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련 교수는 한국에서 ESG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공시제도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는 기업이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지표다. 현재 한국에서 뜨거운 주제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를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매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고 학자로서 기업 지배구조,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과 인권을 연구해온 송세련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ESG의 의미를 물었다.

‘ESG’는 무엇이 다른가?

원래 기업(주식회사)의 유일한 의무는,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주주 가치 극대화’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도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와 지역 주민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사회정의와 환경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그렇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무슨 무슨 경영’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이 그동안 꽤 많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처음엔 준법경영, 그다음엔 윤리경영이 많이 회자되었다. ‘이대로 환경을 훼손한다면 우리가 지속 가능하겠나’라는 유엔에서의 논의가 기업 경영에 접목되면서 ‘지속 가능 경영’이 나왔다.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영국에서 ‘캐드버리 보고서’가 나오면서 이사회 제도를 통해 기업의 전횡을 제어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흐름이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어떻게 보면 ESG는 그동안 따로따로 발전한 이런 가치들이 집대성된 측면이 있다. 2006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책임 있는 투자 원칙(PRI)’을 강조한 게 단초가 됐지만, 사실 ESG가 화두가 된 건 지난해 블랙록이라는 크고 영향력 있는 투자회사의 래리 핑크 회장이 CEO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부터 ESG 항목을 중요하게 보겠다’고 하면서다. 투자가들이 투자를 결정하려면 점수를 매겨야 하기 때문에 ESG를 측정하는 지표들이 만들어졌다.

ESG에 관해 합의된 공통 지표가 있나?

국제기구에서 ESG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 다만 모건스탠리, 다우존스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지표가 나오면서 기업들이 ESG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것엔 비재무적 요소가 많아서 평가 지표가 모호하다. 지금도 ‘ESG 지표의 난립’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S(Social·사회적)는 아직까지 불확실성이 높다. 환경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면 된다. 지배구조는 투명성 지표가 개발되어 있다. 반면 S의 경우, 예컨대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금지일 수도 있고 총기 규제나 가짜뉴스 방지일 수도 있다. 회사마다 내세우는 가치가 다르다. 예전에 CSR이 화두일 때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CSR 업무를 홍보부서에 배치했다. 기업활동 자체가 사회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일이 CSR의 핵심인데도, 장학제도나 기부금 같은 사회공헌에만 치중했다. ESG 역시 S가 잘 정립되지 않으면 기업의 홍보 수단 내지는 ‘한때의 지나간 유행’이 될 우려가 있다.

4월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제1차 대한상의 ESG 경영 포럼에서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맨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SG의 ‘S’는 무엇이어야 하나?

‘인권’에 중심을 둬야 한다.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이하 이행원칙)’이 나왔다. ESG가 투자자들이 나서서 구체화한 기업평가 지표라면, 유엔의 이행원칙은 정부의 규제와 보호, 기업의 자율적인 존중, 그리고 시민사회의 견제를 통해 ‘인권 경영(business and human rights)’을 독려하기 위한 원칙들이다. ESG도 지나치게 규제로만 접근하면 앞날이 뻔하고, 기업 자율에만 맡겨도 CSR처럼 실체가 없어질 수 있다. ESG의 S를 측정할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면,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온 인권 경영이라는 흐름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지배구조의 투명성은 사람들이 갖는 정의감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ESG의 모든 개념을 인권으로도 담아낼 수 있다.

유엔이 만든 이행원칙의 핵심은 ‘인권 실사를 통해 기업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파악한 실태에 따라 기업활동을 개선하며, 이 과정을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은 ‘현대적 노예 방지법’을, 프랑스는 ‘인권실사 의무법’을 제정했다. 독일은 ‘공급망에서의 기업실사법’을 발의했다. 지난해 유럽의회는 ‘기업실사 의무화법’을 유럽 집행위원회가 발의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기업실사 의무화법은, 기업이 인권·환경·지배구조에 위험을 야기하거나 이에 부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련 조사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유럽의회는 ESG와는 다소 결이 다른 ‘인권·환경·지배구조(HEG:Human Rights, Environment and Governance)’라는 용어를 10차례 이상 해당 법안에 사용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사업이 군부의 자금줄이라는 비판이 있다.

ESG나 인권경영의 중심에 있는 사상은, ‘계약관계를 이행할 뿐 그 계약의 당사자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업활동이 그 공급망을 통해 노동자나 현지 주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는 몰랐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군부와 사업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업을 단죄하긴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이나 이번 쿠데타 이후 민간인 학살의 시점에서 기업활동의 영향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했다. 이사회든 ESG 위원회든, 회사 차원에서 ‘우리의 이해관계자가 누구고, 우리의 사업활동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상시 파악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제도화되면 기업활동의 위험을 줄이고 평판도 높일 수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로힝야족 학살이 논란이던 2018년 미얀마 해군에 군함을 구매 대행했다.

기업은 자신의 활동으로 권리를 침해받는 이해관계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해야 한다. 미얀마 군부의 비민주적 행태는 갑자기 발견된 게 아니다. 군함을 구매 대행한다면 이런 행위가 미얀마에서 인권침해로 이어질 위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런 우려를 계약서 조항에 반영할 수도 있다. 예컨대 특정 활동에는 사용되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고, 이를 어겼을 때는 배상 등 조치를 취하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반인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연루될 경우 대금 지급을 중단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었다면 가스전 사업 관련 조치도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없더라도 현재 대금 지급이 군부의 재력을 강화해 인명 피해를 낳을 수 있다면 비상조치를 취해서 선례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에서 ESG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공시제도가 발전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기업이 인권이나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철폐한 커다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지 않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ILO 기본협약 8개 중 하나다. 여기서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유럽에서 사업을 하지 못한다. 무노조 경영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우리(연구자들)도 놀랐다. 공시란 게 그만큼 파괴력이 있다. ‘K-ESG(한국형 ESG)’를 만든다면 그 지표를 무엇으로 하고 어떻게 공시하며 누가 평가할지,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과는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해서 컨트롤타워하에 일관성 있는 생태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업들이 따라온다. 이때 공시된 정보를 시민사회나 일반 대중이 보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포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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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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