씨의 기척에 엄마 조복희씨(51)도 잠에서 깼다. 모자는 집 안을 기웃거리는 푸르고 어스름한 빛을 보며 다시 깜빡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복희씨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세 가족이 모두 서울에 올라가 삭발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운 날이 될 것 같았다.

복희씨는 동현씨가 첫 생일을 맞을 때쯤 어딘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언어발달이 느린 것뿐이라며 언어치료를 제안했다. 그때부터 부부는 다른 확률도 염두에 뒀다. 동현씨가 세 살이 되던 2005년, 복희씨와 남편 황건하씨(55)는 아이에게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아이의 장애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아이는 손발이 크다’ ‘유난히 머리색이 옅다’ 같은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각오하고 약속하는 일이다. 많은 장애인 부모가 자녀의 장애를 오랫동안 부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줄어들지 않으면 가족이 짊어져야 할 약속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복희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장애인 부모 단체대화방을 확인한다.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해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요. 인정을 하고 나서도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끼리 서로서로 연락을 해요. ‘오늘 너무 심하게 싸웠다’는 연락이 오면 밤 11시든, 새벽 2~3시든 가서 중재하고 달래고 화해시키고 오는 거예요.”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이 움직일 때, 지역공동체가 움직일 때 장애인도 살 만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복희씨도 경험으로 배웠다. 복희씨는 초중고 일반학교를 다닌 아들과 12년 동안 매일 등하교를 함께했다. 열성적으로 학부모회 활동도 했다. “장애인과는 소풍 안 갔으면 좋겠다”라던 친구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중학교 3학년 수학여행을 앞두고 한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은 “장애 아동이 수학여행을 같이 갈 땐 보조교사를 배치해달라”라고 먼저 제안했다. 비장애 아동의 학부모가 해준 이 배려가 복희씨에겐 용기가 됐다.

동현씨가 고등학생 때, 특수학교인 창원천광학교를 다니던 한 장애 아동이 실종된 일이 있었다. 당시 복희씨도 애를 끓였다. 장애인 부모들 사이에서는 ‘어느 집 아이가 없어졌다고 대화방에 사진이 뜨면 잠옷 바람으로라도 뛰어나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실종 접수 비율은 18세 미만 아동 인구의 실종 접수 비율(0.25%)의 10배(2.47%)에 이른다. 치매 환자 실종 비율 1.72%보다도 높다. 비장애 실종 아동보다 미발견 비율은 두 배, 발견 시 사망 비율도 4.5배나 높다.

당시 복희씨는 동현씨가 졸업한 창원의 초등학교 학부모 단체대화방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비장애인 부모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자녀들에게 실종된 아이의 사진을 SNS에 올려달라고 연락했다. 다들 여력이 되는 한, 차를 몰고 나가 집 근처와 시내 곳곳을 살폈다. 모두가 한번 본 적도 없는 장애 아동을 찾기 위해 나서주었다.

‘우리 가족만 동현이를 위해 노력하면 된다’ ‘치료로 조금만 더 나아지면 동현이도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거다’라고 오랫동안 복희씨와 건하씨가 해오던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부부가 없어도 아들 혼자 살아갈 수 있으려면 더 많은 것이 달라져야 했다. 2016년 동현씨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복희씨는 처음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문을 두드렸다.

세 가족 모두 삭발식에 동참하자는 아이디어는 복희씨의 생각이었다.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4월20일)을 하루 앞둔 4월19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대규모 삭발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4년 전인 2018년에도 209명의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같은 장소에서 삭발을 했다. 그때와 지금의 요구사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4월19일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삭발 집회에 참석한 황건하씨가 아들 황동현씨의 머리를 깎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자립과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려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예산과 구체적 정책 부족으로 약속은 실효성 없이 겉돌았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들이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 이행률을 평가한 ‘문재인미터(moonmeter.kr)’에 따르면 ‘장애인 활동지원 및 의료지원 확대’ 공약 이행률은 25%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발달장애인 관련 공약을 냈다. ‘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조기 개입’과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예방하는 AI 개발’이다. ‘국가 조기 개입’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현행 발달장애인법 제23조에 따르면 ‘조기 진단 및 개입’이란 “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하여 검사도구의 개발, 영유아를 둔 부모에 대한 정보제공 및 홍보 등 정책 강구”를 말한다. 단순히 장애 ‘진단’과 ‘치료’에만 초점을 맞출 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복희씨는 아들에게 ‘왜 삭발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동현이가 살아가는 세상, 동현이 손으로 같이 열어요.” 엄마의 말에 “동현이 삭발해요. 동현이 스님 안 해요.” 요즘 〈불교방송〉을 즐겨 보는 동현씨가 선뜻 답했다. 스님은 안 될 거지만 삭발은 하겠다는 뜻이었다. 누굴 만나기만 하면 며칠 뒤 삭발할 거라고 소문을 냈다. 서울의 크고 작은 집회를 복희씨와 함께 참석해왔던 동현씨는 학교에서도 깃발만 보면 ‘집회!’라고 외치곤 했다. 동현씨는 발달장애인 권리를 위해 단체로 머리를 밀고, 곡기를 끊으며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여러 해 지켜봐왔다.

4월19일 오전 9시30분 창원중앙역. 세 가족은 똑같은 가방에, 똑같은 디자인의 카디건을 걸치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혼자 있는 동현씨를 발견한다면 똑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보고 ‘가족들이 저기 있다’고 알려줄 것 같았다. 동현씨를 키우는 동안 부부의 외출복은 점점 닮아갔다.

