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을 기획하거나 개발할 때마다 동료들과 가장 많이 나누는 말은 ‘사용자 관점’이다. 사용자 관점이란, 시스템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가늠한다는 뜻이다. 사용자 관점 웹사이트 개발에 대한 연구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웹사이트에 접속한 사용자의 시선 흐름에 관한 이론이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사용자들은 가장 먼저 화면의 왼쪽 상단을 응시한 뒤 오른쪽 하단을 향해 대각선으로 시선을 이동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웹사이트가 로고 이미지를 왼쪽 상단에 배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접속했을 때, 웹사이트의 이름과 아이덴티티를 가장 먼저 확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우리 서비스에서 어떤 정보를 찾고, 또 어떤 기능을 필요로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부 구성원들의 논의만으로는 쉽사리 알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일단 이를 논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반 사용자’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만들어온 내부 구성원들은 기존 시스템 구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어떤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따라서 내부 인원만으로는 웹사이트에 처음 접속한 사람이 어떤 화면에서 막히고, 또 어떤 기능을 어려워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를 알아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도입한다. 사용자를 직접 섭외하여 그들이 어떻게 시스템을 이용하는지 지켜보거나,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고객 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 등이다. 혹은 웹사이트 분석기를 설치하여 사용자가 어떤 페이지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지 혹은 어디에서 꺼버렸는지 데이터를 통해 분석할 수도 있다.

내 마음에 들고 내 손에 익숙한 시스템을 만들기는 쉽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건 다른 공정을 추가하면서까지 애를 써야 한다. 그만큼 비용과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투입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 웹사이트에 더 많은 사용자가 접속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함이다. 이익을 내지 않는 공공기관 웹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웹서비스는 대국민 서비스라는 본연의 취지에 맞추어 국민들이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편을 거듭해왔다. 이전에는 보안 프로그램이나 플러그인을 몇 개나 설치해야 했는데, 그래 놓고도 튕기기 일쑤였다. 원하는 정보를 제대로 찾기도 전에 설치만 하느라 진이 빠졌던 공공기관 웹서비스들이 최근엔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개선한 결과다.

모든 IT 서비스는 그 나름의 필요와 의미를 가진다. 사용자와 더불어 만들어나가는 시스템인 만큼 서비스를 바꾸거나 없애는 것 역시 서비스 제공자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이전에 내가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단 한 명의 사용자를 위한 시스템이 있었다. 그 시스템에 접속하는 유일한 사용자는 특정한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였다. 그의 업무가 회사에 필요한 이상, 그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도 계속 필요했다. 물론 개발 부서에서는 그 시스템이 언제나 눈엣가시였다. 단 한 명이 사용하는 그 시스템을 위해 여러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여겼으니까. 아무리 그렇다 한들 그 시스템을 개발 부서가 마음대로 없앨 수는 없었다. 개발 부서의 시각에서는 자원 낭비였지만, 회사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여가부에서 운영하던 IT 서비스는?

시스템을 없애는 일은 없는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 절차와 방법, 대안을 꼼꼼하게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때 광풍을 일으켰던 ‘싸이월드’만 봐도 알 수 있다. 싸이월드는 사용자들이 점차 줄어들어 수익이 나지 않자 서비스 중단을 사전에 공지한 뒤 기존 미니홈피의 데이터 백업 기한을 주었다. 그 기한을 준 것 자체도 기업에는 무시할 수 없는 손실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싸이월드는 비단 서비스 제공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용자가 함께 만들어온 것이기에, 손실을 감당하고도 최소한의 도리를 했던 셈이다.

온라인 성착취가 일어나는 주요 경로인 랜덤채팅 앱에 대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한 것도 여성가족부의 성과 중 하나다.ⓒ국회사진기자단

사용자가 감소하여 발길이 뜸해진 사기업 서비스조차 문 닫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사람들이 지금 원활히 이용하고 있는 공공서비스의 경우는 어떨까.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하기도 전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게시한 바 있다. 폐지 배경에 대한 논리도, 근거도 없는 포스팅이었다. 당선 이후에야 윤 당선자는 “지금은 개별적 불공정과 범죄적 사안에 대응하는 게 맞다”라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배경에 대해 밝혔다. 여성가족부가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말과 함께.

윤 당선자의 말처럼 여성가족부는 정말 소명을 다한 기관일까? 아니다. 복잡하게 일어나는 성착취·성폭력 문제에 의해 여성가족부의 역할은 이전보다 더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성착취 영상을 삭제한다. 이 센터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가들이 수기로 지우거나 피해자가 직접 돈을 지불하고 영상을 삭제해야 했다.

온라인 성착취가 일어나는 주요 경로인 랜덤채팅 앱에 대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한 것도 여성가족부의 성과 중 하나다.ⓒ시사IN 신선영

또한 여성가족부는 전국에 성매매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를 열어 성착취 환경에 놓인 십대 청소년을 지원한다. 온라인 성착취가 일어나는 주요 경로인 랜덤채팅 앱에 대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한 것도 여성가족부의 성과 중 하나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일도, 십대 청소년의 성착취를 막는 일도 결코 개별적인 대응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하는 국가 안전망의 영역이다.

사용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명분과 근거, 나아가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과 적합한 보상이 필요하다. 시스템의 향방을 결정할 때에도 고객 만족도 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여성가족부의 사업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여성가족부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학 내 총여학생회 부재에 빗댔지만, 오히려 이 공약은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했던 박근혜 정권과 닮았다.

운영하는 이의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이 유지보수의 철칙이다. 지금 윤 당선자가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것 중 충분히 의견 수렴을 거치고 대안을 마련한 게 단 하나라도 있을까? 대통령은 나라를 유지보수하고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다. 공공서비스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자명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