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초박빙’으로 몰고 간 배경에는 20대 남녀의 상반된 선택이 있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58.7%가 윤석열 당선자를 선택한 반면 20대 여성의 58%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한 세대를 성별로 가른 원인에 대해선 여러 가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역대 최소 득표 차로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에게도, 패배의 책임을 놓고 혼란에 빠진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게도 20대 표심은 복기해야 할 중요한 단서다. 20대 남녀의 극명한 분리가 이번 대선에서만 나타난 특이 현상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반복될 정치적 균열인지 가늠해봐야 한다.
〈시사IN〉의 20대 대선 웹조사를 살펴보면 후자에 무게를 두는 결과가 나왔다. 20대 남성과 여성은 대구·경북과 호남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다른’ 정치적 집단처럼 나타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감정온도를 보면 광주·전라(59.2도)와 대구·경북(35.4도)의 격차보다, 20대 여성(56도)과 20대 남성(27.5도)의 격차가 더 컸다. 여야 정치인 8명에 대한 ‘감정온도’를 물은 결과 중 하나다. 감정온도는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측정하는 지표로, 0은 매우 부정적 감정을, 100은 매우 긍정적 감정을 의미한다. 단순히 윤석열과 이재명에 대한 호오만이 아니라, 다른 정치인과 집단에 대한 감정온도에서도 20대는 어떤 세대에도 볼 수 없는 극명한 성별 분리를 보였다(〈그림 1〉 참조). 청년층에서는 성별이 지역주의보다 강한 정치적 갈등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다.
윤 당선자에게 가장 부정적인 집단
20대 남성은 윤석열 당선자(45.3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47.3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46.4도),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50.7도) 등 보수 성향 정치인에 대한 감정온도가 높았다. 반면 20대 여성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48.9도),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55.8도) 등 진보 성향 정치인에 대한 감정온도가 높았다. 반대로 진보 성향 정치인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감정온도, 보수 성향 정치인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감정온도는 이번 〈시사IN〉 웹조사에서 대부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당에 대한 인식도 이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그림 2〉 참조). 국민의힘에 대한 20대 남성의 감정온도가 38.1도인 데 비해 20대 여성은 22.2도에 불과했다. 반면 민주당(42.6도)과 정의당(45.3도)에 대한 20대 여성의 감정온도는 국민의힘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20대 남성의 감정온도는 각각 22.8도, 20.6도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성별 가운데 윤석열 당선자에게 가장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 집단은 20대 여자였다(21.1도). 평균(39.4도)에 비해 18.3도 낮다. 여기엔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당선자의 반페미니즘 행보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20대 남녀의 투표 전쟁 아프냐, 내가 더 아프다’ 기사 참조). 선거운동 내내 비판받은 ‘젠더 갈라치기’ 논란은 대선을 코앞에 둔 3월8일에도 이어졌다. 세계 여성의날이었던 이날, 윤 당선자는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여성 인권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산 공약을 SNS에 끌어올렸다.
같은 날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발언을 철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국민의힘 측이 행정상 실수였다고 해명하자 〈워싱턴포스트〉 측은 윤 당선자의 서면 답변을 직접 공개하고 후속 보도를 냈다. ‘한국 대선후보, 세계 여성의날에 페미니스트 라벨 거부(3월8일)’ 영국 BBC와 〈가디언〉 등 외신도 한국의 대선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전면에 등장했다고 진단했다.
이와 비슷하게 정치인들 가운데 젊은 층 남녀의 평가가 가장 극명하게 갈린 인물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였다. 그에 대한 20대 여성의 감정온도가 16.7도에 불과한 반면 20대 남성의 그것(46.4도)은 동년배 여성의 세 배에 가까웠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낮은 감정온도는 20대 여성만의 것이 아니었다. 평균 27.8도에 비해 30대 여성(18.4도), 40대 여성(19.3도)도 낮게 나왔다. 윤석열 당선자에 대해 30.9도였던 30대 여성의 감정온도도 이준석 대표에 이르러서는 18.4도로 뚝 떨어진다. 2021년 6월 젊은 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보수정당의 0선 30대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의 반페미니즘 전략에 강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이 대표는 “20대 여성은 어젠다 형성에 뒤처지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1월20일 〈오마이뉴스〉)” “각종 조사에서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3월7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 등의 발언으로 여성 유권자를 공공연히 평가절하했다. 결국 이준석 대표의 이러한 언행은 ‘성별 갈라치기’ 정치에 반발한 20대 여성들이 선거 막판 이재명 후보 쪽으로 결집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현상에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까? 50% 이상이었던 정권교체론과 안철수 후보 단일화 등 다른 변수가 20대 남녀의 선택에 미친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서 〈시사IN〉은 감정온도에 대한 문항에 페미니스트 이외에 시민단체, 586 정치인, 검찰 등의 집단을 포함시켜 질문해봤다. 이 집단들에 대한 감정온도를 비교해보기 위해서다(〈그림 2〉 참조). 페미니스트에 대한 20대 남성의 감정온도는 8.5도(평균은 24.9도)로 나타났다. 한 자릿수 지표는 전체 감정온도 결과들 중 유일했다. 2021년 8월 〈시사IN〉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진행한 ‘20대 여자 현상’ 웹조사 때보다 떨어진 수치다. 당시 페미니스트에 대한 20대 남성의 감정온도는 14.3도였다(〈시사IN〉 제728호 “20대 여자 현상-‘약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차별받고 있다’” 기사 참조). 20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가장 호의적으로 평가한 반면(49.6도), 안티페미니스트를 가장 호의적으로 본 집단은 20대 남성이었다(39.2도).
