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4·7 보궐선거는 5년 만에 등장한 변곡점이다.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판세가 뒤진 채로 출발하는 첫 선거다. 촛불집회 이후 민주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전부 크게 이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압도적인 연승 가도였다. 이번엔 구도가 반대로 잡혔다. 서울에서는 ‘안정적 국정운영 위해 여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33%, ‘국정운영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59%다(3월20~21일 방송 3사 공동 여론조사. 이하 모든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3월 초만 해도 이 정도 차이는 아니었다. 3월8~9일 여론조사(KBS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안정적 국정운영 위해 여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40%, ‘국정운영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49%다. 불과 열흘 남짓 동안 정권심판론이 10%포인트 치솟고 국정안정론이 7%포인트 빠졌다. 정권심판론과 국정안정론의 비율은 선거 결과를 비교적 잘 예측하는 선행지표다. 이것은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를 야권 단일화 컨벤션 효과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의미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 자체가 나빠졌다.

3월의 최대 이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정보 이용 투기 사건이었다. 부동산 문제는 분노의 뇌관이다. 민주당도 이 대목에 신경을 많이 쓴다. 서울과 부산의 국민의힘 시장 후보인 오세훈·박형준에게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집중 제기한다. 오 후보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 내곡동 땅 특혜 의혹을, 박 후보는 부산의 초고가 아파트인 해운대 엘시티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에 분노한 민심이 야당 후보로 옮겨가길 바란다. 그러나 여론은 시큰둥하다. 두 선거 모두 약 15%포인트 격차가 대체로 유지된다. 왜 부동산에 분노한 민심이 야당 후보의 부동산 의혹에는 분노하지 않을까? 여당 지지층 일각의 지적처럼 유권자의 ‘선택적 분노’를 탓해야 할까?

여론분석가인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이슈 자체보다도, 정부·여당이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정권심판론을 자극하는 변수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이슈를 사과와 반성보다 공세와 비교우위(“야당보다 우리가 더 낫다”)로 관리해나갔다. ‘부동산 적폐 청산’을 내걸고, 오세훈·박형준 후보에게 공세를 펴는 노선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도 ‘추후 수용’이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정리했다. 불만에 찬 여론이, 스스로 오류가 없다고 믿는 정권의 태도와 만날 때, 정권심판론은 폭발력이 높아진다. 여론이 무오류의 태도에 분노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오세훈·박형준 후보를 향한 여당의 부동산 공세가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설명된다.

윤석열 두고 엇나간 당·청

무오류의 태도가 용인될 수도 있다. 실제 성과와 이어질 때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남북관계에 극적인 진전이 있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한때 정부·여당에 대한 경고신호가 켜졌지만,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유권자들을 납득시켰다. 하지만 2021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은 이런 조합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부동산 이슈에서는 무오류의 태도가 야권 후보에 대한 공세와 비교우위 노선을 낳았고, 그를 지켜본 여론은 급격하게 정권심판론으로 기울었다. 검찰개혁 이슈 역시 부동산 이슈와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부동산 문제는 유권자를 건드리는 분노의 뇌관이다. 3월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LH 직원 땅 투기 사건이었다.ⓒ시사IN 이명익

문재인 대통령은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고 답했다. 이 발언 이후 윤석열 전 총장의 정치적 파괴력이 훅 꺾였다. 한국갤럽 1월 둘째 주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의 차기 주자 지지율은 13%였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반영된 2월 첫째 주 조사에서는 9%로 빠진다. 국민의힘 지지층이 대거 지지를 철회했다(1월 38%, 2월 28%). 정부·여당이 ‘윤석열 카드’를 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윤석열 포용정책’이었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그걸 입증했다. 2월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이 나왔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2월24일 국회에 나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당부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이며 당·청 엇박자를 노출했다.

결국 속도조절론이 후퇴하고 신속추진론이 대세를 잡았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른바 ‘검수완박’)을 골자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이 추진되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퇴의 계기와 명분을 잡았다. 그는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을 사퇴 명분으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발언에 발목이 묶였던 그는 3월4일 ‘사퇴에 성공’했다. 사퇴 이후인 3월 둘째 주에 한국갤럽 차기 주자 지지율 24%를 기록해,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와 동률로 뚜렷한 양강 구도를 만들어냈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이완되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43%가 그를 차기 주자로 지목하며 재결집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긴 투쟁이 질서 있게 수습되지 못했다. 검찰개혁 찬반을 떠나서, 이슈 피로도가 대단히 높은 상태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됐다. 이 대목에 대한 정부·여당의 성찰과 반성이 나오느냐가 중요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발언은 그런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슈 피로도도 이완됐다. 하지만 이후 검찰개혁 이슈는 다시 공세 국면으로 돌아섰다. 여기서도 무오류의 태도가 또다시 등장했다는 인상을 여론에 남겼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은 검찰개혁에 대한 이슈 피로도를 높였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에 무오류의 태도가 등장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검찰개혁이든 부동산 정책이든, 여론의 일시적 반대가 있어도 결국 가야 할 길이라는 사명감이 집권세력 핵심에서 공유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태도의 오류를 지적하는 여당 정치인에게 가혹한 압박을 가해왔다. 두 경향이 만나면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이나 부동산 정책 다변화 같은 온건한 우회로도 봉쇄되기 쉽다. 정부·여당에 불만을 품는 여론이 무오류의 태도와 만나면 투표 말고는 정권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없다고 느낀다. 심지어 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 유권자조차도 그쪽으로 움직인다. 4·7 보궐선거는 잔여 임기 15개월짜리 선거다. 경고 메시지로 쓰기에 유권자도 부담이 덜하다. ‘본게임’ 격인 대선은 11개월 후에 있다.

