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교섭권도 없는 노조가 얼마나 오래갈까?”

최근 20~30대 사무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MZ 세대 노조 설립’을 두고, 적지 않은 노조 활동가들이 던진 질문이다. 노조는 만들었는데 교섭은 하기 어렵다고? 무슨 말인가?

법상 노동조합은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하나의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 있을 경우 단체교섭 방법에 관한 것인데, 노동법에서는 노조 쪽의 교섭창구를 하나로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다. 법에서는 이를 ‘교섭창구단일화제도’라고 한다. 그 방법은 첫째, 복수의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하거나 함께 교섭대표단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 이러한 자율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에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두 번째 방안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 설립된 사무직 노조가 교섭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도 조합원 규모에서 과반수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방법도 있다. 노동위원회는 노동조건과 고용형태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교섭단위 분리를 결정할 수 있는데, 그 결정을 한 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 4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기각했다. 그렇다면 사무직 노조가 단체교섭을 할 방법은 없을까?

‘결사의 자유’ 아닌 ‘경쟁과 분열의 자유’

이 점에서 현행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용자가 교섭 대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기로 동의한 경우에는 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즉 사용자가 지지하는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사용자는 창구단일화 대신 복수의 노조와 각각 교섭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사용자에게 교섭 상대방 선택권을 부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둘째, 과반수 노조가 되기 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조 A가 조합원 100명, 노조 B가 조합원 101명을 조직한 경우, 노조 B가 과반수 노조가 되어 교섭권을 갖는다. 이때 노조 A가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무엇일까? 노조 B로부터 조합원 1명을 ‘빼오는’ 것이다. 비조합원 2명을 더 조직하는 것보다 빠른 선택지가 된다. 이 제도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설립 허용이 ‘결사의 자유’ 확대가 아니라 ‘노조 간 경쟁과 분열의 자유’ 확대로 귀결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셋째, 법에서는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소수 노조 또는 그 조합원의 이해를 공정하게 대표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법원이 그 ‘공정대표 의무’를 협소하게 해석해 교섭대표권을 갖지 못한 노조의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이런 이유로 현행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용자에게 모든 노조와의 개별교섭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폐지해야 할 것은 노조의 대표 범위를 좁히고 단결권 침해를 부추기는 현행 제도이지 교섭창구 단일화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조를 ‘조합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조직이라고 본다면 굳이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를 해당 기업은 물론 산업·업종 내에서 조합원 여부를 떠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임금·노동조건을 만드는 입법자로 본다면 그 방안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사무직 노조의 단체교섭권은 소수 노조에 대한 개별교섭 허용보다는 노조 대표성의 확장을 통해 부여되어야 한다. 기업 내에서는 기존 노조와 함께 공동교섭단을 꾸리는 방식이, 기업 횡단적으로는 사무직으로 조직된 노조들이 연대해 동일·유사 직종에 적용할 통일적인 노동조건을 마련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때 노동관계법은 적어도 이러한 노력을 저해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기자명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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