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쉽게 생각한 취재였다.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가 진행하는 ‘김 양식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에 동행하는 일정이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노무사, 의사,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이주노동자들과도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취재원과 전문가가 모두 섭외됐으니 잘 듣고 많이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역시나 오판이었다. 수습도 떼지 못한 햇병아리 기자에게 만만한 취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주노동자들과의 인터뷰는 통역을 거쳐야 했다. 결혼 이주여성인 통역분께서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셨는지, 답변 중 통역 과정에서 빠진 것은 없는지 눈치를 살펴야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난감했던 점은 ‘깜짝 놀랄 만한’ 부조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꽤 높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부상 역시 ‘몸 쓰는 직업’이라면 종종 겪을 법한 수준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사진기자 선배께 ‘이렇게 멀리 출장을 와서 기사를 못 쓰는 경우도 있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던 중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보고 이제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산재보험법 제6조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할 권리는, 일하다 다치면 치료를 받고 다시 일터로 복귀할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소득이 높아도, 부상이 심하지 않아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고흥에서 만난 김 양식 이주노동자들은 산재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법률이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누군가를 사각지대에 위치시킨다면 바뀔 필요가 있다.
포털에 기사가 공개된 이후, ‘저 외국인 노동자들 돈 잘 번다.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종류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직접 그들의 상처를 보고, 목소리를 들은 기자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얼마를 버는지’는 누군가에게서 보편적 권리를 빼앗을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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