이슈가 역동적으로 충돌하는 지층의 한 칸 아래, 좀 더 장기적이면서 치명적인 약속 위반도 있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은, 코로나19 재난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준 결정이기도 했다. 재난기는 갈림길이다.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서 격차는 결정적으로 커지기도 하고 놀랍도록 줄어들기도 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통과하면서 탈락자들이 평생 불안정노동과 취약 자영업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격차사회로 굳어졌다. 재난이 격차를 키우는 사례다. 정치가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재난은 전형적으로 이런 결과를 낸다. 반대로 20세기 중엽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상하층의 격차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대압착’을 만들어냈다. 전쟁을 거치며 고소득자의 세금이 크게 오르고, 군수산업 성장으로 노동자의 소득이 올랐으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협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해주었다. 일련의 정치적 결정과 행동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 ‘뉴딜’(새로운 사회계약)이었다. 정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작동할 때, 재난은 불평등을 줄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위기에 등장한 ‘한국판 뉴딜’도 본래 취지는 이것이었다. 지난해 6월9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습니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상생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위기 극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판 뉴딜의 궁극적인 목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2021년 민주당의 메시지에 없는 것

이 말은 정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으나, 이후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됐다. 지난해 연말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소득격차 확대와 대·중소기업 생산성 격차 확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폭등하면서 자산 보유 계층은 코로나19 재난에서 오히려 부를 불렸다. 영세 자영업자와 불안정노동자 등 취약계층은 영업제한 조치와 경기후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대비가 하도 선명하고 인상적이어서, 재난기의 시민들은 격차 확대를 사실상 실시간으로 체감했다. 여기서 오는 박탈감은 실제 격차 그 자체보다도 크게 각인될 수 있다.

반년이 지나서 대통령은 “뼈아프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짊어지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립니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높여나갈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6월의 정확한 문제의식은 반년 동안 여전히 문제의식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 끝에 5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뒤에서 스타트한 선거 국면이 도래했다. 이에 민주당이 들고나온 대응책을 ‘비교우위론’으로 부를 수 있다. 국민의힘과 상대평가를 해달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전략이다. 오세훈·박형준 후보에 대한 공세는 부동산 문제에서 비교우위를 내세운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3월25일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공식 선거운동 시작 메시지를 낸다. “앞으로 가자는 후보와 뒤로 가자는 후보가 겨루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절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을 뵙겠습니다.” ‘읍소 더하기 비교우위’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나름 공인된 공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자주 꺼내들었다. 여당에 대한 실망과 심판 정서는 높지만, 야당을 대안 삼기에는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 구도에서 여당이 쓰기 좋은 카드다. 그 시절의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이후의 지지층 붕괴를 복원하지 못하면서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보수 여당은 무릎 꿇기, 회초리 치기, ‘잘못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피케팅, 석고대죄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읍소 전략을 구사했다. 불만에 찬 유권자에게 “우리 불만을 저 사람들이 알고는 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게 1단계로 유권자들의 정권심판 의지를 누그러뜨린 후, 2단계로 말을 건다. “그래도 저 야당은 차마 못 찍을 정당이니, 우리한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그때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이 메시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우선 누그러뜨린 후에야 도착할 수 있으므로 1단계가 2단계보다 더 중요하다.

2021년 현재 국민의힘이 다시 대안으로 인정받았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여전히 비호감도는 높고, 보궐선거가 아니었다면 국민의힘을 찍기 부담스러워하는 유권자층이 여전히 두텁다. ‘읍소 더하기 비교우위’ 조합이 작동하기 좋은 토양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메시지에는 과거 보수정당의 메시지와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읍소’가 매우 간략하고 추상적이거나, 그마저도 없다.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메시지에는 “잘못은 통렬히 반성하고 혁신하며, 미래를 다부지게 개척하겠습니다”라는 말만 있다. ‘잘못’은 구체적 내용 없이 단어 하나로만 지나간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유명한 지지자인 정철 카피라이터가 만든 투표 독려 메시지는 SNS에서 크게 화제를 모았고, 여당 의원들도 퍼 날랐다. 여기에는 아예 ‘잘못’ 이야기가 없다. “압니다, 당신의 실망 허탈 분노” “기대가 컸기에 더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화를 내십시오 욕을 하십시오 매를 드십시오. 당신 마음이 누그러진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라고만 쓴다. 민주당을 찍던 유권자들이 분노하는 현실은 인정하지만, 분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무오류의 태도는 여기서도 발견된다. ‘읍소 더하기 비교우위’에서 1단계인 ‘읍소’는 무오류의 태도에 묶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그저 “국민의힘보다는 우리가 낫지 않느냐”는 비교우위 하나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3월22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무오류의 태도와 ‘읍소를 건너뛴 비교우위론’의 종합판이다.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취약하다. 국정농단 세력인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나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나 도덕성이 야당 후보를 압도한다.” “이해찬 전 대표가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나오면 생큐’라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다.” “지금 부동산 공급 문제는 5년 전 정책의 결과다.” 이것은 정권 핵심 인사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인식의 꾸러미다.