20대 남성의 뜬금없는 ‘호감 대통령’
20대 남성들의 보수화 경향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림 3〉 참조). 보통 이런 질문에는 성별과 관계없이 젊은 세대에서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년 세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 2위로 단골처럼 꼽힌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의외의 인물이 ‘호감 대통령’으로 등극했다. 20대 남성 중 41.1%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호감 간다’고 응답한 것이다. 전통적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남성(29.2%)보다 10%포인트 넘게 높은 데다 평균 호감도(19.6%)에 비해 현저히 ‘튀는’ 수치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도를 묻는 질문에서 1위(76%)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20대 남성의 태도는 분명 이질적이다. 보수화한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대 남성에게 1위 호감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인데(52.8%), 이는 모든 연령·성별 가운데 가장 낮은 호감도다(평균 71.3%). 20대 남성은 박정희 전 대통령(33.5%)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더 호감을 보였다. 이 전 대통령은 현재 뇌물수수와 횡령 등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에 비해 20대 여성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높은 호감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호감 간다’고 응답한 비율(59.6%)이 가장 높은 집단은 20대 여성이었다. 정권교체론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휩쓴 상황에서, 20대 여성만은 현 정부에 대한 긍정 평가를 60% 가까이 내놓은 셈이다.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겨지는 4050 남성의 지지도보다 높다.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들의 보수적 태도만큼이나, 20대 여성들의 진보적 태도도 함께 포착된다. 20대 여성은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정의당에도 전체 연령·성별 중 감정온도가 높은 집단이다. 이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586 정치인에 대한 감정온도도 20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시민단체, 노동조합, 586 정치인에 대한 20대 남성의 감정온도는 각각 17.5도, 17.6도, 14.6도로 최저치인데, 20대 여성은 39.8도, 38.2도, 25.9도로 평균보다 높다. 세 집단은 선거운동 당시 윤석열 당선자로부터 ‘정치교체’와 ‘부패척결’의 대상으로 지목된 바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을 보면,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은 그들의 정치적 결집력만큼 충분히 주목받지는 못한 것 같다. ‘20대 여성이 캐스팅보트’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이대남과 이대녀 전략’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선거 초중반엔 아무래도 이대남 전략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이 부동층 여성 표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선거 막판에 이르러서다.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박지현씨를 선대위에 영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20대 여성들이 선거 막판에 이재명 후보로 결집한 것도 사실이다. 선거 직후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는 ‘윤석열을 막기 위해 이재명을 찍은’ 유권자들이 보낸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금 12억원이 쇄도했다. 민주당에는 2030 여성들의 입당 러시가 이어졌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 감정온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쇄신 노력이 애매모호하면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슬아슬한 표차로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도 ‘젠더 갈라치기’ 효과에 대해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3월10일).” 3월13일에는 “여가부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라며 폐지 의지를 다시 피력했다.
〈시사IN〉 웹조사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이점은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상대 지지자에 대해서도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재명 지지자’에 대한 20대 남성의 감정온도는 22.2도, ‘윤석열 지지자’에 대한 20대 여성의 감정온도는 19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동일 세대 내의 이 같은 극명한 대립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을 치른 한국 사회의 숨겨진 비용일 수 있다. ‘이재명 지지자’에게 가장 우호적인 집단은 20대 여성(43.6도)이고, ‘윤석열 지지자’에게 가장 긍정적인 집단은 60대 이상 남성(48.6도)이다.
20대 유권자에서 보수와 진보가 성별에 따라 갈리는 듯한 경향은 정치권이 읽어야 할 중요한 변수다. 결국 각 정당이 20대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복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감정온도는 계속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 일시:2022년 3월11~14일
조사기관:한국리서치
모집단: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표집틀:한국리서치 마스터샘플(2022년 2월 기준 전국 75만여 명)
표집 방법:지역·성·연령별 기준 비례할당 추출
표본크기:2000명
표본오차:무작위 추출을 전제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 표집오차는 ±2.2%포인트
조사 방법: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
가중치 부여 방식:지역·성·연령별 가중치 부여(셀 가중, 2022년 2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
응답률(협조율):조사 요청 9699명, 조사 참여 2533명, 조사 완료 2000명(요청 대비 20.6%, 참여 대비 79.0%)
①20대 남녀 투표, 이 지점에서 극명히 갈렸다 [대선 표심 분석]: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184
②윤석열 찍은 부동산 표심은 종부세 경험한 부유층 [대선 표심 분석]: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7
③선거 전략은 온라인, 유권자는 전통 미디어 [대선 표심 분석]: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19
④심각한 정치 양극화, 미래가 더 문제다 [대선 표심 분석]: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06
⑤북한·미국·중국·일본에 대한 감정온도 어떻게 다를까? [대선 표심 분석]: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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