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정현

ESG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를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국민연금공단도 ESG를 외친다. 그런데 ESG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 자명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까다로운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이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를 만나게 된다.

ESG는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의 약자다. 어떤 기업에 투자할지 선택할 때, 수익뿐 아니라 해당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지배구조까지 고려하자는 것이다. 2018년 1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은 ESG 돌풍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번영하려면, 모든 기업은 훌륭한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기업인이 수익 외에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1953년에 처음 나왔다. 이후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아이디어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발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ESG는 CSR과 어떻게 다른가?

“예전에 CSR이 한창 붐을 일으키다 가라앉았다. 투자자들이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CSR은 자동차 회사가 복지재단에 기부하는 식으로 이해됐다. 기업 이미지는 좋아지겠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내 돈 가지고 뭐 하는 거냐’라고 비판할 수 있다. ESG가 CSR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뭐냐면, 논의를 투자자들이 끌고 간다는 거다. 이제 투자자들은 기업의 핵심역량을 ESG에 결부시키려 한다. 자동차 회사라면 기부하는 대신 친환경차를 만들라고 요구한다. 그쪽이 자신들의 장기적인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우종 서울대 교수(경영학)의 말이다.

4월13일 대학생들이 미얀마 가스전 사업대금 지급 보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ESG가 작동한 한 사례를 보자. 지난 1월 네덜란드 연기금 자산운용사(APG)는 자신들이 보유한 한국전력(한전)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투자를 뺐다’는 이야기다. 한전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새로운 석탄화력 발전소를 세우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석탄을 태우면 온실가스(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박유경 APG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 총괄이사의 말을 들어보자. “네덜란드에서는 월급의 20%를 연금에 쏟아붓는다. 자신들의 연금보험료가 (APG를 통해) 투자된 기업이 기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거나 인권침해에 가담하면 난리가 난다. 방송 뉴스에 나오고 APG에 메일이 수백 통씩 쏟아진다. ‘우리 돈이 들어간 투자가 공동체의 미래를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압력이 엄청나다. ‘ESG를 훼손하는 기업은 오래갈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APG에 돈을 맡기는 고객 중 최대 규모인 네덜란드 공무원연금펀드(ABP)는 자신들의 돈을 투자받은 기업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줄이기를 원한다. 박유경 이사는 “석탄화력 발전소를 새로 짓는 건 개발도상국밖에는 없다. 한국 기업들이 도대체 어쩌려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답답해했다.

이처럼 외국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ESG를 투자 결정에 반영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2018년, 유럽연합(EU)은 이미 5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ESG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했다. 기후위기 해결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ESG는 아직까지 투자금을 넣고 빼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등급’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APG가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을 이유로 투자를 철회한 한국전력의 국내 ESG 등급은 2020년 기준 A(환경 B+, 사회 A, 지배구조 A)로 상당히 우량한 편이다(한국기업지배구조원). APG는 투자 철회까지 단행하는 사안(탄소배출)이 한국의 ESG 평가기관에서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 것이다. 글로벌 상위권인 한국전력의 탄소배출량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이런 결과(A)가 나오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측은 “탄소배출의 절대량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는 매출 증가에 비해 탄소배출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추세를 중심으로 보고 있다. 즉 매출이 많이 늘었는데 탄소배출이 그만큼 늘지 않았다면 감축 노력을 했다고 간주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평가방식은 거대 기업에 행운일 수 있지만, 지구에도 좋은 일인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국내 대기업 중 탄소배출량 1위인 포스코의 ESG 등급 역시 2020년 기준으로 A이다(한국기업지배구조원).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경영자가 이른바 ‘사회적 목적’을 위해 돈을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EPA

같은 평가에서 A+를 기록한 포스코의 자회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4대 가스전 중 하나인 슈웨 가스전의 최대 주주(51%)다. 운영권도 갖고 있다. 슈웨 가스전의 수익금은 55%가 미얀마 정부에, 45%는 가스전 지분을 가진 여러 회사들(그중 하나는 15% 지분을 가진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에 배분된다.

