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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란 것’이 크게 두 가지 용도로 활용되어왔습니다. 하나는 국가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이념입니다. 한국의 시민들 대다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국가·사회를 재조직하는 ‘역사적 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1987년의 시민항쟁 이후 본격화된 이 운동의 이념적 지침은 자유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걸출한 아이디어 모음이거든요. 예컨대 삼권분립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을 행정·입법·사법으로 분리해 서로 싸우게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죠. 법치주의 역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국가권력의 침해를 통제하기 위한 아이디어입니다. 이 운동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란 것’의 또 다른 용도는 정치적 선전선동의 수단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전두환은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명분 삼았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흔히 ‘극우’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나서곤 했습니다. 이분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양심의 자유’ ‘삼권분립’ ‘법치주의’ 같은 본래의 이념적 원리들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6월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라며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자유를 뺀 민주주의’가 정말 뭔지 모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인민민주주의’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이 표방했거나 표방 중인 체제로, 공산당(노동당)이 인민 전체의 ‘진정한’ 이익을 ‘알고’ 대변한다는 사고방식을 주춧돌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노동당)이 법률 위에서 사실상 선거 없이 영구 집권하며 삼권분립도 법치주의도 대의제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체제를 시행 중이거나 앞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명망 높은 자유주의 매체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조사기관으로부터도 ‘완전한 민주국가’로 불릴 정도의 나라입니다. 저는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장면을 보며 ‘저 이야기 또 나오네’ 유의 지루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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