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7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 ‘프란치스꼬의 집’ 주변에서 노인들이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서울 지역 최고기온 34.7℃를 기록한 7월28일 낮 12시30분, 유 아무개씨(84)는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 근처에서 헬스장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손으로 햇볕을 가리며 지나가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전단지를 거절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길을 건너오는 행인이 뜸해진 사이 유씨는 전단지 더미와 함께 바닥에 놓아둔 작은 물통을 집어 들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재빨리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전단지 묶음을 손에 든 채 유씨 할머니는 행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헬스장입니다.”

뜨거운 여름이다. 휴대전화에는 매일 수차례 안전 안내 문자가 알림음을 낸다. 도로 복사열이 이글거리는 도심에는 인적이 드물고 냉방 수요 급증으로 인해 전력소비량이 연일 최고치를 찍고 있다. 모두가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 냉방시설이 갖춰진 실내로 들어가던 ‘열돔 한반도’의 7월 하순, 도심의 야외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이들은 다름 아닌 폭염에 가장 취약한 노인들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온열질환을 인지하는 능력도 약해지기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은 어린이, 실외 작업자, 만성질환자 등과 함께 대표적인 ‘폭염 취약계층’으로 꼽힌다. 올해 5월20일부터 7월27일까지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기록된 온열질환자 810명 중 303명,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 11명 중 5명이 60대 이상이었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노인들이 폭염 아래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경우, 생계 때문이다. 그늘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 속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유씨 할머니는 연신 “괜찮다”라고 말했다. “덥다고 생각하면 못 버텨. 그러려니 해야지.” 유씨가 매달 받는 기초연금은 30만원. 그 돈으로 세금과 병원비까지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노인네가 일할 데가 어디 있나.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걸 감사히 생각해야지.”

30℃가 넘는 폭염 속에서 한 노인이 수레를 옆에 두고 앉아 있다. ⓒ시사IN 주하은

7월23일 오전 10시께, 배 아무개씨(가명·87)는 서울 종암동 도로 한쪽에 세워둔 자신의 리어카 옆에서 땀을 닦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시원한 편이야. 어제는 너무 더워서 나오지도 못했어. 더운데 함부로 일하면 약값이 더 들어.” 이날 서울의 평균기온은 31.2℃, 최고기온은 35.8℃를 기록했다.

인근 고물상에는 유모차부터 대형 리어카까지, 폭염 속 땡볕에서 폐지를 주워 각자의 수레에 실어 끌고 온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두 노인이었다. 김 아무개씨(80)가 모은 폐지를 끌고 저울 위로 올라가자 바늘이 150㎏을 가리켰다. 할머니가 내려오자 45㎏, 리어카를 뒤로 빼자 15㎏이 줄었다. 김씨가 모아온 폐지는 총 90㎏, 자기 몸무게의 두 배다. “이제 시작이지 뭐. 하루에 네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해.” 열기가 달아오르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김씨는 이날 두 번째 생계 여정에 나섰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도심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노인들도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최 아무개씨(72)는 하루의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보낸다. 요일별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고, 거리에 앉아 배식을 기다린다. 더위를 피하는 시간은 다음 끼니 급식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탈 때뿐이다. 7월26일 최씨가 점심을 해결한 곳은 서울 제기동에 위치한 노인종합복지시설 ‘프란치스꼬의 집’이었다. 이곳 급식소는 200원에 한 끼를 제공한다. 주변 길가 그늘진 곳은 모두 최씨처럼 식사를 기다리는 노인들 차지가 됐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야. 그래도 돌아다니면 굶어 죽진 않아.”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은 하루 350여 명에 이른다.

젊은 시절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는 그는 현재 수원의 한 여관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쪽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한 달 30만원짜리 여관의 ‘달방’에 짐을 풀었다. 최씨의 유일한 수입원인 기초연금도 한 달에 30만원이다. 방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여관방에 에어컨은 달려 있다. 달방 비용 안에 전기요금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식사를 해결할 수 없다. 화재위험 때문에 여관방에서는 취사가 금지돼 있다. 여관방에 머무르면 폭염은 피할 수 있되 밥을 굶어야 한다. 아무리 기온이 올라가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이유다. 최씨는 하루 세끼를 모두 종교단체에 의지해 해결한다.

ⓒ시사IN 이명익
‘프란치스꼬의 집’ 급식소에서는 200원에 한 끼를 제공한다. ⓒ시사IN 이명익

“요즘은 정말 갈 데가 없다”

소득, 밥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노인들은 여름철 주로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여름을 났다. 더위를 피하면서도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사랑방이었던 그곳이, 현재 코로나19 4차 대유행 탓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나마 문을 연 곳도 제한적으로만 운영된다. 문화·체육·복지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되고, 운영시간도 줄어들었다.

7월24일 오후, 종로3가역 환승 통로에서 노인 15명가량이 모여 있었다. 계단에 옹기종기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깥의 땡볕을 피해 역사 내부에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벽에 ‘통행에 방해가 되니 계단에 앉아 있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형태의 모임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지난주엔 계단에 못 앉게 하더니, 오늘은 아무도 뭐라 안 하네.” 장 아무개씨(77)가 계단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 아무개씨(81)는 장씨의 농담에 맞장구를 쳤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사실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다. 둘 사이 공통점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이곳에 온 또래 노인이라는 것뿐이다. 김씨가 원래 여름을 나던 곳은 동네 복지관이었다. “원래 복지관에서 농악도 배우고 사람도 만나고 했지. 그런데 이젠 어지간한 데는 다 닫았잖아. 작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여기에 온 것 같아.” 두 노인은 “요즘은 정말 갈 데가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7월27일 오전 10시, 서울 제기동의 무료 급식소 ‘프란치스꼬의 집’ 앞 길가에 어김없이 수원에서 올라온 최씨가 쭈그리고 앉았다. 7월28일 오전 9시, 배씨는 리어카를 끌고 다시 종암동으로 향했다. 전단지를 돌리는 유씨, 자기 몸무게 두 배 무게의 폐지를 싣고 하루에 네 번 고물상에 들르는 김씨도,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 종로3가역에 앉아 있던 장씨·김씨도 모두 바깥 어디론가 걸음을 옮길 것이다. 오늘도 노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폭염을 뚫고 집 밖으로 나선다.

기자명 주하은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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