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11일 오전 8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차가 폭발했다. 200여 명이 숨진 ‘유럽판 9·11 테러’였다. 스페인 경찰은 폭발물이 담긴 비닐봉지에서 지문을 찾아냈다. FBI는 지문 정보 4400만 개가 담긴 데이터베이스에서 지문이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았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37세 백인 변호사 브랜든 메이필드였다. 그의 아내는 이집트 출신 무슬림 이민자였다. 메이필드도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테러범을 변호하기도 했다. 집을 압수수색해보니 컴퓨터에서 스페인행 항공편과 숙박, 열차 시간표를 검색한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스페인에 갔다는 직접 증거는 없었다.
여러분이 검사라면 이 용의자를 기소하겠는가? 대부분은 기소 의견으로 답할 것이다. 뉴욕 남부지검장(2009~2017년)을 지낸 저자는 달리 말한다. 먼저 ‘검사란 어떤 오류도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오류를 피하기 위한 수사 원칙을 강조한다. ‘열린 자세로 대하라, 예단하지 마라, 넘겨짚지 마라, 속단하지 마라, 편견에 빠지지 마라.’ 한국 검사들도 알지만 지키기 쉽지 않은 원칙이다.
구속까지 당한 브랜든 메이필드는 무죄로 풀려났다. 스페인에서 진범이 잡혔다. 지문 대조 과학의 오류였다. 스페인 항공편 검색 기록은 그의 딸이 방학 숙제를 하느라 찾은 것이었다. 수사 당국은 공개 사과했고 메이필드에게 200만 달러를 배상했다. 연방감찰국은 330쪽짜리 조사보고서를 냈다.
지난 7월12일 정경심 교수 항소심 법정에서 검사가 이 책을 언급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내가 읽은 책과 그 검사가 읽은 책이 과연 같은 책인지 갸우뚱했다. ‘수사-기소-판결-처벌’로 구성된 책에는 브랜든 메이필드 사건처럼 풍부한 사례가 실려 있다.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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