3월15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와 열린민주당 김진애 후보가 후보 단일화 2차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됐다. ⓒ연합뉴스

일련의 결과로, 2021년의 정치 구도는 갈수록 10년 전인 2011년을 닮아가고 있다. 2011년에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겪었으되, 야당인 민주당이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덕에 버티고 있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이어진 시장직 사퇴로, 서울시장 선거가 대선을 14개월 앞두고 갑자기 생겼다. 이 공간에서 제3지대 현상이 폭발했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 국민의당 대표)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내며 대선주자로 떠올랐고, 안 원장의 지지를 받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야권 단일화 끝에 서울시장이 된다. 이로써 여당은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 구도는 10년 만에 여야만 바뀌어서 재현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집권 민주당은 임기 내내 안정적 우세를 누려왔다. 하지만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예정에 없던 서울시장 선거가 열리며 정권심판론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전 총장으로 대표되는 제3지대 현상과 연대·연합을 구축하면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범야권에 생겼다.

“잘 지는 게 중요하다”

“선거는 이기는 게 늘 최선이다. 지금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지는 선거라면, 그때는 잘 지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서울시장 판세를 두고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이 말의 의미 역시, 2011년의 거울에 비춰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서울시장 패배 이후 여당에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출범한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김종인·이준석 등 기존 보수 여당과 결이 다른 인물들을 지도부에 대거 투입한다. 이로써 쇄신과 경제민주화라는 이미지를 중도층에 각인시켰다. 일련의 과정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패배에 대한 질서 있고 성공적인 대응이었다. 2012년 12월 대선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유일한 대선주자 박근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는 쇄신의 외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2012년 대선을 다시 이겼다.

“잘 지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은,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졌을 경우(3월25일 현재 시점에서는 더 가능성 높은 미래다) 그 패배로부터 올바른 교훈과 쇄신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선거 패배 이후에는 마치 공식처럼, “중도층을 못 잡아서 졌다”와 “지지층을 결집시키지 못해서 졌다”라는 상반된 평가가 등장하게 되어 있다. 이 평가가 어느 쪽으로 수렴되느냐가 패배 이후의 행보를 결정한다.

3월16일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후보 단일화 TV 토론회에 참석했다. 오세훈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국회사진기자단

이 해석 투쟁의 예고편은 이미 진행 중이다. 사후 해석의 이 두 갈래 길은 현재 15%포인트 안팎의 열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와 이어져 있으므로, 남은 기간의 선거 전략을 또한 결정한다. 지지층을 열광시키는 강한 결집 메시지로 갈 것이냐, 중도층이 듣고 싶어 하는 반성과 읍소 메시지로 갈 것이냐를 가른다. 이해찬 전 대표는 3월1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고 나왔는데 요새 돌아가는 것을 보니 거의 이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채널(‘김어준’)과 메시지 모두,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시켜 선거를 치르자는 노선에 충실하다.

2011년 한나라당 ‘박근혜 카드’에 대응하는 2021년 민주당 대선주자는 이재명 경기지사다. 둘 다 당대의 집권세력과 당은 같지만 관계가 껄끄럽고, 둘 다 당내 선두 대선주자이고, 둘 다 정권 재창출의 위기감이 높아질수록 이득을 보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도 있다. 2011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 사이에 총선이 있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2012년 4월 총선 공천권을 행사해 친위 세력을 당 주류로 포진시켰다. 이것으로 그는 총선 이후 대선 경선에서 무혈입성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런 2단계 승계 절차를 기대할 수 없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면 완충 단계 없이 곧바로 대선 경선으로 돌입한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패배하면 패배하는 대로 주류와 비주류는 결과 해석을 놓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피하기 어렵다. 이재명 지사는 여기서 핵심 지지층과 확장성 사이의 딜레마에 빠질 위험이 크다. 더욱이 ‘2011년 박근혜’는 핵심 지지층의 거부를 거의 받지 않았지만, ‘2021년 이재명’은 제법 크게 받는다. 2011년 보수 여당처럼 질서 있고 성공적인 대응을 끌어내기에는, 2021년 민주당이 처한 조건이 여러모로 더 나쁘다. 이것은 ‘서울시장 선거에 지면 민주당이 쇄신에 나서리라 기대하는 유권자’에게 특히 나쁜 소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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