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앞둔 디무두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최정규 변호사(맨 왼쪽)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정규 제공

스리랑카 노동자 디무두 누완 씨(30)가 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2018년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경찰은 근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그가 날린 풍등 때문에 화재가 일어났다고 봤다. 휘발유 탱크 옆 잔디에 떨어진 풍등 하나로만 17시간 동안 지속된 화재와 110억원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변호사들이 나섰다. 1심에서 디무두 씨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도 같았다. 상고를 포기하고 출국하는 날 그를 배웅한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가 사건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오늘 출국하는 날인데 그동안 많이 도와주고 같이 있었던 여러분들 너무 고맙습니다. 잘못된 거 있으면 미안합니다. 사랑해요.” 지난 6월30일 디무두 누완 씨가 출국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를 보며 2018년 10월8일부터 시작된 그와의 인연, 2년8개월에 걸친 수사와 재판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를 비롯한 변호사 6명(서채완·신하나·이경재·조영신·조영관)은 디무두 씨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의기투합해 그를 돕고자 했던 건, 고양저유소 화재 폭발 사건의 책임을 풍등 날린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시민이 품은 의문이기도 했다.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명제가 참인 것처럼, ‘자기가 잘못한 부분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제 또한 참이다. 그런데 이주민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가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에선 유독 첫 번째 명제만 강조된다. 두 번째 명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걸 많이 목격한다. 디무두 씨 또한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다. 기우는 현실이 되었다.

‘거짓말하지 말라.’ 수사관이 피의자에게 던질 수 있는 말이다. 피의자가 이전에 한 말, 다른 목격자의 진술, 객관적 증거와 모순되면 수사관의 이런 말은 용인될 여지가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사관이 자기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복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는 건 허용될 수 있을까? 비단 디무두 씨뿐만 아니라 시민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다.

“터널공사 현장 근처에 저유소가 있는 것을 알았죠?” “저유소 지상 잔디에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도 그냥 돌아섰죠?” 경찰 4차 조사 당시 이 질문에 “네”라고 답변하지 않은 그를 향해, 고양경찰서 수사팀장은 무려 123회나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현행 형사사법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긴급체포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아 디무두 씨는 일산동부경찰서에서 풀려났다. 당시 경찰은 그를 포토라인에 세워 얼굴을 노출시켰다. 이름과 국적, 나이 또한 그대로 공표되는 등 개인정보는 전혀 보호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과도한 피의자 신원 노출에 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경찰은 ‘중실화죄’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중실화죄’가 아닌 ‘실화죄’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형량 차이가 크다. 손해가 110억원에 이르는 큰불이 났음에도 검찰이 ‘중’이라는 단어를 뺀 건 형법상 실화죄와 중실화죄가 화재의 크기가 아닌 잘못의 크기로 결정되기 때문이다(중실화는 중대한 과실로 화재를 일으켰다는 혐의로 3년 이하 금고형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 실화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이 적용된다). 검찰은 디무두 씨가 화재 폭발 책임을 단독으로 질 만큼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과 달리 검찰은 공정했다’는 아름다운 결론에 이르기에는 아직 따져야 할 것이 남았다.

그가 날린 풍등은 지하 저유소로 직행하지 않았다. 저유소에서 약 11m 떨어진 잔디밭에 낙하했다. 풍등에 남은 불씨가 11m를 이동해 지하 저유소까지 가서 폭발했던 건 왜일까? 전쟁이 나도 폭발하지 않도록 설계되고 철저히 관리되었어야 할 저유소가 풍등 불씨 하나로 폭발했다. 저유소의 관리 부실이었다. 삼풍백화점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 부실한 관리와 관리감독 소홀 등 여러 사람의 과실이 합쳐진 사건에서 검찰은 이들을 공범으로 재판에 넘겼다. 이와 달리 ‘저유소 풍등 사건’의 책임은 디무두 씨에게만 전가되었다.

2019년 6월28일 검찰은 저유소를 부실하게 관리한 책임자 두 명과 회사를 송유안전관리법 위반·위험물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근로감독관을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와 별개로 디무두 씨만 실화죄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2019년 12월5일 책임자 두 명에게 벌금 200만원, 근로감독관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020년 12월23일 디무두 씨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1심 재판은 저유소를 부실하게 관리한 책임자들보다 1년이나 더 길게 진행되었고, 5배에 이르는 벌금을 선고받았다.

2018년 10월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서 객관의무를 지고 있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자료뿐만 아니라 유리한 자료 또한 법원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검찰은 디무두 재판에서 저유소 관리 부실 관련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법원의 제출명령에도 응하지 않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후에야 일부 제출했다.

1심 재판에서 수사 당시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화재 발생 전날 저유소의 석유 입하량이 크게 늘어났다. 환기구로 유증기가 밀도 높게 방출되었다. 풍등의 불씨가 아니라 낙뢰·정전기 등으로도 폭발에 이를 위험 상태였다. 1심 판사는 판결문에 이런 표현을 반복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오비이락 같은 처벌을 막기 위해 형법 교과서에는 여러 이론이 쓰여 있다.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 자기책임 원칙. 이에 입각해 지상에서 일어난 잔디 화재의 책임을 뛰어넘어 저유소 지하에서 벌어진 폭발에 대한 책임을 디무두 씨에게 물을 수 없다고 변호인들은 주장했다. 무죄라는 뜻이었다. 1심 판사는 이를 배척했다. 검찰 구형대로 벌금 1000만원에서 단 1원도 감경시키지 않은 1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굳이 판결문 양형 이유에 그의 불운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표현은 왜 기재한 것일까? 이주노동자든 누구든 법원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을 뿐, 판사의 어설픈 동정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더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경찰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을 123회나 날릴 때 수사를 거부했어야 했다. 검찰이 실화 혐의의 공동정범이 아니라 디무두 씨의 단독 범행으로 기소했을 때 중실화 혐의를 면했다고 자축할 게 아니었다. 왜 모든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느냐고 더 소리 높여 외쳤어야 했다. 1·2심 결과에 실망하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불량 판결문’을 상고심에서는 뒤집을 수 있다고 그가 확신을 갖게 하고 최종심의 판단을 받을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디무두 씨를 떠나보낸 뒤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에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잘못된 거 있으면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확인하니 더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한국에서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주어 너무 고맙습니다. 잘못된 거 있으면 미안합니다. 사랑해요.”

기자명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