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5월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죽음을 강요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를 열고 있다.ⓒ시사IN 이명익

그 집 대문에는 색종이로 만든 꽃잎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현관문 옆 복도에는 똑같이 생긴 유아차 두 대. 아이들이 삐뚠 손글씨로 제 이름을 적은 분홍색 꽃잎을 쳐다봤다. 그걸 쓴 한 아이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터였다. 쌍둥이 중 남자아이가 발달장애였고, 어머니가 그 아이를 안고 투신했다. 보통 사람들은 꽃잎을 뗀다. 유아차를 치운다. 지상파 TV 뉴스에까지 그 현관, 꽃잎, 유아차가 자료 화면으로 나왔는데 대체 누가 그걸 그대로 두나?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분주하고 쾌활한 목소리.

“안녕하세요, 저는….” 운을 떼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에 A씨가 있었다. 조용하고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그는 가족이 죽음을 선택한 공간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을 흔들곤 등을 돌렸는데 내가 본 마지막 표정에는 놀라움과 분노가 있었다. 오후 4시, 애매한 낮 시간의 고요가 먼지처럼 복도에 내려앉았다. 날이 맑았다. 그가 몸을 돌려 나를 한번 보곤 허리를 깊이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기자님,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 찾아오지 마세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저희 정말 죽어요.”

몇 달이 지났는데도 나는 종종 그와 마주친 순간을 떠올린다. 아마 그의 눈빛과 태도 때문일 거다. A씨의 눈빛은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꽃잎 떼지 않은 마음’을 짐작했다. 내가 벨을 눌렀던 그 집엔 엄마와 남동생이 잠깐 어디 갔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며칠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가 집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아이가 있었겠구나 싶었다. “소리가 울리지 않게 복도 끝으로 가요.” A씨가 했던 말은 이웃 때문이 아니라 집에 있을 아이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기사에 이 만남에 대해서도, 이 가족에 대해서도 쓰지 않았다. 마음이 허기지는 현장에 다녀온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겠거니 짐작한다. 어쩌면 많은 이야기를 생략해야 했던 기사가 정작 기자들 마음에 오래 남기도 할 거다. 오늘 가을비로 젖은 바닥에 축축한 이불을 덮고 누운 노숙인을 보고 지나쳤다. 날이 추워지니 꼭 다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취재원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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