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지음, 창비 펴냄

병원에 이송 기사라는 직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환자들의 침대를 밀어 검사실로 데려다주고, 검사가 끝나면 병실로 돌려놓는 일을 주로 맡는다. 건축학부 학생인 서연모에게 이 아르바이트를 소개한 이는 “헬스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두 달만 해보면 팔근육이 바로 붙는다”라고 설명한다. 미끄러운 병원 복도로 ‘베드’를 운전할 때마다 서연모는 자신이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혈액세포가 된 기분에 빠지곤 한다.


〈피프티 피플〉은 서울 근교의 한 중소도시에 위치한 대학병원이 배경이지만 의학 소설은 전혀 아니다. 책 제목 그대로 등장인물 50명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소설의 각 장을 이끈다. 이들은 스치듯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소설은 그런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병원 숙직실에 살며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 66세 하계범이 지하 경사로에서 그만 힘이 빠져 미끄러질 뻔하는 순간 젊은 이송 기사가 그를 돕는다. 소설에 명시되지는 않지만 이 젊은이의 이름은 서연모일 테다.


병원 인근의 영화관에서 서연모와 하계범과 그 밖의 〈피프티 피플〉 속 인물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영화를 보는 사이 화재가 난다. 관객들은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기윤의 안내에 따라 음료수를 적신 손수건이나 옷으로 입을 막고 대피한다. 닥터헬기 조종사 최대환은 옥상에 대피한 관객들을 구조한다. 첫 번째로 구조된 어린이들은 오정빈과 정다운이다. 정빈의 아빠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고, 다운의 아빠는 누군가를 해쳐 교도소에 가 있다.


느슨한 연결 사이로 무엇이 흐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마음의 온기가 필요한 날, 정세랑을 읽는 이유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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