미얀마 쿠데타가 6개월째에 접어들어 900명 넘게 사망한 와중에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정부 및 파트너사인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MOGE)’에 수익금 지급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에 맞서 출범한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가스전 수익금을 ‘제3의 계좌’에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시 미얀마에서 야다나 가스전 사업을 하고 있는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과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은 지난 5월, 자신들의 가스전 사업 중 하나인 가스운송기업이 미얀마 군부 측에 지급해온 배당을 4월1일부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토탈과 셰브론은 이 가스운송기업의 지분을 각각 31.2%, 28.3%씩 갖고 있다. 두 회사의 발표 이후 포스코인터내셔널도 비슷한 조치를 하려고 했다. 슈웨 가스전과 관련된 가스운송기업의 경영진에게 ‘배당을 중단하자’고 주주로서 요청한 것이다. 이 가스운송기업의 최대주주는 중국 석유천연가스공사(CNPC)인데, 포스코인터내셔널 역시 25% 지분을 가진 주주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가스운송기업에 주주로서 요청한 배당 중단을 정작 자사가 운영권을 가진 슈웨 가스전엔 적용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계약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가스전 수익금 지급 거부는 중대한 계약 위반행위다. 계약 불이행 시 광권과 운영권 박탈이 확실시된다.”

ESG와 관련해서는 미얀마에서 다양한 관련 활동을 펼쳐왔다고 설명했다. “미얀마에서 어린이 안면기형 수술, 가스전 프로젝트 지역에서 교육·인프라 지원, 태양광발전 시스템 지원 등을 시행해왔다. 최근에도 난민 지원을 위한 특별기부금 출연, 지역 주민을 위한 쿡스토브(친환경 조리도구) 지원, 교민들을 위한 산소호흡기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슈웨 가스전의 수익금이 학살 주범(미얀마 군부)에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ESG와 관련 없는 것으로 간주하려는 것이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의 입장이다. “현 상황과 ESG 경영을 결부시키기는 어렵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지난해 영업이익 4745억원 중 3056억원(64.4%)이 슈웨 가스전에서 나왔다. 직원 1200여 명인 이 회사 영업이익의 절반이 넘게 걸린 이 사업은 ESG와 이윤이 부딪치는 결정적 순간에 기업의 선택을 보여준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에 대한 수익금 지급’과 관련해서 ESG를 따질 필요가 있는 기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포스코인터내셔널 모회사인 포스코의 최대주주, 국민연금공단(연금공단)이다. 연금공단도 어떤 기업에 투자할지 결정할 때 ESG를 반영한다. 그래서 공단 측에 ‘포스코의 투자자로서 미얀마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투자에 (ESG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 미얀마 문제로 포스코에 관여하고 있는지 여부는 공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연금공단은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 ‘이슈’가 생기면 대화를 진행하는데, 이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다.

그러나 연금공단이 미얀마 상황과 관련해서 포스코에 투자한 돈을 회수할 것 같지는 않다. 연금공단 측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연금공단엔 6가지 투자 원칙(수익성·안정성·공공성·유동성·지속가능성·운용독립성)이 있다. 그중 (미얀마 상황이나) ESG와 관련되는 원칙은 ‘지속가능성(연금공단의 투자를 받은 기업이 윤리적이고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고 있는가?)이다. 그런데 지속가능성 역시 투자 원칙 중 하나이지 최고는 아니다. 연금공단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보험료로 들어온 돈을 잘 운용해서 수급자들에게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재무성과(연금공단의 투자수익)와 상관없이 ESG만 고려한다면 연금 관리를 맡은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연금공단 관계자).”

