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다른 사건, 다른 재판인데 판결문은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것만 같다.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청구 원인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어떤 증거가 무슨 이유로 부족하다는 걸까. 한 줄짜리 판결에 허탈감이 밀려오지만 감히 높은 법대 위의 판사님께 따져 물을 수는 없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44)가 저서 〈불량 판결문〉에서 다룬 한 사례다. “이 문장이 반복되는 판결문을 자주 봐요. 의뢰인들이 제일 억울해하는 부분은 패소했다는 사실이 아니에요. ‘내가 뭘 좀 납득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판결에 성의가 있고, 납득이 되면 그 싸움을 그만할 텐데 이런 판결문을 받고 어떻게 그만둘 수 있냐’라는 거죠.”

대한민국 헌법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지만 권리의 눈으로 법원을 바라보는 경험은 생소하다. 법관은 절대적인 심판자로, 법원은 시시비비를 가리고 죄를 벌하는 정의의 장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가 존중해야 할 건 사법부가 선고하는 판결이지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서비스가 아니잖아요. 사법부의 독립권은 법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각을 바꾸면 법원도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재판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 한 시간씩 재판 순서를 기다리고, 그렇게 기다려서 고작 3분 재판을 받는 일이 더는 당연해 보이지 않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에서 개업 변호사이자 공익 변호사로, 그가 법조계에서 보낸 20년 남짓한 세월은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판례를 봐서는 패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상식의 편에서 보면 옳다고 판단되는 사건 앞에서 그는 늘 물러서지 않았다. 염주들에게 죗값을 묻는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이 그랬고, 외국인노동자가 날린 풍등 하나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 따지는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이 그랬고, 불완전한 진단서를 근거로 피해를 산정한 배상이 정당한지 묻는 ‘세월호 생존자 국가배상 소송’이 그렇다.

하나같이 사회적 약자들이 거는 싸움이다.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기에, 판사를 설득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판례는 힘 있는 자들의 논리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37쪽)’라고 최 변호사는 설명한다. 그가 일명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로 불리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일반 시민들”이라고 답했다. “법정에 가면 판사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존중을 넘어서 과도하게 권위에 억눌려 있는 분들을 많이 봐요. 그런 분들이 ‘여기는 내 법정이다. 이 법정의 주인은 나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어요. 내 사건이 없으면 결국 법원도 판사도 존재할 수 없는 거잖아요.”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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