세 사람은 늘 일렬로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언제나 맞닿고 얽혀 있는 세 사람 손은 종종 노트가 되기도 했다. 아들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때 부모는 동현씨 손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러면 동현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손가락으로 썼다.

창원에서 출발한 기차는 3시간여를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삭발식이 열리는 청와대 앞으로 향했다. 이미 집회가 시작돼 무대 위에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서 있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장애인 권리보장법, 탈시설지원법 같은 굉장히 중요한 법안들이 심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동료 의원님들께서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의의 의미로 삭발을 합니다.” 연대 발언을 하던 장 의원은 발달장애인 동생의 언니로서 자신도 삭발식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애초 삭발 예정 인원이던 555명이 556명이 됐다.

삭발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가족 중 12명이 무대 위에 올랐다. 외손자가 발달장애인인 79세 최고령 할아버지, 사회복지사이자 발달장애인 여동생과 남동생, 자녀를 돌보는 40대 엄마, 그리고 복희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복희씨의 긴 머리를 자르는 데 10여 분이 걸렸다. 삭발을 하는 동안 복희씨는 젖은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면 동현이가 보일까 봐 도저히 못 뜨겠더라고요.” 무대 위 삭발이 마무리될 때쯤 단상 아래에서 참가자 500여 명도 동시 삭발을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빈 박스에 새하얗게 샌 머리카락, 굵은 컬이 탐스러운 머리카락, 염색이 선명한 머리카락…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인 머리카락들이 봄볕 아래 우수수 떨어졌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은 삭발에 동참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며 행사에 함께했다.

500명이 뒤엉켜 삭발을 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절박함과 비장함 사이에 애정과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며 “안 되겠다. 언니 미용실 가서 머리 다시 정리해!”, 서툰 실력에 원망과 농담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선크림을 이제 뒤통수까지 발라야 되겠다” “삭발이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왜 이렇게 잘생겼어? 이게 훨씬 낫다”처럼,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한 사람들이 서로 목덜미에 붙은 머리카락을 떨어주고 바리캉을 빌려주며 한마디씩 농담을 붙였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삭발식이 끝난 뒤엔 원래 알던 사람들처럼 친근해졌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머리를 깎는 삭발 현장에는 울음과 웃음이 섞여 있었다. 복희씨도 처음엔 그게 참 이상했다고 말했다. “정말로 힘든 투쟁을 많이 하거든요. 장애인 투쟁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그 힘든 싸움 뒤에 그래도 조금씩 무언가를 이뤄왔기 때문이에요. 이게 변화의 시작이 되리라고 믿는 거죠.”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2011년 장애아동복지지원법, 2014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 더디지만 수십 년간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법 제정을 이끌어온 이들이 바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었다.

아빠 건하씨와 동현씨도 머리를 밀었다. 건하씨가 먼저 삭발을 했다. 동현씨는 아빠의 안경을 들고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동현씨 머리는 건하씨가 직접 깎아줬다. 엄마 복희씨까지 무대에서 내려와 세 가족이 모이자 동현씨는 복희씨의 까슬거리는 머리를 자꾸 쓰다듬었다. 아빠 머리 한 번, 엄마 머리 한 번, 자기 머리 한 번. 세 사람의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쟁취’라고 적힌 머리끈이 바람에 날렸다.

삭발 집회에 참석한 황동현씨(가운데) 가족이 서울 경복궁역에 설치된 천막 앞에 앉아 있다. ⓒ시사IN 조남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

동현씨 가족을 포함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주장한다. 발달장애인들이 가족의 보살핌 없이 혼자 남겨지더라도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시설이나 집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을 전제로 정책과 예산을 배정한다. 구체적으로는 활동지원 서비스 제공시간 확대, 장애인 인턴사업을 통한 고용 확대와 맞춤형 공공일자리 제도화, 장애인 지원주택(개인 명의 계약이 가능한 주거공간과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를 결합한 주거모델) 도입, 부양의무제가 아닌 장애인연금 확대를 통한 소득보장 등이 포함된다.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장애인과 가족들의 기대가 컸다. 당장 발달장애인 예산이 2018년 85억원에서 2019년 427억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신규 사업인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활동 서비스’는 지원 대상을 2019년 1500명에서 2022년 1만7000명까지 늘리겠다고 계획했다. 청소년 발달장애인을 위해 신설된 ‘방과후 돌봄 서비스’ 역시 2019년 4000명에서 2022년 2만20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계획만큼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2022년 주간활동 서비스 지원 대상자는 1만명, 방과후 돌봄 서비스 지원 대상자도 1만명으로 당초 계획의 절반에 그쳤다.

복희씨는 아들 동현씨를 키워온 20년 동안 아직도 같은 악몽을 꾼다. 전쟁통에 아들의 손을 잡고 힘껏 달리며 도망치는데 어느 순간 옆을 돌아보면 동현씨는 없고 처음 보는 아이가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들을 찾을 수 없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홀로 남는 아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전쟁터에 부모도 없이 혼자 길을 잃은 아이.’ 복희씨가 두려워하는 동현씨의 미래는 그것이다. 그래서 복희씨와 건하씨는, 또 556명의 장애인 가족들은 거리에 나서 삭발을 했다.

삭발식이 열린 4월1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는 ‘장애와 비장애와의 경계 없는 사회 구현을 위한 장애인 정책’을 발표했다. 24시간 지원체계에 대해 안상훈 인수위원은 “한번에 달성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고, 착실하게 주간·방과후부터라도 챙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검토’라는 기약 없는 단어를 앞에 두고 4월20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윤종술 회장, 탁미선 부회장, 김수정 서울지부장, 조영실 인천지부장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기자명 진해/글 김다은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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