투자수익과 ESG 사이의 상당한 긴장 관계

연금공단은 가입자들의 돈을 맡아 운용하고 일정한 기간 뒤엔 수익금을 되돌려줘야 하는 일종의 투자펀드다. 연금공단에서도 투자수익과 ESG 사이에 상당한 긴장관계가 잠복해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20년 6월, 유진 스칼리아 당시 노동장관은 직장인들의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고용주들에게 “사회적 또는 정치적 목적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 때문에 수익을 희생시키면 불법”이라며 관련 규제를 추진했다. 후임 바이든 정부는 이 계획을 폐기했다.

고급 생수 ‘에비앙’으로 유명한 프랑스 기업 다농은 ESG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상장기업 중 처음으로 ‘탄소 비용(1t당 35유로)’을 회계에 반영했다. 탄소 비용을 빼고 주당순이익을 산정한 것이다. 매우 ESG 친화적인 경영이지만 주주들로서는 그만큼 배당금이 작아질 수 있으니 짜증을 낼 만하다(경영자는 장기적으로는 탄소 비용이 낮아져 주당순이익이 늘어날 거라고 설득했다). 이 회사 CEO 에마뉘엘 파뷔르는 지난 3월 해임되었다.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이 코로나19 기간의 실적이 악화되자 파뷔르를 공격한 것이다.

ESG 역시 해당 기업의 수익이나 주주 이익을 해치게(?) 되는 지점에서 멈출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쯤에서 심각하고 논쟁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누구를 위해 운영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CSR이나 ESG 같은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답변을 제시했다. 1970년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증가시키는 것이다’라는 칼럼에서 프리드먼은 경영자가 이른바 ‘사회적 목적’을 위해 돈을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중을 위해 가격 인상을 자제한다거나 환경오염을 줄인답시고 법으로 정해져 있는 수준 이상으로 시설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기업의 목표는 당연히 ‘이윤 증가’이기 때문이다.

사실 ESG 측에서도 기업에 수익성이나 이윤을 완전히 무시하라고 강제하지는 않는다. 문정빈 고려대 교수(경영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SG를 말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윤을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예컨대 ‘계몽적 주주 가치(Enlightened Shareholder Value)’ 관점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본다. ‘파이 키우기(Grow the Pie)’ 이론은 한발 더 나아간다. 주주 가치를 위해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다 보면 주주 가치가 부산물로 따라온다고 주장한다.”

ESG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프랑스 기업 다농의 CEO 에마뉘엘 파뷔르. 그는 지난 3월 해임되었다. ⓒAP Photo

ESG가 기업의 수익성에도 이롭다는 주장이다. 나름대로의 실제 사례도 있다. 런던비즈니스스쿨 재무학 교수인 앨릭스 에드먼스의 〈ESG 파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이 1984년부터 2011년까지 28년 동안 매년 평균 2.3~3.8%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투자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고객 만족도나 생태 효율성이 높을수록, 혹은 이해관계자 중심의 정책을 채택한 기업일수록 장기적으로 주식 수익률이 높았다.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는 주주(기업의 주인으로 간주된다) 외에도 노동자, 납품업체, 소비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주주만을 위해 수익성과 주가를 높이기보다는 다른 이해관계자까지 배려하는 쪽이 기업에도 장기적으로 이롭다는 이야기다. 담론의 이 지점에서 ESG와 기업의 수익성은 행복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런 조화가 실제 세계에서도 언제나 가능한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농 전 CEO 에마뉘엘 파뷔르의 경우에서 봤듯이, 경영진의 이해관계자 배려가 해당 기업의 수익성 및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주가에 대한 ESG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해당 경영자가 쫓겨날 수도 있다. 단기매매로 차익을 노리기 쉬운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 전망에 큰 관심이 없다.

또한 주주 이외의 이해관계자들까지 폭넓게 포함시킨 ESG 논의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ESG를 기준으로 하는 기업평가가 굉장히 부실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ESG 평가기관들은 ‘오너’로 불리는 지배주주가 없으면(즉, 이사회 운영에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적은 ‘주인 없는 회사’라면), ‘G(기업지배구조)’ 점수를 높게 준다.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라는 것을 설치해도 G 점수가 올라간다. 그러나 지배주주가 없거나 ESG 위원회를 뒀다고 해서 해당 기업이 ESG의 당초 목적과 합치하도록 경영한다는 보장은 없다.

