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저녁 전남 여수시 웅천동 웅천친수공원에서 요트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3학년 홍정운 군의 빈소가 차려진 가운데 홍군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친구들이 빈소 앞을 지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홍정운 군의 친구이자 룸메이트였던 이재욱군(18)이 촛불문화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0월11일 오후 6시, 전남 여수 이순신마리나 인근에 학생과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지난 10월6일 사망한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 군(18)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추모제에 함께한 이들은 손에 촛불을 들었다. 바닷바람이 촛불을 자꾸만 꺼트렸지만, 참가자들은 초에서 초로 불꽃을 전하며 다시금 추모제 현장을 밝혔다. 친구들은 고인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편지에 담아 낭독하고,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를 불렀다. 고인의 외할아버지 오익환씨(74)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오고 싶지 않았는데, 손주 같은 아이들이 추운 데 고생하는 게 미안해서 나왔어요.” 2시간가량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오씨는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추모제가 열린 장소 바로 앞 선착장은 홍정운 군이 현장실습을 하던 곳이었다. 여수 A특성화고 해양레저과 3학년인 홍 군은 지난 9월27일 이순신마리나에 위치한 S요트업체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요트가 선착장에 정박할 때 밧줄을 받아 묶고,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업무였다. 사고 당일, 그는 평상시와 전혀 다른 업무를 하게 됐다. 업체 대표 황 아무개씨는 그에게 따개비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바닷속으로 잠수해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끌개로 긁어내는 일이었다. 10월6일 오전 10시39분경, 바다에 들어간 홍 군은 7m 깊이 바다로 가라앉았다. 약 15분 후 물 밖으로 건져 올려졌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병원에 옮겨진 그는 결국 사망을 선고받았다.

요트 관광업 창업은 홍정운 군이 처음으로 가진 목표였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반, 다른 친구들이 진로를 정하고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을 보며 그는 “커서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라며 몇몇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같은 학교 김호영 학생(18)은 홍 군이 진로 상담을 하던 친구 중 하나였다. 그러던 지난달, 홍 군은 자신에게 꿈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요트 관광업체를 창업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래 진로 문제 때문에 정운이가 많이 우울해했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꿈을 갖게 되니까 엄청 좋아했어요. 목표가 생긴 것 자체가 기뻤나 봐요.”

꿈이 생긴 홍 군은 9월 이후 소형선박조종사 등 자격증 5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험 일정과 합격 여부를 기록한 메모를 김호영 학생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계획했던 시험들에 응시해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자격증 시험 원서에 붙이기 위해 찍었던 사진은 영정사진이 됐다.

아버지 홍성기씨(53)는 “정운이가 빨리 돈을 벌어서 저한테 힘을 보태주고 싶었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지난여름, 아버지 홍씨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아들이 S요트업체에서 일하는 모습을 현장을 찾아가 지켜보기도 했다. “직접 보니 간단한 일이었어요.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죠.” 아들이 현장실습을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다. 홍씨는 아들이 잠수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고 당일, 평소와 달리 수영복을 챙겨 가는 아들을 보고 홍씨는 이유를 물었다. 홍 군은 “수영하러 가요”라고 짧게 대답했고 그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어떤 작업을 하는지 알았다면 뜯어말렸을 텐데…, 저는 정말 수영하는 줄 알았어요.”

안전수칙도, 잠수 작업 지식도 없었다

홍정운 군이 사망 당시 작업 했던 요트의 밑바닥에 아직 제거하지 못한 따개비가 붙어 있다. ⓒ시사IN 이명익

홍정운 군은 잠수와 관련된 자격증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깊은 물에 들어가는 일 자체를 꺼렸다. 같은 학교 해양레저과에 재학 중인 한 동급생은 고등학교 1학년 당시 홍 군과 함께 스쿠버다이빙 수업을 들었다. “광주에 있는 5m 풀장에 가서 수업을 들었어요. 하잠(물 아래로 내려가는 일)을 하는데, 정운이가 도중에 올라가더라고요. 그 이후로 정운이는 발이 안 닿는 물에는 들어가질 않았어요.” 해양레저과 특성상 학교 앞 바다로 수업을 나가기도 했지만, 홍정운 군은 바다로 전혀 들어가지 못했다.

잠수 관련 자격증이 전무한 홍 군을 무리하게 바닷속으로 보낸 이유는 결국 ‘돈’이었다. 홍 군이 작업한 요트는 바람을 주 동력원으로 삼는 세일링 요트다. 세일링 요트는 5~7노트 정도의 느린 속도를 내기 때문에, 따개비가 비교적 많이 붙는다. 배 바닥에 부착된 따개비가 많아지면 배의 속도가 느려지고 연비가 낮아진다. 따라서 이를 1년에 두세 번씩 제거해줘야 한다. 잠수부를 불러 이 작업을 실행할 경우 비용이 든다. 배의 크기와 작업 인원에 따라 대략 20만~100만원이 소요된다.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황 아무개 대표는 홍정운 군을 바다로 내려보냈다.

