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조합원이었다. 추모 기간이 끝나고 24일간 노동조합은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안타까운 죽음 뒤에 존재했던 부당함과 불합리를 마주할 때마다 노동조합조차 고인의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 고인이 특정 조직 소속이란 이야기에 이미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해당 조직 소속 조합원의 요청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하고, 노조에 신고를 권하는 자석을 만들어 해당 조직에 나눠준 일, 2019년 1월 이후 잇달아 해당 조직 소속 조합원들이 퇴사한 일, 간담회를 통해 청취한 내용을 인사팀에 문의한 일 등이었다. 노동조합의 단편적인 노력들이 한 사람의 죽음을 막지 못한 상황에서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네이버뿐 아니라 ‘벤처 창업 신화’의 문제
살아남은 자가 느끼는 죄책감의 무게를 고인이 생전에 겪었을 고통의 무게에 감히 비할 수 없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은 빚진 마음을 안고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수행해나가는 중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 남아 있는 동료들이 고통받지 않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고인에게 주어진 과중한 업무, 부당한 지시, 모멸감을 느낄 법한 임원의 언행 등이 밝혀졌다. 두 차례에 걸쳐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매번 네이버 구성원뿐만 아니라 IT 업계 노동자들이 함께 분노하고, 아파했다.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IT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업주의 말처럼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 중 하나는 네이버라는 거대 IT 업체의 기업문화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비단 네이버뿐 아니라 ‘벤처 창업 신화’에 도취되어 기본적 노동인권조차 도외시해온 IT 업계 조직 문화 전반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고 이를 위해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노사 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노동자들과 경영진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단적인 예가 노동조합이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힌 날 회사가 외부기관에 맡긴 조사 결과와 징계 결과를 공지했고, 이에 직원 수백 명이 댓글로 징계 결과에 공감할 수 없다며 반발한 일이다. 창업주도 한두 명 징계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상향 평가(상급자에 대한 인사 평가), 직접적인 문제 제기 등으로 충분히 상황을 인식하고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경영진이 잘못된 판단으로 가해자를 승진시키고,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온 데 대해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노동조합은 자체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피케팅, 온라인 집회를 통해 의견을 표명해왔다. 창업주가 이야기하는 ‘신뢰의 회복’은 회사가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의 판단에 맡기는 대신, 당사자인 직원들과 함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동료들이 기본적인 노동인권을 보장받으며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함께 마지막으로 고인께 차마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하고 싶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곳에서 부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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