“ESG는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ESG 위원회를 설치한 네이버에 대한 최근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 86억원 넘는 임금을 체불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했으며 임산부에게 초과근무를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네이버가 ‘ESG 우등생’으로 호명되는 기업임을 고려하면, ‘S(사회)’의 의미 역시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장은 “회사가 지표만 따려고 한다. 족집게 과외를 붙여서 시험만 잘 치는 거다. 그동안 S 점수가 잘 나왔다는데, 정작 노동조합과는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상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ESG는 심하게 말하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회사법상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환경이나 사회, 건강한 지배구조를 위해 기업이 있는 게 아니다. 주주 이익에 반하는 사회적 책임은 회사법의 틀로 들어올 수 없다.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이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아직 밀턴 프리드먼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ESG 위원회를 설치한 네이버에 대한 최근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 임금 체불, 임산부 초과근무 등이 드러났다. 위는 성남시에 있는 네이버 본사. ⓒ연합뉴스

당초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최근까지는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관점이 가장 우세했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라 불리는 이 생각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불평등 심화와 기후위기는 물론 주기적으로 돌출하는 금융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성찰에서 CSR이나 ESG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그러나 ESG에도 한계가 많다는 점이 드러났다. ESG는 사회에 이런저런 긍정적 역할을 하라고 기업에 권유하지만 이 방법으로도 기업의 수익성이나 주주이익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이런 와중에도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과거에 ‘공적인 영역’으로 분류되었던 부문에까지 기업의 영향력이 침투해 들어간다. 그렇다면 기업에게 사회에 긍정적인 이런저런 역할을 하라고 권하기보다 차라리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최소 강령’을 부여하는 쪽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런 시도 중 하나가 바로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이다.

이행원칙에 따르면, 기업은 폭력이나 착취 등 인권침해의 원인을 제공하면 안 된다. 만약 기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권침해의 원인을 제공했다면(저개발국에 외주를 준 상품이 아동노동으로 마무리되는 경우), 그 위험을 감지한 즉시 실제 상황을 조사해서 피해자를 구제하며 그 결과를 밝혀야 한다.

이상수 교수는 “이행원칙으로 대표되는 ‘인권경영’은 뭉뚱그려서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왔다. ‘네가(기업이) 나무를 100그루 심었든, 도서관을 지어줬든 상관 안 해. 네가 어디서 어떤 선행을 했든지 간에 관심 없어. 그러나 네가 어린아이의 뺨을 때릴 권리가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하자. 너는 남이 때리는 데 관여할 권리도 없어’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기업에게 최소한의 기준을 주고 그 외의 영역은 알아서 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이나 ESG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의 투명성 요건만 제대로 강화되어도 ESG나 CSR의 목표 중 상당 부분을 이룰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회계 연구자인 이우종 교수는 “ESG 혹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핵심은 ‘얼마나 깨끗한 정보가 잘 흘러다니는가’이다”라고 말했다. “기업이 납품업체를 장기적으로 거래하며 공생할 관계로 본다면, 그리고 자기 기업 역시 납품업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정보를 공개할 수 있고 협력이 가능해진다. 공장이 있는 지역사회에 유해물질 정보를 제공하거나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재무적 상황을 진솔하게 알려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상수 교수는 기업의 공적 성격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존이나 구글을 사적 조직이라 볼 수 있나? 정부보다 힘이 세고 덩치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이 총수의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미 주주 구성으로도 국민연금이 대주주다. 수많은 동료 시민이 삼성의 영향을 받는다. 기업 스스로가 점점 공적인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가 점점 더 낡은 질문이 되어가고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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