작업 도중에 지켜야 할 안전수칙도 현장에서는 무시됐다. 다이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수중 작업은 두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최소 다이버 2명이 물속에 들어가 한 조로 활동하고, 물 밖에는 안전관리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수해경의 중간 수사결과에 따르면 홍정운 군은 혼자 수중 작업을 했다. 더욱이 선착장에서 작업을 지켜본 업체 대표는 안전관리자 구실을 하는 데 필요한 잠수 자격증이 없었다.

잠수 작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업체 대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황 대표는 해경 조사에서 “잠수 장비를 다시 착용하기 위해 공기통과 오리발을 풀었는데 납벨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홍 군이 가라앉았다”라고 진술했다.

바닷속에서 홍 군을 건져 올린 인근 레저업체 팀장 유제선씨(45)는 이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력으로 다이버를 물 위로 뜨게 하는 잠수 장비들과 달리 납벨트는 무게로 다이버를 가라앉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장비를 탈부착할 때는 납벨트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 유씨는 “장비 해체 순서가 거꾸로 됐다. 적어도 선주가 납벨트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학생에게 말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잠수 작업 당시 홍정운 군이 착용한 납벨트의 무게가 과도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납벨트의 무게는 함께 착용한 부력 장비를 감안해 조절돼야 한다. 해경에 따르면 홍 군은 산소통과 오리발, 부력조끼만을 착용했으며 전신 잠수 슈트는 입지 않았다. 유씨는 슈트를 입지 않은 채 12㎏의 납벨트를 착용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이빙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홍정운 학생처럼 오리발마저 벗겨진 상황이었다면 수영선수가 와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실습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들 역시 비극을 막지 못했다. 잠수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법적으로 현장실습생에게 잠수 작업을 시킬 수 없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의거해 현장실습 학생과 기업은 표준협약서에 따라 현장실습 계약을 맺어야 한다. 표준협약서 제10조 1항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잠수 작업을 금지하고 있다. 홍정운 군과 S요트업체 업주 또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협약서는 지켜지지 않았고, 홍 군은 잠수 작업에 투입됐다.

홍정운 군은 요트(위) 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를 위해 슈트도 입지 않은 채 잠수 작업에 들어갔다. ⓒ시사IN 이명익

‘이제 저런 일 안 일어나겠지’ 생각했는데

기업의 현장실습 적격 여부를 심의하는 제도도 해당 요트업체를 걸러내지 못했다. 전라남도교육청이 배포한 〈2021 직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현장실습 기업은 ‘선도기업’과 ‘참여기업’으로 나뉜다. S요트업체의 경우 상시근로자 수가 적어 참여기업으로 분류됐다. 참여기업은 심의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다. 노무사의 동행점검이 학교 재량에 맡겨져 있고, 시도 교육청이 아닌 교내 기구의 판단만 거치면 된다. 결국 S요트업체는 헐거운 심의 과정을 거쳐 현장실습 참여기업으로 인정되었다.

홍정운 군이 사망에 이르게 된 이유와 구조적 배경이 하나씩 드러나자, 친구들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10월11일에 열린 추모제에서 편지를 읽고, ‘밤하늘의 별을(사고 전 홍 군이 ‘그 노래 불러줘’라고 부탁했던)’을 부른 차은이 학생(18)은 사건 직후에 슬퍼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홍 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제가 정운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쏟아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또 다른 학생은 사고 이후 계획했던 현장실습을 보류했다. “지금은 바다 자체가 미워서 실습을 못 나가겠단 생각이 들어요. 지금 저한테는 정운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먼저예요.”

홍 군과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이재욱 학생(18)은 이번 사고 이전부터 2017년에 발생한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시사IN〉 제533호 ‘죽음이 도사린 현장실습 제도’ 기사 참조)을 알고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해당 사건을 접했던 이 군은 당시 막연히 ‘한 명이 죽었으니까, 이제 저런 일 안 일어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운이가 죽고 난 뒤 보니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그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김 군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히 안 고쳐질 거 같아요. 저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점점 관심을 잃어갈 거 같아요. 그래도 포기는 안 할 거예요.”

여수의 홍정운 군 추모 공간에 마련된 영정사진 앞에 그의 부모인 홍성기씨와 오희숙씨가 서 있다.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여수/글 주하은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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