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 교육계의 시선이 수능 연기 여부에 있던 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취업률이 급락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전국 각지의 특성화고 재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설움’에 맞춰 현상을 보도했다. 여론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누가 특성화고 가랬냐’ ‘공부 못한 네 탓이다’ ‘대졸도 힘든 세상에’···.
은유 작가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성화고 학생은 ‘현장실습생의 죽음’ 같은 기사를 통해서만 불우한 존재로 납작하게 재현된다.” 당시 시위 보도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좀 더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위에 뜻을 같이하던 재학생, 졸업생을 모아 인터뷰했다. 어떤 생각으로 특성화고에 진학하게 되었는지, 현실은 무엇이 달랐는지 당사자가 직접 상황을 전했다.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놀라웠다. 며칠 사이에 댓글 4000여 개가 달렸다. 악플을 덮고도 남을 만한 숫자의 특성화고 출신들이 나타나, 절절하게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들은 자꾸만 ‘지금까지 얘기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말 얘기되지 않았을까? 그렇진 않다. 대표적으로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를 쓴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가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사IN〉도 꾸준히 이 문제를 다뤘다. 최근 배두나의 열연으로 은은한 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 역시, 이미 나온 취재물을 토대로 영화를 구성했다고 전한다. 그런데도 대중이 ‘얘기되지 않았다’고 여기게 되는 까닭은, 아마도 소위 ‘주요’ 언론이라고 불리는 뉴스 헤드라인에 특성화고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아니라 언론의 임무다
〈다음 소희〉의 모티브가 된 ‘전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은 2017년 초 벌어진 일이다. 최근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이 사건은 '묻힐 뻔'했다. 촛불 탄핵 정국에 언론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였다. 그러다 이 사건이 겨우 주목받게 되었다. 당시 나는 대선 주요 후보 5인의 공약을 생애주기별로 분석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이 나라에 ‘청소년’ 정책은 완전히 공백이라는 것을.
정부는 마치 모든 청소년이 수능을 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처럼 여긴다. 교육이 점점 대물림 수단으로 변질되어가는 세계에서, 열악한 노동의 세계로 진입하는 청소년을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 사건이 터지면 교육과 노동 사이 어디쯤에 문제를 두고 서로 책임을 미루며 흐린 눈을 한다. 열악한 특성화고 교육의 책임 주체는 교육부인가? 노동부인가? 그도 아니면 청소년 복지를 맡은 여가부인가? 고 이민호, 고 홍정운... 이후 이어진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도 우리는 어떤 부처의 장관도 책임자로 지목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복잡한 내용에 접근할 능력이 없다.
〈다음 소희〉 후반부에서 형사 유진(배두나)은 회사, 학교, 교육청에 차례로 들어가 죽음의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사건을 파헤칠수록 책임 소재는 자꾸만 위를 향하며 희석되고 만다. 이 부조리를 꾸준히 조명하는 일은 영화가 아니라 언론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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