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에 도전한다. ‘한국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이었던 그의 이후 행보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강 전 장관은 다시 국제무대를 선택한 것이다. 그가 외교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 10여 년 동안 유엔에서 주로 담당했던 인도주의 사업과는 또 다른, 새로운 영역(노동)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10월1일 ILO 사무총장 후보자 등록 서류를 냈다. 투표일은 내년 3월25일이다.

강 전 장관의 경쟁자는 네 명이다. 그레그 바인스 현 ILO 사무차장(오스트레일리아), 질베르 웅보 전 ILO 사무차장(토고), 뮤리엘 페니코 전 프랑스 노동장관(프랑스), 음툰지 무아바 국제사용자기구 이사(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모두 쟁쟁한 이력을 지녔다. 이 중 아시아 출신 여성은 강 전 장관 한 명뿐이다. 당선될 경우 최초의 아시아 출신 여성 ILO 사무총장이 된다.

11월4일, 현재 명예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강경화 전 장관을 만났다. 선거 준비에 한창인 그는 이틀 뒤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ILO 사무총장 출마라니, 예상치 못한 도전이다.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3년8개월 동안 외교부에 있으면서 ‘한국이 능력 있는 중견국가로서 국제사회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화두처럼 남아 있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016년 임기를 끝냈고,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총재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그 이후로는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 기회가 잘 안 보이더라.

왜 그럴까?

한국이 유엔에 공식 가입한 게 1991년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출발 자체가 많이 늦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건 엄청난 외교적 성과였다. 이제 또 한 번 성과를 만들 때가 됐다. 장관 재직 시절 우리나라 인재를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시키려 했지만, 주어진 기회와 인재 프로필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강 전 장관의 프로필이 ILO 사무총장직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이 없다는 지적은 분명히 맞는 이야기다.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적극 배워나가야 한다.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노동계와 충분히 소통하고 ‘제 부족한 부분을 좀 채워주십사’ 부탁드리며 선거 캠페인을 해나갈 예정이다.

국내 노동계 반응은?

한국노총 지도부와는 10월18일 면담을 잘 마쳤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는 아직 접촉하지 못했다. 현재 안타깝게도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된 뒤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상황을 바라보는 국제 노동계에서도 상당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노동계 지도자를 구속한 상황이 노동권의 기본인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그 지점도 감안하고 제가 노동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겸허히 받아들이며 적정한 시점에 민주노총과 소통할 계획이다(10월3일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강 전 장관의 경험과 비전은 ILO 사무총장 직책과 한참 거리가 멀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ILO 사무총장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 이유는?

ILO는 노동자-사용자-정부 3자로 이루어져 있다. 노사정 합의가 관건인데, 이 가운데 사무총장의 역할은 합의의 여지를 포착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엔과 외교부에서 일한 나는 그 누구보다 갈등을 중재해본 경험이 많다. 실무적으로는 2006년부터 6년 동안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일하며 ILO 직원들과 수차례 협력하기도 했다.

노동계와 관련 없는 인물이 ILO 사무총장에 당선된 전례가 있나?

10대에 이르는 ILO 사무총장 중 유일한 외교관 출신이 있다. 1999년부터 세 번이나 연임에 성공한 후안 소마비아 사무총장이다. 그의 업적은 다른 사무총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요즘 노동계와 사용자 측이 함께 고민하는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노동계 이슈는?

지난 6월 ILO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팬데믹 여파로 2019년에 비해 2020년에 줄어든 노동시간이 정규직 일자리 1억4400만 개에 해당한다는 추산이다. 사라진 일자리 하나하나 뒤에는 사람이 있다. 이걸 회복하는 과정에서 좀 더 폭넓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누구이며 계약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지 노동계약이 명확했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gig economy·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방식)’나 ‘플랫폼 노동자’ 같은 단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ILO가 지금껏 다루어온 범위만으로는 이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호의 틀에 들어와야 한다.

기본소득이나 주 4일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런 부분을 함께 고민하는 게 ILO의 큰 역할이기도 하다. 일자리 문제 하나만 딱 떼어서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의 삶 전체 속에서 노동을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ILO 커뮤니티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ILO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이 무척 강한 조직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엔보다 먼저 생긴 기구다. ILO가 1919년에 만들어지고 사반세기가 지난 1945년에야 유엔이 창설됐다. 102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쌓아온 정체성이 강한 집단이라 오히려 유엔이나 국제사회와 잘 연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 약한 연결고리를 내가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만은 꼭 바꾸고 싶다’는 노동계 이슈가 있다면?

일자리에서 성차별만은 반드시 해소하고 싶다. ILO 조직 내부에서부터 바꿔야 한다. ILO는 여성 직원 비율이 50%가 넘는데 대부분 하위직이다. 일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동등한 기회를 누려야 일하는 사람도 신이 나서 즐겁게 일하지 않겠나. 평등한 노동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직장 내 성차별은 사라져야 한다.

2월8일 외교부 청사를 떠나고 있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뒤에는 다 남성 간부’다. ⓒ연합뉴스

본인도 보기 드문 여성 고위직이었는데.

‘최초’라는 타이틀을 다른 분이 좀 가져가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첫’ ‘최초’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지난 2월 외교부에서 나올 때 코로나 때문에 퇴임식을 못 열었다. 대신 17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걸어 내려오며 방마다 들러 인사를 했다. 마지막에 차를 타러 가는데 따라 내려온 사람들이 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했다. 그때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나만 여성이고 뒤에는 다 남성 간부더라. 아이고,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웃음). (강경화 전 장관은 2017년 6월 외교부 장관으로 취임하며 “일하면서 세 아이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조직 차원에서 지원할 방안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본부 과장급 여성 관리자 비율은 2016년 15.9%였지만 매년 증가해 2020년 39%를 기록했다.)

장관으로 재직 중일 때, 중요 결정이 외교부를 건너뛰고 이뤄진다는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패싱’당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만약 남성이 장관이었다면 ‘패싱’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이른바 ‘스트롱맨’을 닮아갈 필요는 없다. 본인의 능력과 판단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2020년 3월 영국 BBC와 했던 코로나19 대응 관련 인터뷰가 화제였다.

당시 매일 아침 8시 반에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들어갔다. 각 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토론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방역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꿰고 있었다. BBC 인터뷰는 딱히 준비도 많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서 질문에 답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는가?

팀을 키우는 사람이다. 리더는 팀 구성원을 격려해서 팀이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또 내가 이 팀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더 큰 팀의 일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외교부 장관으로서 외교부를 관리했지만, 정부 부처 장관으로서 국무회의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외교부의 이익을 넘어 정부 전체의 이익을, 나라 전체의 이익을 볼 수 있는 팀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부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우리가 너무 희생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좀 더 큰 그림을 보자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아래로, 위로, 옆으로 살필 수 있는 리더가 되고자 노력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